축구공 하나로 총부리를 서로 겨누었던 나라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가진 복음은 얼마나 더 놀라운 화해의 능력이 있을까? 십자가의 피로 모든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님과 세상,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용서와 화해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의 현실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국교회가 계층과 세대로 분열된 우리 사회에서 화해의 도구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의 복음을 아는 지식이 축구공 하나보다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본문 중)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기윤실 교회신뢰운동본부장)
베트남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신기하다. 박항서 감독의 활약으로 베트남 축구가 놀라운 결과를 내자 베트남에서 한국 열풍이 일어났다. 축구장을 보니 베트남 사람들이 자국 축구를 응원하면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응원석 곳곳에서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것이다. 요즘 박항서 감독 덕분에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에서 꽤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베트남 국민의 한국에 대한 감정이 좋아져서 박항서 신드롬은 그 어떤 외교적 활동보다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돌아보면 이러한 박항서 신드롬은 놀라운 것이다. 50여 년 전 한국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을 도와 베트남인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참여한 전쟁이었다. 하지만 한국이 지키려던 남베트남은 망하고 말았다. 현재의 베트남은 공산주의 체제의 북베트남이 승리한 후 세운 통일 국가이다. 결국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자기 나라에 총칼을 들고 들어온 원수나 다름없다. 모르긴 해도 그들은 역사 시간에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만행(?)에 대해서 꽤나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증오비와 위령비가 곳곳에 남아 있다. 이와 같이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는 관계 회복에 커다란 장애가 될 수 있는 비극적인 과거가 있다.
그런데 불과 반세기 만에 이 두 나라는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베트남은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가 되었고, 국제결혼을 통해 사돈 나라가 되었고, 드라마와 KPOP 등 한류를 계기로 문화 교류가 일어났다. 그리고 이제 축구를 통해서 정서적으로 가까운 나라가 되었다. 갑자기 화해를 넘어 동맹이 된 기분이다. 이는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중국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 참여한 적이 있다. 중국의 공식적인 기독교 단체인 삼자교회 본부에서 한중기독교의 현안에 대해 발표를 하게 되었다. 발표를 시작하며 이렇게 우리가 만난 것이 기적이라고 말했다. 불과 60여 년 전 우리가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전쟁을 했는데, 복음 안에서 이렇게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것이 기적 같다고 했다. 그리고 결론에서는, 이제 통일이 되어 북한이 열리면 함께 전도하러 가자고 했다. 한국교회가 필요한 물자를 대고, 중국교회가 가서 전도하라고 했다. 북한 사람들이 정서적으로는 같은 사회주의 국가였던 중국 사람들을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고, 그들의 사고방식을 당신들이 더 잘 알 테니 가서 전도하라고 했다. 한국교회와 중국교회가 힘을 합쳐서 북한 전도하고 실크로드를 따라서 세계로 복음을 전하자고 했다.
꽤 호응을 얻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나중에 그 발표를 들은 한 어르신이 내가 전쟁을 언급할 때 화들짝 놀랐다는 말을 했다. 그런 이야기를 그렇게 쉽게 하면 어쩌나 싶었다는 것이다. 행여 그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어렵게 만든 자리가 깨어질까 두려웠다고 했다. 그러나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려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서로 복음 전파의 비전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복음의 능력이 나타난 결과라고 나는 믿고 있다.
요즘 한국교회의 큰 걱정거리 가운데 하나는 이념적 극단주의이다. 개신교는 그 특성상 사고의 스펙트럼이 넓다. 교파도 다양하지만 그 교파 가운데서도 사람에 따라 더 다양한 생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교회 안에서 생각의 다양성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극단적인 생각과 말이 등장한다. 신자의 입에서 너무도 쉽게 좌파, 빨갱이, 용공, 친북이라는 정죄의 말이 나온다. 정치 집회에 교회 지도자들이 나와서 극단적인 발언을 스스럼없이 쏟아낸다. 현직 대통령을 비난하며 탄핵을 운운하고 심지어 죽여야 한다는 말까지 내뱉고 있다. 정치 집회에 교인들을 동원하려는 의도로 집회 전에 기도회를 개최한다. 형식은 기도회인데 내용을 들어보면 정치 선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태도가 극단적인 몇몇 인사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전반으로 번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주와 언어폭력이 교인들의 입을 통해 퍼져나가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축구공 하나로 총부리를 서로 겨누었던 나라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가진 복음은 얼마나 더 놀라운 화해의 능력이 있을까? 십자가의 피로 모든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님과 세상,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용서와 화해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의 현실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국교회가 계층과 세대로 분열된 우리 사회에서 화해의 도구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의 복음을 아는 지식이 축구공 하나보다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왜 우리는 아직도 사회의 여러 집단을 향해 혐오의 언어를 쏟아내고 있을까?
2019년에는 한국교회를 통해 십자가 화해의 복음을 다시 듣고 싶다. 교회가 복음으로 새로워져서 다시 화해를 주도하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아가 한국사회를 화해의 정신으로 새롭게 하며, 북한과의 평화적인 관계 개선에도 기여하고, 그 힘으로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복음을 전파하게 되면 좋겠다. 이것이 화해의 복음을 가진 주님의 교회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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