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은 새로운 과학 연구의 결과가 나올 때마다 두려워하고 걱정해 왔다. (중략)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은 긴장을 풀고 어떤 과학적 증거가 성경을 반증하거나 기독교의 기반을 약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멈추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의 세계에 두신 증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654쪽)라고 말한다. (본문 중)

진리는 단순하다

『성경, 바위, 시간』서평

데이비스 영, 랠프 스티얼리 | 김의식 옮김 | IVP | 720면 | 35,000원 | 2018.11.26

 

최경환 (과학과신학의대화 기획실장)

 

 

진리는 단순하다. 위대한 물리학 공식은 의외로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단순한 공식 하나로 자연의 원리를 설명하고 우주의 신비를 풀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오래전부터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단순성(divine simplicity)을 묵상해왔다.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속성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의 단순성은 그가 만드신 창조 세계에 그대로 적용된다. 하나님의 성품이 반영된 자연 세계도 단순한 원리로 움직인다. 우주 만물을 붙드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한 자연 세계 역시 일정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자연 속에 내재된 일정한 패턴과 원리를 단순한 공식으로 형상화할 수 있었다.

지금은 종교와 과학이 대립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불과 200년 전까지만 해도 과학자들 중에는 신실한 신학자이면서 사제인 경우도 많았다. 호이카스가 『종교와 근대과학의 출현』(정음사, 1987)에서 밝힌 것처럼 종교개혁은 근대과학을 일으킨 중요한 촉발제 역할을 했고, 이후에도 기독교는 자연과학의 후원자였고 지지자였다. 물론 과학사를 살펴볼 때, 종교와 과학의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훌륭한 과학자들은 대부분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의 일환으로 과학 탐구 활동을 했다.

미국 칼빈대학교에서 오랜 시간 지질학을 가르쳤던 데이비스 영과 랠프 스티얼리는 『성경, 바위, 시간』에서 하나님을 사랑한 지질학자들의 연대기를 소개하고 있다. 지금껏 지구의 연대를 조사하고 화석과 암석을 연구한 과학자들은 대부분 신앙이 깊은 ‘창조론자들’이었다. 화석의 생물학적 기원을 밝힌 니콜라이 스테노니스(Nicolai Stenonis)는 경건한 루터교도였고, 다윈 이전에 가장 위대한 과학자라고 인정받는 존 레이(John Ray)는 영국 성공회 사제였다. 그 외에도 많은 과학자들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성실하게 연구했다. 물론 이들은 모두 창세기의 내용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과학으로 밝히고자 노력한 일치론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경우 당대 과학의 성과를 충분히 존중하고 그 결과를 성경에 적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소통 능력은 탁월했다.

시간이 흘러 19세기에는 지구의 태고성에 대한 생물 층서학(지질학의 한 분야로서 지층을 연구하여 지구 발달사를 밝히는 학문)의 증거들이 점점 쌓여갔다. 당시 지질학자들은 지구 연대가 수천만 년 정도라는 생각을 널리 받아들이게 되었고, 더욱 열렬하게 지구의 신뢰할 만한 연대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지구의 연대를 탐구하고 조사하는 모습은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결국 이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을 접고, 다른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자신들의 연구 결과와 조화시키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독교 신앙을 부인할 생각이 없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성경을 옹호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진솔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결국 지질학자들의 연구와 노력의 결과로 지구의 태고성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일치를 이루게 되었고, “그리스도인 전문 지질학자들 절대다수는 지구가 지극히 오래되었다는 점에 동의하고, 현재의 대략 45억 5천만 년의 지구 측정 연대가 가장 신뢰할 만하다”라고 결론을 내렸다(212-213쪽).

그런데 20세기 초부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도들을 중심으로 홍수 지질학과 젊은 지구론이 다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젊은 지구론자들은 오래된 지구론과 진화론은 한통속이고, 진화론을 수용하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결과라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왜곡하는 과학자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프레임은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설득시켰다. 마크 놀의 말처럼 기독교는 결국 진화론이라는 스캔들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세상의 조롱거리가 됐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제 이 스캔들을 제거하기 위해 지루하고도 힘겨운 작업을 차분하게 진행한다. 이 책의 2부에서는 성서해석을 다룬다. 핵심은 간단하다. 성경은 지구 연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고, 우리는 지질학적 단서를 활용해서 그 연대를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다. 성경은 창세기 1장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 즉 문자적 해석을 요구하지 않고, 젊은 지구의 개념을 수용하지 않는다. 과학의 발견이 성경 해석에 미치는 영향을 우리는 깊이 숙고해 봐야 한다.

하나님은 자연 안에서도 자신을 계시하신다. 그러므로 주석가들이나 일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배격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과학적 발견을 배격함으로써 하나님의 작품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열매를 경시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더욱이, 과학자들이 자연계로부터의 새로운 발견에 대응하여 자신들의 견해를 바꾼 것과 마찬가지로, 경건한 주석가들은 계속된 성경 작업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어 왔다. (235쪽)

이 책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지질학적 탐구는 3부에서 자세히 다룬다. 전문적이고 어려운 용어가 많아서 읽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인 논지는 어렵지 않다. 특별히 저자들은 젊은 지구론자들이 제시하는 증거가 과학적으로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며 조목조목 비판한다. 젊은 지구론자들은 방사성 동위 원소 측정법에 대해 여러 가지 음해를 했고, 결국에 하나님께서 노아의 홍수 기간에 기적적으로 방사성 붕괴 속도를 100만 배 이상 증가시키고, 우주의 팽창 속도를 증가시켰다고 말한다. 설령 그들의 주장이 맞는다고 해도 지구 연대가 10.5억 년으로 늘거나 9.5억 년으로 줄어들 뿐 6천 년 지구설을 뒷받침할 수 없다. 방사선 동위 원소 측정법에 대한 그들의 공격이 옳다고 해도, 그 외에도 지구의 연대가 오래됐다는 증거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젊은 지구론자들은 그동안 화학적 성분 분포, 퇴적층, 화석, 마그마의 활동, 빙하 작용, 변성 작용 등 대부분의 지질학적 증거들을 무시했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자료를 왜곡하기도 했다(685쪽). 지구의 태고성에 대한 한두 가지 반증이 나온다고 해도 현대 지질학의 논증은 무너지지 않는다. 젊은 지구론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고 기존의 지질학적 증거를 상쇄하기 위해 계속해서 추가 설명을 내놓는다. 그러나 말이 많고 설명이 복잡할수록 계속 말이 꼬이고 논리가 엉키는 것 같다. 결국 말문이 막히면 ‘하나님께는 능치 못한 일이 없다’면서 생떼에 가까운 말이 나온다(549쪽).

기독교인들은 새로운 과학 연구의 결과가 나올 때마다 두려워하고 걱정해 왔다. 지질학적 증거로 지구의 연대가 상당히 오래됐다는 결과가 나왔을 때 그랬고, 진화론에 의해 인류의 기원에 대한 신비가 조금씩 밝혀질 때에도 그랬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은 긴장을 풀고 어떤 과학적 증거가 성경을 반증하거나 기독교의 기반을 약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멈추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의 세계에 두신 증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654쪽)라고 말한다. 성경은 과학적인 증거로 입증되어야만 그 권위를 인정받는 문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현대 과학의 눈부신 성과가 성경을 위협하는 것도 아니다. 성경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낸다. 물론 우리의 성경 이해와 과학 사이에 갈등과 긴장은 늘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신학도 우리의 과학 지식도 완벽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겸손하게 양쪽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오류를 수정해 나가면 된다.

교회 성도들 중에는 전문적인 과학자도 있고 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다. 목회자가 설교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만이 절대 진리라고 말하면서 현대 과학이나 다른 학문의 오랜 연구 결과를 무시하는 발언을 한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교회와 과학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야 말 것이다. 그동안 젊은 지구론자들이 과학적인 측면에서는 미흡했더라도 복음전도와 기독교 변증에 큰 공헌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그들의 열정과 헌신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통념과는 달리 그들이 가르치는 과학은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영적 건강에 해롭다고 주장한다(658쪽).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이 그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지구의 나이가 오래됐다고 믿는 그리스도인 과학자들도 얼마든지 있고, 그들의 수고와 헌신이 신실한 신앙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감동적으로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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