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한반도를 위해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평화를 사명으로 여기는 시민’을 배출하는 일이다. 평화가 하나님의 명령이고, 선교의 내용이며,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신 이유임을 받아들이고 체화하는 것, 그 평화를 구현하는 정치와 체제의 주인이자 저작자로서 1/n의 역할을 무겁게 감당하려는 의지를 품고 도전하는 시민들이 가장 절실하다. 그러한 시민들이라면 얼마 안 되는 구호물자도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의 씨앗으로 만들 수 있고, 탈북민에 대한 그들의 지원도 값싼 승리주의의 표현이 아닌 커다란 남북 통합의 연습이 될 수 있다.(본문 중)

윤환철(미래나눔재단 사무총장)

 

“통일을 위해 우리 교회가 뭘 해야 하나요?”

“충격적 답변을 드릴까요? 온건한 답변을 드릴까요?”

“좀 쎈 걸로요(심각).”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 신실한 교회는 나를 강사로 초청하여 2시간 정도 한반도 상황, 통합의 이론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강의가 끝난 후, 교회는 ‘통일을 위한 헌금 몇 백만 원을 모아뒀으니 그걸로 뭐라도 하고 싶다’는 착한 마음을 내보였는데, 강사라는 자가 매몰찬 답을 던진 것이다.

 

“그 정도 금액은 구호물자 한 컨테이너도 채우지 못합니다. 지금은 남북관계가 막혀서 보낼 방법도 없습니다.”

“그래도, 뭐라도 할 일이 있지 않나요?”

“독서와 기도입니다. 한국 교회가 평화의 명령(로마서 12:17-21)을 70년이 지나도록 수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식 결핍이 가장 결정적 요인입니다. 지식이 없으니 기도의 방향도 잘못되고, 결정적으로 정치적 선택에서 실패해 왔습니다. 그러니 좋은 책을 사서 교인들에게 나눠 주고 읽도록 권하십시오. 그게 몇 백만 원을 가장 잘 쓰는 방법입니다.”

 

교회의 열심과 헌신은 차고 넘친다. 한국이나 중국, 미국 어딜 가도 “제발 나를 북으로 보내주세요. 저는 그런 사명을 받았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기할 정도로, 북한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어떤 ‘부채감’을 강하게 불어넣고 계시다.

 

“그럼, 북한, 그리고 남북관계, 평화 문제에 관해 어떤 공부를 하셨나요?”

“그런 건 안 해봤어요. 00 캠프….”

 

또 다른 정적이 흐른다. 당장에 북에 보내 달라는 분이 여기저기 흩어진 통념 수준의 지식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통념 중 가장 흔한 건 이런 것이다. “000 예언자 알아요? 인도에서 유명한. 그분이 북한에 대해 이러이러한 예언을 했는데….” 예언자 얘기가 나오면 내 심장은 뛰기 시작하고, 하나님께 절제를 구한다. ‘매몰차게 대하지 말아야지…, 겸손해라, 환철아….’ 하나도 알아맞히지 못한, 알아맞혀 봤자 아무 의미가 없는, 예언인지 점괘인지 모를 말들이 과학적 분석과 실증적 지식을 압도한다. 목소리는 차분하게, 내용은 단호하게 나는 답한다. “그 예언처럼 될 가능성이 가장 적습니다. 좋지도 않고요.”

 

대중들의 잘못이 아니다.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는 북한, 그리고 남북관계 분야의 지식들은 기밀이니 뭐니 해서 갇혀있었고, 목마른 사람들은 남북을 모두 볼 수 있었던 외국인 혹은 재외 학자들에게 의존했었다. 2000년을 넘어서야 우리 학자들이 제대로 된 연구를 내놓기 시작했지만, 대중의 인식이 공안정권들에 의해 잘 가공된 안보교재 수준을 벗어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뭐부터 읽을까요?”

“먼저 『두 개의 한국』부터 읽으십시오. 장교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돈 오버도퍼(1931-2015)는 통찰력이 뛰어난 기자이자 학자였고, 집필 태도까지도 겸손합니다. 자신의 기념비적 저서의 마지막 판본에는 최근 상황을 반영하려고 까마득한 후배를 집필진으로 들일만큼 겸손합니다.”[1]

 

2015년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테러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읽었다는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밖에서는 거의 ‘숭미’에 가까운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그의 쾌유를 위해 부채춤을 추었고, 혹자는 개고기를 선사하려 했는데, 정작 그런 일이 있는 동안 대사가 읽은 이 책은 한반도 분단의 중대한 책임이 미국에 있음을 적시하고 있었다. 리퍼트 대사는 퇴원 후에 주한미국 대사관이 주관하는 ‘돈 오버도퍼 기자상’을 제정했고, 매년 훌륭한 기자에게 시상하고 있다.[2]

 

로버트 오그번(왼쪽. Robert W. Ogburn) 미국대사관 공보참사관이 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브리핑룸에서 리퍼트 대사가 읽고 있는 서적 The Two Koreas를 들어 보이고 있다. 오그번 참사관은 외국인들이 쓴 한국 관련 서적 중 이 서적이 가장 정통한 책이라고 소개했다. 2015.3.8./뉴스1 phonalist@

 

2015년 3월 5일 민화협에서 주최한 강연회에 참석했다가 피습당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쾌유를 기원하는 집회.

 

“다음에 도전하실 책은 임동원 전 장관님이 쓰신 『피스 메이커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25년』입니다. 임 장관님은 현존하는, 북한 최고지도자와 가장 오랜 독대 경험을 가진 분입니다. 평북 선천 신성학교 출신의 기독교인이십니다. 방지일 목사님(1911-2014)이 살아계실 때, 제가 두 분이 동문임을 알려드린 적도 있어요. 삼십 년 후배라 서로 모르시더군요. 아직도 어느 구석에선 이분을 ‘빨갱이’라고 하는데 참 어이가 없어요.”[3]

 

내게 있어 임동원 장관은 가장 집요한 협상가이자, 기독 지성인의 모델이다. 북한의 최고지도자와 독대해서 우리 측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김대중 대통령 방북 시에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지 않게 만든 것이 하나의 사례다. 물론 그곳 참배 여부가 대단한 의미를 갖지 않는 단계까지 가야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남이나 북이나 이는 민감한 문제고 평화 프로세스의 걸림돌 중 하나다. 고급장교 출신의 군사학자로서, 정직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의 품격은 이 짧은 글에 다 담을 수 없어 생략한다. 다만, 그가 로마서(12:17-21)를 묵상하며 만든 ‘햇볕정책’이 그가 속한 ‘보수 기독교’ 진영의 어떤 이들에게 비난받는 현실이 미안하고 아프다.

 

교회가 한반도를 위해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평화를 사명으로 여기는 시민’을 배출하는 일이다. 평화가 하나님의 명령이고, 선교의 내용이며,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신 이유임을 받아들이고 체화하는 것, 그 평화를 구현하는 정치와 체제의 주인이자 저작자로서 1/n의 역할을 무겁게 감당하려는 의지를 품고 도전하는 시민들이 가장 절실하다. 그러한 시민들이라면 얼마 안 되는 구호물자도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의 씨앗으로 만들 수 있고, 탈북민에 대한 그들의 지원도 값싼 승리주의의 표현이 아닌 커다란 남북 통합의 연습이 될 수 있다.

 

남북문제와 관련된 한국 교회와 교인들의 헌신이 거듭됐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이 지나도록 현실이 변화하지 않는 것은, 그 헌신들이 그저 부채감을 털어버리는데 소모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은 그런 무의미한 반복을 그치자는 말이고, 책을 읽자는 것은 허공을 치지 않는 지혜롭고 충성된 세대가 되자는 말이다.

[1] 돈 오버도퍼, 『두 개의 한국』 개정판, 이종길 옮김 (서울: 길산, 2014; 초판 2002), Don Oberdorfer, The Two Koreas: A Contemporary History (3rd. Rev. Upd. Edition), Basic Books, 2013(2001).

[2] http://news1.kr/photos/view/?1260628, 검색일 2019년 1월 31일.

[3] 임동원, 『피스 메이커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25년』(창비, 2015)(초판: 중앙북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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