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마우는 그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우리의 관심사가 얼마나 개인적이고 사적이었는지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그에 반해 이사야의 예언은 ‘그것들’과 ‘그들의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리처드 마우의 논지는 분명하다. 이방 나라의 낙타와 숫양, 다시스의 배는 그 자체로 악하거나 파괴되어야 할 피조물이 아니다. 마지막 때에 그들의 기능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도구로 쓰일 것이다.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47쪽). 이것이 바로 그가 생각하는 기독교 세계관, 더 정확하게는 개혁파 종말론이다.(본문 중)

성경을 통해 배우는 기독교 세계관, 종말론, 그리고 정치신학(최경환)

『왕들이 입성하는 날』서평

리처드 마우 | 김동규 옮김 | SFC | 148면 | 10,000원 | 2018.9.28

 

최경환(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생각이나 사상은 논리와 증명을 통해 형성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더 많은 경우, 우리는 삶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자극을 받아 생각을 구축한다. 설교 시간에 예화를 통해 감동을 받으며 설득이 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한동안 기독교 세계관이 성서의 생생한 내러티브 세계를 상실한 채 화석화된 명제들로만 제시됐다는 비판이 있었다. 주의 깊게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최근에 새로운 도서들이 출간되면서 다시 한번 기독교 세계관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꼭 소개하고 싶은 책이 생겼다. 국내에는 신칼뱅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리처드 마우(Richard Mouw)가 쓴 『왕들이 입성하는 날』이다.

 

출처: SFC출판부

 

이 책은 리처드 마우가 오래전 한 대학에서 이사야서 60장을 강해한 내용을 책으로 출판했다가(1983) 절판이 된 것을 이후에 재출간(2002)한 것이다. 저자가 서두에 밝힌 것처럼 변혁주의자들, 즉, 리처드 니버의 문화 유형에서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를 지지하는 그룹은 창세기 1장의 문화명령을 특별히 강조한다. 그리고는 온통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언어로 자신의 세계관을 증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리처드 마우는 이런 현상을 자각하고 극복하고자 이사야 60장을 중심으로 이사야서와 요한계시록이 제시하는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고, 이 그림을 배경으로 삼아 본인이 생각하는 기독교 세계관을 제시한다.

성서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형은 처음에 (에덴) ‘동산’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마지막 요한계시록에서는 새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등장한다. 문명의 발전과 진보가 자연스럽게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도시 이미지는 이사야 60장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는 거룩한 도시로 형상화되는데, 그 도시는 온갖 물품과 동물과 돈이 오고 가는 상업의 중심지로 그려진다. 낙타가 금과 유향을 싣고 다니며(6절), 도시는 느바욧의 숫양을 받아들인다(7절). 다시스에서 온 배가 은과 금을 싣고 항구로 들어온다(9절). 값비싼 목재들이 레바논으로부터 수입된다(13절). 동물, 식물, 광물 등 온갖 좋은 것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인다.

이사야 60장이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는 너무나 세속적이어서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마지막 때에 예루살렘은 마치 자석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좋은 것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다시 자세히 읽어보면 이런 세속적인 물품과 동물은 그 쓰임새가 완전히 새롭게 변화된다.

낙타는 이제 “주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할 것이다”(6절). 느바욧의 숫양들은 주님의 “제단 위에 합당한 제물로 오를 것이다”(7절). 다시스의 배들은 “주 너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려고” 귀금속을 가지고 온다(9절). 또한 레바논의 값비싼 목재는 “나의 성전 터를 아름답게 꾸밀 것”이다(13절). 여기서 언급된 각 물품들은 이제 하나님과 그 백성들을 섬기는 데 사용된다. (35쪽)

리처드 마우는 그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우리의 관심사가 얼마나 개인적이고 사적이었는지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그에 반해 이사야의 예언은 ‘그것들’과 ‘그들의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리처드 마우의 논지는 분명하다. 이방 나라의 낙타와 숫양, 다시스의 배는 그 자체로 악하거나 파괴되어야 할 피조물이 아니다. 마지막 때에 그들의 기능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도구로 쓰일 것이다.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47쪽). 이것이 바로 그가 생각하는 기독교 세계관, 더 정확하게는 개혁파 종말론이다.

마지막에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될 피조물은 이것들만이 아니다. 그날에는 이방 나라에서 온 왕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고(10절), 하나님의 백성은 “왕의 젖을 빨아먹을” 것이다(16절). 변혁된 도시 이미지의 중심에는 정치 지도자와 정치권력이 있다. 이방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허락하신 권력을 왜곡했다. 그 결과 주권과 헌법과 법체계가 사람들을 억누르는 폭력과 억압의 도구로 작용했다. 이사야는 과거 우상숭배에 사용되었던 물품과 동물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로 그 쓰임새가 바뀌듯이, 이방 나라의 정치권력도 이 변혁된 도시에서는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을 본다.

정치적 청산이 일어나야만 하고, 정치사에서 잘못 사용된 권력이 그 합당한 원천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또한 이것은 틀림없이 어떤 의미에서는 ‘집단적’ 사건이다. 역사의 부패한 통치자들이 심판대 위에 서야 한다. (71쪽)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자신의 공의를 모든 민족이 볼 수 있게 드러내신다. 그리고 이런 공적인 심판은 그동안 정치사에서 저질러진 죄악들을 청산하고, 폭군들에게 희생당하고 죽임당한 이들을 신원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새로운 정치, 정치의 변혁을 희망한다”(75쪽). 이 비전은 단지 미래의 어느 때, 혹은 마지막 때 일어날 일을 기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의 정치적 비전은 지금 여기서 정치를 성화시키는 사명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현재의 활동이 미래에 계산”될 것이라는 믿음이 중요하다(82쪽). 리처드 마우는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기존 정치권력에 저항하신 것과 베드로전서에서 그리스도를 비방하는 이들이 우리의 선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그 예로 제시한다(81쪽).

그렇다면 리처드 마우가 지금 여기서 실천해야 할 정치적 성화의 과제로 제시하는 내용은 무엇일까? 그는 이사야 60:16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나라들의 젖을 빨” 것이라는 은유를 통해 새로운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설명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취한 교회는 인종과 문화를 뛰어넘어 모든 이를 포용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적어도 교회에서는 인종 차별, 정치적 억압, 문화적 갈등으로 인한 희생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 세계관 논의가 공허해지는 것은 구체적인 실천을 위한 선택의 방향을 제시해 주지 못할 때다. 이론적으로는 합리적이고 정합적인 사유 체계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현실 정치는 관념론자들의 우유부단함을 참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오면 어느 편엔가 서야 하고, 결단을 해만 한다. 그 선택과 결단을 위한 구체적 지침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기독교 세계관을 배운 이들은 계속 뒷짐 지며 책임을 회피할 것이다. 리처드 마우가 제시하는 하나님 나라와 기독교 세계관은 그런 점에서 개혁파 세계관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려주었다. 그동안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틀로 기독교 세계관의 골격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희생자들을 돌보고, 우리와 다른 이들을 포용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살을 채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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