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가장 뼈아프게 경험했던 안창호는 그 상황을 누구보다도 더 정확하게 진단했다. 우리가 (중략) 힘이 없는 것은 단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단결하지 못하는 것은 거짓말로 서로 속이기 때문이라 했다. 그래서 그는 “거짓이여, 너는 나의 나라를 앗아간 원수로구나. 군부(君父)의 원수는 불공대천(不共戴天)이라 했으니, 나는 죽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노라” 라고 맹세했고, (중략) 이완용만 매국노가 아니었다. 분열하고 거짓말하는 모든 사람은 매국 클럽의 회원이다.(본문 중)

손봉호(기윤실 자문위원장, 고신대 석좌교수)

 

민족대표 33인 회의. 출처: 한국근현대사사전

 

3.1운동 100주년을 맞았다. 추석이 ‘우리’ 명절이라고 느낀다면 그는 한국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3.1운동이 ‘우리’ 독립을 외친 거사였으므로 우러러 보는 사람도 한국인이다. 그만큼 3.1운동은 한국 역사의 중요한 사건이었다. 1919년 3월 1일부터 약 1년간 만세 운동에 참여한 연인원이 1,000만 명쯤 된다고 박은식이 전했다 한다. 2,000만 인구의 거의 절반이 참가한 셈이다. 체포, 투옥,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비폭력 저항 운동에 참여한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도 유례가 없다.

 

한국 기독교에게 3.1절은 특히 뜻깊은 날이다. 여운형 전도사의 주도로 김규식 장로를 파리강화회의[1]에 파송한 것이 3.1운동의 계기가 되었고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 지도자 가운데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 지역 만세 운동 주도자의 25-38%, 투옥된 자의 22%, 복역한 자의 17%가 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이만열 교수). 전체 인구의 1.3~1.5%밖에 되지 않았던 기독교인 가운데서 그만큼 많은 교인이 거사를 주도하고 참여한 것을 보면 당시 기독교인들의 애국심과 정의감은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한국인, 특히 한국 기독교인은 3.1절 100주년을 정말 의미 있게 기념해야 할 것이다.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 주요 전승국 지도자. 왼쪽부터 클레망소 프랑스 총리, 윌슨 미국 대통령, 오를란도 이탈리아 총리, 로이드 조지 영국 총리.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3.1절 100주년을 의미 있게 기념하는 것일까? 선열들을 추모하고, 칭송하고,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기념식을 거행하고, 그 때처럼 목이 터져라 만세를 외치고, 일본을 다시 한번 비난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3.1운동은 희망보다는 오히려 분노, 절망, 항의의 슬픈 몸부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 원칙을 발표한 것에 자극받은 것도 사실이고, 파리강화회의에서 효과를 내기 위한 응원이란 목적도 있었지만, 길거리에 나선 일반 서민들에게 그것은 무력하고 절박한 상황에서 토해낸 부르짖음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늘 ‘기억’해야 했던 출애굽과도 성격이 달랐다. 출애굽도 절망적인 상황에서 일어났지만 그것은 해방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3.1독립만세운동은 독립을 이룩하지 못했고 독립에 결정적인 공헌도 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기억한 것 같이 3.1절을 기억할 수는 없다.

 

그래도 3.1절은 기억해야 하고 올바로 기념해야 한다. 그 자체로도 기억할 가치가 있지만, 잘 기념하면 엄청난 민족적 자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3.1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신명기 15:6이 표현한 것 같이,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아니하고,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김구, 안창호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그렇게 염원했던 것처럼 나라를 부강(富强)하게 만드는 것이다. 3.1운동을 일으킨 선열들이 가장 바랐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고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도 그것이 아니겠는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제6회 임시의정원 기념사진(1919년 9월 17일). 맨 앞줄 왼쪽부터 이유필, 신익희, 윤현진, 안창호, 손정도, 정인과, 둘째 줄 맨 오른쪽이 김구, 셋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나용균, 맨 윗쭐 왼쪽에서 첫 번째가 여운형. ⓒ돌베개

 

그런데 과연 우리는 지금 3.1운동 100주년을 제대로 기념하고 있는가? 독립선언문을 읽고, 외우고, 기념식을 하고, 선열들을 칭송하고, 추모하고, “독도는 우리 땅!” 하고 고함치면 우리나라가 부강해질까? “한국인은 모든 것을 말로 때운다”란 비아냥거림이 우리의 3.1절 기념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말잔치만 풍성할 뿐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3.1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가장 뼈아프게 경험했던 안창호는 그 상황을 누구보다도 더 정확하게 진단했다. 우리가 일본의 수모를 받는 것은 우리에게 힘이 없기 때문이고, 힘이 없는 것은 단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단결하지 못하는 것은 거짓말로 서로 속이기 때문이라 했다. 그래서 그는 “거짓이여, 너는 나의 나라를 앗아간 원수로구나. 군부(君父)의 원수는 불공대천(不共戴天)이라 했으니, 나는 죽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노라” 라고 맹세했고, 그 맹세가 거짓말이 되지 않게 하려고 숱한 고생을 했다. 그가 우리나라의 분열과 우리 민족의 부정직성에 대해서 얼마나 통탄했던지…. 이완용만 매국노가 아니었다. 분열하고 거짓말하는 모든 사람은 매국 클럽의 회원이다.

 

그렇다. 기념식 수백 번 하고 독립선언문 수백 번 읽어도, “독도는 우리 땅”을 수백 번 외쳐도 편 가르고 거짓말하면 그는 나라를 빈약하게 하는 자다. 한국 기독교인은 누구보다도 더 양보하고 더 정직할 의무가 있다. 하나님은 거짓말 하실 수 없으나(히 6:18)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요 8:44)이기 때문이며 거짓말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계 21:27, 22:15). 아무리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도 이념으로 편 가르고 거짓말하면 나라를 망치는 데 공헌하는 것이다. 효과적으로 전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교회의 권위를 바로 세우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면, 우선 양보하고 정직해야 한다. 정직하지 않은 지도자와 투명하게 행하지 않는 교회를 떠나야 한다.

 

신명기는 놀랍게도,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신명기 15:8, 10,11).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왜 나라를 부강케 할까? 그것은 사회가 정의롭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의 정의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고아, 과부, 이방인,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등 약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정치철학자 로울즈(John Rawls)가 제시한 정의의 두 원칙 가운데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은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이익”(the greatest benefits to the least advantaged)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성경이 제시하는 정의다. 정의가 파괴되면 항상 약자가 먼저 그 피해자가 되기 때문에 약자가 보호를 받는 것은 곧 정의의 확립을 뜻한다.

 

정의가 확립되면 불평이 줄고 단결이 가능하게 되며, 단결하면 강해질 뿐 아니라 갈등에 의한 낭비가 줄어진다. 한국이 일본 정도로만 정직하면 한국 경제가 매년 1.4%에서 1.5% 더 성장할 수 있다 한다. 정직이 얼마나 큰 애국이며 거짓말이 얼마나 심각한 매국 행위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의 투명성은 세계 19위인데 한국의 투명성은 45위다. 도덕적 후진국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신기자 클럽 회장인 브린(M. Breen)은 한국인이 이웃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우리 삶에 사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큰 오늘날, 그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거짓말도 이웃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이므로 이웃을 배려하지 않는 약점의 대표격이다. 거짓말이야말로 이웃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가르치는 성경의 명령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다.

 

3.1운동 100주년을 가장 올바르게 기념하는 길은 정직하게 되는 것과 편 가르지 않는 것이다.

 


[1]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전후 국제 질서 및 전쟁 관련 각종 사후 처리를 위해 승전국인 연합국과 패전국인 동맹국 사이에 이루어진 국제 회의. 이 회의에서 일제는 승전국으로 중국 산동의 일본 점령지와 태평양 제도의 소유권을 주장하였다. 한국은 김규식 등의 대표단을 파견하였으나, 승전국의 식민지라는 이유로 문전박대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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