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우리가 만드는 도시 공동체를 위한 신론을 제시하는 셈이다. 삼위일체 신학은 우리의 자기 폐쇄적인 경향을 전복시키며 개인주의라는 굴레를 넘어서 “하나님이 공간을 내어 주시는 모든 사람에게 공간을 내어 줌으로써만 우리가 온전히 인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기독교 전통의 강력한 미덕인 환대가 새삼 강조된다. 환대는 우리 자신만의 쾌적한 안전 구역을 벗어나 타인과 진실한 관계를 맺고 타인과의 만남 속에서 변화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본문 중)

도시의 평안을 구하라(김선일)

『도시의 영성』서평

필립 셸드레이크 지음 | 김경은 옮김 | IVP | 316쪽 | 17,000원 | 2018.12.28.

 

김선일(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실천신학)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청년·학생 연합기도회’에 참석하여 ‘서울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봉헌서를 낭독하고 있다. ⓒCTS

 

과거에 서울시장이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말을 하여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다. 비기독교인 사이에서는 비난 여론이 거셌지만, 기독교인 중에서는 그 발언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신앙인으로서 자신이 사는 도시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성시화운동, 또는 도시에서의 영적 전쟁을 주창하는 이들에게 이 말은 곧 세속 도시에 만연한 마약, 성 문란, 각종 범죄를 퇴치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것도 화급하고 필요한 과제임에는 틀림없지만, 도시를 향한 기독교적 비전을 윤리적이고 (좁은 의미의) 영적인 측면으로 국한한 측면이 있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함께 추구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공동선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이것에 신학적 정당성과 영적 동기가 부여될 수 있을까? 『도시의 영성』은 바로 그와 같은 질문에 대한 신학적 답변을 모색한다.

 

 

저자인 필립 셸드레이크(Philip Sheldrake)는 도시를 ‘사회적 유대로 연결된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내는 물리적 공간’으로 본다. 저자는 책 1부에서는 이론적 토대로서 도시를 위한 신학의 역사를 살펴보고, 2부에서는 기독교적 도시의 미덕이라는 실천적 주제들을 조명한다. 도시를 위한 신학의 출발점은 삼위일체 신학이다. 세 위격이 한 존재를 이루는 하나님의 속성을 현실에 적용하면서 개인의 사적 정체성만을 절대화하지 않는 공적인 삶으로서의 도시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또한 기독교 전통에서 공적인 삶은 혼합을 두려워하여 동질 무리들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낯선 장소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공동체로 나타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사도시대 이후 기독교 역사의 최고 스승인 아구스티누스는 의로운 도시란 공동의 선을 위한 것이며 “인간의 세속 도시 환경은 이 조건적 세상에서 하나님의 도성과 지상의 도시가 혼합된 상황”(48)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지상의 도시’(죄가 지배하는 영역)와 ‘세속 세계’(인간 도시의 사회 정치적 현실)를 신학적으로 구분하였으며, 현실의 세상과 관계하는 가장 선한 방법은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을 지향하고 그분과 연합함을 통해서라고 보았다.

이러한 신학적 사유는 수도원 전통에서도 잘 드러난다. 통념과 달리 고대의 수도원들은 성과 속의 이분법에 빠지지 않았으며, 지역의 그리스도인과 시민 공동체가 어울리는 곳이었다. 20세기 개신교 수도사인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은 수도원 공동체는 인간 도시와 더 넓은 사회의 적절한 가치를 위한 모범적 키비타스(civitas, 시민공동체)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수도자들의 관상(contemplation) 또한 그러한 공적 위대함의 의식을 회복하는 방편이라고 생각했다. 중세 시대의 기독교는 한편으로는 천상과 지상을 통합하며 인간성을 성취하고 확대하는 거룩한 도시의 중심으로서 대성당이라는 고유한 공간을 조성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율성과 다면성을 갖추고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신흥 도시들에서 ‘비타 에반겔리카’(vita evangelica, 복음적 삶)와 같은 운동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성 프란체스코와 같은 이들은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고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과의 도전적 대면”(101)을 통해 수도원 전통의 가치를 계승하였다.

근대에 이르러 이러한 물리적 공간에서의 신성함은 가정과 개인으로 후퇴하는 양상을 보였으나, 도시의 변혁을 향한 의미심장한 종교적 실험들은 계속되었다. 공공선을 반영하는 도시정책에 영향력을 끼친 스웨덴의 루터파들, 제네바시의 전면 개혁을 시도한 장 칼뱅, 퀘이커의 분파로서 인간 연대의 전통을 이룬 셰이커교도들(Shakers), 그리고 도시의 중심에서 수도회의 사역과 삶을 실천한 이그나티우스의 예수회가 있었으며,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서도 도시 서민과 노동자, 약자들의 실질적 삶을 개선하려는 기독교적 비전을 품은 운동이 이어졌다.

20세기에 이르러 도시의 공공선에 대한 기독교적 비전을 구현하고자 노력한 이로서, 저자는 예수회 신학자이며 문화 이론가였던 미셀 드 세르토(Michal de Certeau)에게 주목한다. 드 세르토는 이그나티우스의 영신수련을 도시생활의 일상적 실천으로 발전시킨 인물이기도 한데, 그의 공간 개념은 근대적 도시재생에 큰 영향을 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와 대비된다. 르 코르뷔지에는 인간의 개인적이고 내적인 욕구가 충족되는 유토피아적 도시 환경을 추구하면서, 혼합성을 수용하는 공적 생활로서의 도시와는 거리를 두었다. 관료적이고 질서 잡힌 효율성의 건축 양식을 추구한 르 코르뷔지에와 달리, 드 세르토는 인간의 신체적이고 일상적인 움직임들(걷기, 우연한 만남, 이야기 등)이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 낸다고 본다.

또한 저자는 도시개발 프로젝트에 반대해서 풀뿌리 이웃 공동체를 주창했던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 도시재생이 예술 중심적인 문화로 수렴되며 부를 창출하며 그 문화적 부가 지역 공동체에 공정하게 분배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레오니 샌더콕(Leonie Sandercock), 도시에서 상호 존중과 돌봄의 저항적 연대를 주창한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 등을 인용하며 이에 응답하는 기독교적 참여모델을 제안한다. 그는 단순히 협력모델을 넘어서 공공선 참여와 양립 가능한 교회론 해명에 주력하는데, 세상과의 상관성에 회의적인 후기 자유주의 신학이나 완전한 대안적 공공성으로의 교회를 지향하는 급진 정통주의 신학과 같은 예언적-비판 모델도 협력모델과 “창조적 긴장 속에서 견지될 필요”(189)가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더 나아가 새 창조와 구속의 교리는 도시 공동체의 갱신과 재생을 위한 신학적 추동력이 될 수 있으리라고 전망한다.

 

2018년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 예배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집과 일터를 잃은 ‘쫓겨난 이들’과 함께 드렸다. ⓒ뉴스앤조이

 

결국 이 책은 우리가 만드는 도시 공동체를 위한 신론을 제시하는 셈이다. 삼위일체 신학은 우리의 자기 폐쇄적인 경향을 전복시키며 개인주의라는 굴레를 넘어서 “하나님이 공간을 내어 주시는 모든 사람에게 공간을 내어 줌으로써만 우리가 온전히 인간이 된다는 것을 의미”(215)한다. 여기서 기독교 전통의 강력한 미덕인 환대가 새삼 강조된다. 환대는 우리 자신만의 쾌적한 안전 구역을 벗어나 타인과 진실한 관계를 맺고 타인과의 만남 속에서 변화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장소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면서 정체성과 소속감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도시는 더더욱 그러한 혼란을 경험한다. 타인들과의 우발적 대면이 증가하면서 배제와 혐오의 기운도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는 어떻게 도시적 성품(urbanity)을 형성할 수 있을까? (리처드 세넷과 같은) 도시 공동체 운동가들은 기독교의 기여 가능성에 회의를 표했지만, 저자는 도시 공동체를 위한 신학적 전통을 재발견하여 제시한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전통, 예수회의 영신수련, 성례전, 삼위일체 신학에서 발견한 공공 미덕과 참여의 근거들을 짚어가면서 혼합성, 포괄성, 환대, 접근성 등의 신학적 가치를 찾아낸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예레미야 29:7의 말씀이 현대 도시 속에 상황화된 울림으로 들려오는 듯하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the welfare of the city)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다문화인, 난민, 소수자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의 도시들 속에서 공간 규모로나 인구수로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교회들은 어떠한 장소로 존재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우리가 처음 던졌던 질문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사는 도시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기독교의 성스러움을 진작시켜서 교인들에게 안전감과 만족을 주는 건축공간을 확보하는 것일까? 세속주의와 쾌락주의의 치외법권 지대로서 개인 도덕과 금욕을 구현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일까? 때로 이러한 노력들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일관되게, 도시 공동체를 위해 기독교가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타자와의 연대, 낯선 자를 향한 환대라는 기독교 전통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교회는 서로 이질적이고 낯선 사람들을 연결시켜줄 수 있는 신학과 실천을 역사적 유산으로 간직해왔다. 교회는 도시의 공적 삶을 형성하고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연결시키는 일에서 결코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과 성찰은 단절과 고립이 보편화되고 이질성과 다문화로 인해 불확실해지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교회로 하여금 두려움과 자기보호의 욕망을 떨치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모색하는 선교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예레미야서의 말씀처럼 우리가 속한 도시의 공공복리(the welfare of the city, 성읍의 평안)를 추구하는 일은 이미 예언자들로부터 전해진, 현대 도시 속 하나님 백성의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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