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사상이 명료하게 반영된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따라 기도하다 보면 우리의 세계관과 감정과 욕구도 예수님을 닮도록 변화되어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기도를 배우려는 열망을 품고, 성령님을 의지하며, 항상 주기도를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본문 중)
노종문(좋은나무 편집주간)
예수님은 산상수훈(마태복음 5-7장)에서 기도에 대해 대략 네 가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즉, 기도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는 동기로 기도하지 말고(마 6:5), 중언부언하지 말며(6:7), 주기도의 모범을 따라서 기도하고(6:9-15),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심을 믿으며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7:7-11)는 말씀입니다. 이 글에서는 특히 ‘주기도를 따라서 기도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걸맞은 기도의 모범으로 주기도를 제시하셨습니다(마 6:9-15; 눅 11:2-4).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주기도의 모범을 따라 기도하고 있을까요? 종교개혁자 칼뱅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를 따라 기도하지 않는 것은, (1)주님이 구하라고 하신 것을 넘어서 하나님의 지혜에 자신의 지혜를 더하려는 정신 나간 짓이며, (2)제멋대로 통제되지 않은 욕구를 따라 방황하는 짓이고, (3)그 자체가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는 행위라고 지적하며 원색적으로 비판합니다.[1] 칼뱅의 신랄한 경고가 아니더라도, 예수님의 제자라면 당연히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의 틀 안에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기도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사상이 명료하게 반영된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따라 기도하다 보면 우리의 세계관과 감정과 욕구도 예수님을 닮도록 변화되어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기도를 배우려는 열망을 품고, 성령님을 의지하며, 항상 주기도를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주기도의 첫 단어는 “아버지”라는 특별한 부름입니다.[2] 주님은 기도할 때 이렇게 “아버지”라는 단순한 부름으로 기도를 시작하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서를 통해 전해진 예수님의 모든 기도는 “아버지”라는 말로 시작합니다.[3] 예수님의 이런 기도 방식은 매우 독특한 것이며 당시 유대교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4] 바울 사도는 성령을 받은 성도의 특징이 “아버지”라는 부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롬 8:15; 갈 4:6). 이것은 예수님의 기도의 모범이 초기 교회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으로 남았는지를 보여줍니다.[5]
기도를 시작하는 “아버지”라는 부름은 우리를 천사들로 둘러싸인 하늘 성전의 보좌 앞으로 끌어올리며(계 4-5장), 동시에 그 보좌에 앉으신 분을 감히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된 특권을 인식하게 만듭니다(요 1:12). 하나님 나라 복음의 가장 복된 부분이 바로 이 한 마디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 부름 안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얻게 된 신자의 새로운 지위를 깨닫고 감사하며 그 실재를 누립니다. ‘만유의 통치자’[6]이신 하나님이 기쁘게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자 하심을 인식할 때,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나라 복음이 열어준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갑니다.
이 부름이 의미하는 바에 충실하고자 하면 우리의 기도 언어는 점차 정제됩니다. 첫째로, 만물의 통치자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기도를 올리므로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엄청난 효력을 지니는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중대한 일은 모두 그 자녀들의 기도를 통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요 14:12-14; 계 8:3-5). 둘째로, 아버지라는 부름을 듣기 좋아하시는 분 앞에 엎드리므로 우리의 기도 언어는 친밀한 가족의 언어가 됩니다. 자녀를 사랑하고 돌보시는 신실하신 아버지께 삶의 모든 것을 말씀드리고 의탁하는 기도가 가능해집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진 하나님 상이 예수님이 보여주고 알려주신(예를 들면, 마 6:25-34; 눅 15:11-32) 하나님 아버지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유신론 철학이 말하는 ‘신’, ‘절대자’, ‘전지전능자’, 이신론의 무관심한 창조주, 통속적인 이미지인 ‘변덕스럽고 억압하는 폭군’ 등의 상이 우리 마음에 들어 있습니다. 이런 조잡한 하나님 상상들을 제거해 나가면서 동시에 예수님을 통해 뚜렷이 제시된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마음에 채우며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신 하나님만이 우리가 아버지로 부르는 하나님이시며, 다른 것은 조잡한 우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우리는 자연스럽게 믿음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면서 구하고(마 7:7-; 마 21:22; 눅 18:1-8; 요 14:13), 둘째로, 아버지께 구한 것을 받은 줄로 확신하며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막 11:23-24; 약 1:5).
주기도의 첫 부름에 이어지는 여섯 가지 간구는 암송해야 할 주문이 아니라 기도를 안내하는 형식입니다. 주기도를 따라 기도하면서 우리는 전반부의 세 가지 간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게 되고, 후반부의 세 가지 간구를 통해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각각의 간구를 하나씩 말한 다음에, 그 기도제목과 관련하여 성령님이 깨닫게 하시는 것이 있는지를 마음속으로 살피며 기도제목들을 말씀드리는 식으로 기도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한 다음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기 위해 이루어져야 할 것을 생각하며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에스겔 36:21-27 말씀과 관련이 있는데, 그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의로운 규례를 실천함으로써 이방인들에게 거룩한 빛을 비출 때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오늘날 교회들이 예수님의 명령들을 실천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로 올려져야 합니다. 이렇게 주기도의 여섯 간구를 따라 기도를 드리려면 각 항목의 의미 정도는 미리 공부해 두어야 합니다.[7]
주기도를 따라 기도하기를 마치면, 잠시 침묵하며 성령님께서 떠오르게 하시는 기도제목이나 기도 응답의 말씀이 있는지 귀 기울여 봅니다. 그리고 떠오르는 기도제목들을 기도하면서 자연스럽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기도의 흐름을 맡기고 기도합니다.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처럼 계속 기도를 이어나가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경청과 간구의 시간을 번갈아 가지면서 적당한 시간 후에 찬양과 감사로 기도를 마칩니다.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는, 늘 즉흥적으로만 기도하지 않기 위해, 교회나 사회나 이웃을 위해 무엇을 특별히 기도할지 미리 생각해 보고 적어두는 것도 좋습니다. 또 기도를 마친 후에는 기도 중에 성령님이 어떻게 기도를 인도하셨는지, 무엇을 기도할 때 확신과 평안을 얻었는지, 어떤 감사할 일이 있는지,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있었는지를 성찰해 보고 기록해 둡니다. 이런 기록을 하는 동안 종종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더 분명해지기도 하며, 하나님이 우리 삶을 이끌어 나가시는 흐름을 느끼기도 합니다.
기도는 많은 이론을 읽기 보다는 몸으로 연습해야 하는 일입니다. 자전거 타기나 수영을 배워 몸에 익숙해지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하루에 5분이든 10분이든 20분이든, 한 번이든 두 번이든, 꾸준하게 기도할 수 있도록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날마다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내용을 메모해 두었다가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나누어 봅니다. 이런 대화를 통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훈련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8]
헨리 나우웬은 자신이 수십 년간 기도훈련을 해 왔지만 기도 시간에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종종 든다고 고백합니다.[9] 기도는 자전거 타기나 수영과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몸에 익히기가 어려운데, 아마도 오랫동안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첫 번째 본성이 늘 기도에 저항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도 시간을 정해두고 지키고, 성령님을 의지하고, 자신에게 너그럽고, 인내하며 기다리고, 형제자매들끼리 서로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1]『기독교 강요』, III.xx.48.
[2] 주기도의 헬라어 어순은, “아버지, 우리의 하늘에 계신…”이다. 주기도를 따라 기도할 때 첫 단어를 “아버지”로 시작하기 위해, “아버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기도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3] 단 한 번만 예외가 있는데, 십자가 위에서 시편 22편의 말로 드리신 “나의 하나님, …”으로 시작하는 기도이다.
[4] 요아킴 예레미아스, 『신약신학』, 정광욱 옮김 (엠마오, 1992), 100-106.
[5] “예수님의 눈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창조의 선물이 아니라 구원의 종말론적인 선물이다. 하나님의 왕적인 통치하에 속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아바’라 부를 가능성이 있다.” 예레미아스, 위의 책, 258.
[6] 헬라어로는 ‘판토크라토르’인데 ‘만유를 붙잡고 계신 분’이라는 의미이다. 보통 ‘전능자’(Almighty)로 번역되는 말인데, 그런 번역은 근대 철학의 영향으로 하나님을 절대 의지나 거대한 능력으로 축소한 번역이다. 반면,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며 만유를 선하게 창조하시고 만유와 관계 맺고 계시며 만유를 지속하시고 만유를 선한 목적을 향해 이끄신다(엡 1:10; 골 1:17-20).
[7] 주기도의 세부 사항에 대한 가르침은, 김영봉, 『가장 위험한 기도, 주기도』(IVP), 스탠리 하우어워스,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복있는사람), 톰 라이트, 『주기도와 하나님 나라』(IVP) 등을 참조하라.
[8] 이 훈련을 위한 좋은 자료로는, 달라스 윌라드, 『하나님의 음성』, 윤종석 옮김(IVP)이 있다.
[9] 헨리 나우웬, 『기도의 삶』, 윤종석 옮김(복있는사람), “장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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