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주제는 솔직히 무겁다. 제임스 패커의 말마따나 19세기에 ‘섹스’라는 주제가 그랬던 것처럼, 죽음은 오늘날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에 무거운 주제이다. 내세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고, 또 죽음 자체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해도, 죽음에 이르는 과정, 그것도 길어진 죽음의 과정은 솔직히 걱정스럽다. 『아름다운 안녕』은 되도록 외면하고 싶은 이 난처한 일 안에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숨어 있음을 섬세하고 따뜻하고 유쾌한 말들로 설명해 준다. 지난한 죽음의 과정을 깊이 다루되 결코 현학적이지 않고, 위로를 주되 결코 상투적이지 않다.(본문 중)

죽음이 끝이 아님을 믿는 이들을 위한 죽음의 기술

 

『아름다운 안녕』

매럴린 매킨타이어 지음 | 오현미 옮김 | 이레서원 | 2019. 6. 22. | 무선 224면 | 12,000원

정지영(IVP 기획주간)

 

현대인은 옛날 사람들에 비해 오래 산다. 의료 기술의 급격한 발달 때문이다. 현대 의료 기술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죽음의 과정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우리는 이제 죽음을 가능한 한 뒤로 미룰 수 있을 뿐 아니라 죽음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축복일까? 이것으로 우리 삶이 더 나아진 걸까? 죽음의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보신 분이라면, 또는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던 분이라면,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임을 느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허락받은 것은 분명 축복이다. 그러나 생명 연장에 대한 감사보다 돈 걱정이 먼저인 이들, 사는 게 죽는 것만 못할 것 같은 절망에 던져진 이들에게는 이것만으로 축복이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늦은 오후의 긴 그림자처럼 축 늘어진 죽음의 여정은 죽음만큼이나 엄연한 현실이 되었다.

 

신실한 떠남을 위하여

의료인문학자[1] 매럴린 매킨타이어의 『아름다운 안녕』은 축복이면서도 동시에 당혹스러운 현실인 이 죽음의 시간을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를 다룬다. 현대 의료 기술이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듯이, 죽음 이후 본향 집에 갈 것이라는 믿음 또한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완전히 바꿔 놓는다. 이러한 성경적 믿음의 토대 위에서 저자는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다고 믿지만 이제 상태가 결코 전과 같지는 않을 것을 아는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기적적인 하나님의 간섭과 치유를 기다려야 할지 의료적 도움에 의존해야 할지 혼란을 느끼는 우리, 더딘 죽음의 과정 속에서 서툰 작별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세상에 태어나는 것만큼 묵묵하고 “신실하게 세상에 작별 인사를 하는” 기술을 전수한다.[2]

 

순교적 삶으로서의 죽음

초기 교회의 순교자들에게 죽음은 자신의 믿음을 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죽음은 믿음을 드러낼 기회를 잃게 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민족적, 신앙적으로 모진 박해를 경험한 우리나라에서 순교는 특히나 소중한 기독교적 가치로 강조되어 왔다. 오늘날 문자적 의미의 순교가 어려워진 현실에서 순교라는 가치는 일상에서의 순교적 삶에 대한 강조로 건강하게 대체되었다. 믿음은 한순간 입으로 고백하고 흩어져버리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 내야 할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료 기술의 발달로 예기치 않은 죽음이 줄어든 현대 사회에서 죽음의 과정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등장했다. 죽음의 과정은 한쪽에서는 낙심과 상실과 박탈감이, 다른 쪽에서는 영적인 성장과 행복, 감사, 새로운 각성 등이 일어나 교차하고 혼재하는 시간이다. 이 책 『아름다운 안녕』은 그 과정을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예사롭지 않게 보여 준다. 삶을 마무리하는 이들과 그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주변인들을 위한 순교적 삶의 지침서라 할 만하다.

 

 

절실하지만 민망한 주제

그러나 ‘죽음’이란 주제는 솔직히 무겁다. 제임스 패커의 말마따나 19세기에 ‘섹스’라는 주제가 그랬던 것처럼, 죽음은 오늘날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에 무거운 주제이다. 내세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고, 또 죽음 자체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해도, 죽음에 이르는 과정, 그것도 길어진 죽음의 과정은 솔직히 걱정스럽다. 『아름다운 안녕』은 되도록 외면하고 싶은 이 난처한 일 안에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숨어 있음을 섬세하고 따뜻하고 유쾌한 말들로 설명해 준다. 지난한 죽음의 과정을 깊이 다루되 결코 현학적이지 않고, 위로를 주되 결코 상투적이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죽음을 살 것인가?

한 세대 전에는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일어나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물었다. 오늘날에는 ‘공공신학’이란 이름으로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내세를 보장받을 뿐 아니라 현세에서도 ‘잘 살기’ 위해 건강과 부를 얻겠다는 번영복음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독교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몰두하고 있을 때, 세상에는 ‘그러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암으로 죽음을 맞이하기 겨우 몇 달 전 쓴 어니스트 베커의 『죽음의 부정』(한빛비즈, 2019: 원서 1973)이 비문학 작품 분야에서 퓰리처상을 받았고, 호스피스 운동가이자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 수업』(이레, 2006, 2014: 원서 2000)과 17년 연속 예일대 명강의로 꼽힌 강연을 책으로 엮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엘도라도, 2012: 원서 2012)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잘 사는 것’(well being)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잘 죽는 것’(well dying)으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시작된 부활과 아직 계속된 죽음이 중첩되는 종말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질문을 해야만 한다. ‘그러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죽음을 살 것인가?’ 『아름다운 안녕』은 이 질문들을 탐구하는 데 꼭 필요한 소중한 통찰을 제공한다.

 

P.S. 죽음에 관한 묵상과 준비라는 잃어버린 기독교 전통을 새롭게 찾아내 호평을 받은 『죽음을 배우다』(IVP, 2014)와 18년 동안 두 종류의 암 선고를 받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살았던 한 목회자의 묵상집 『살며 사랑하며』(IVP, 2019)와 함께 곁들어 읽을 것을 제안한다.

 


[1] 의료인문학(Medical Humanities)은 의학뿐 아니라 문학, 역사, 철학으로 대표되는 인문학을 통해 환자의 고통과 그 치료 과정을 성찰함으로써 치료를 돕고 환자의 존엄성을 추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치유가 전인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믿고 환자를 의학적으로 치료하는 데 머물지 않고 마음과 종교 차원으로 치유의 개념을 확대한 내과 의사 폴 투르니에가 주창했던 ‘인격 치유’와 비슷한 개념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2] 셰익스피어의가 한 이 말에서 책의 원제 ‘신실한 작별’(faithful farewell)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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