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기초과학은 특정 분야를 시작하고 주도하기에는 연구 역사도 짧고 연구 인력이나 연구 분야들도 제한적이다. 그동안 우리는 짧은 산업화 과정에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응용 분야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 90년대 혹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기초과학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일본이 갖춘 기초과학의 토양인 학문 시스템이나 연구 환경을 거의 100년 뒤에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이 노벨상을 25개나 받고, 그런 기초과학을 이용한 소재나 부품 산업의 세계적인 강국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본문 중)

성영은(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해마다 10월이 되면 과학계에서는 노벨상이 중요한 뉴스가 된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노벨상의 여섯 개 분야 중에 과학 분야는 물리, 화학, 생리학·의학 등 딱 절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권위와 명성에서는 문학, 평화, 경제(1968년에 제정) 분야를 앞선다. 과학 분야가 업적을 더 객관화할 수 있고 또 상의 선정 과정이 엄격하고 공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과학계에서는 수상자가 선정되면 대체로 그 업적을 인정하고 별 이견이 없는 편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신비를 발견해 낸 수상자들의 뛰어난 업적을 보고 나면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의 지혜의 깊이에 새삼 더 놀라게 된다.

잘 알려진 것처럼 노벨상은 스웨덴의 알프레드 노벨(Alfred B. Nobel, 1833-1896)이 제정한 상이다. 그는 니트로글리세린이라는 액체의 엄청난 폭발성에 착안하여 그 액체를 다루기 쉽게 규조토라는 흙에 넣어 다이너마이트라는 폭약을 만들어 냄으로써 엄청난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상을 만들 것을 유언으로 남겨 생긴 상이 바로 우리가 아는 노벨상이다.[1] 노벨의 다이너마이트는 도로나 터널 건설 작업을 간단하고 쉽게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엄청난 노동력과 시간을 줄여준 반면에 무서운 폭약으로 제조되어 대량살상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극단적인 양면을 가진 발명품이었다. 노벨은 자신의 발명품이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해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살아 있는 동안에 큰 규모의 기부를 계속했고, 죽을 때에는 자신의 거의 전 재산을 인류를 위해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들에게 줄 상금으로 내놓았다. 그래서 과학계에서만 보면 1901년부터 시작하여 지난 120여 년 동안 200여 명 정도의 과학자들이 노벨상 수상이라는 대단한 영예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노벨상 수상자에게 수여되는 메달 앞면.(출처: 사이언스라이프 갈무리)

 

1901년 노벨 물리학상의 첫 수상자는 오늘날 병원이나 공항에서 널리 쓰이는 X-선을 발견한 뢴트겐이었고, 그 이후 일반에게도 널리 알려진 퀴리 부인,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등이 이 상을 받았다. 노벨 생리학·의학상은 혈청 치료요법을 연구한 베링이 첫 수상을 한 후, 결핵을 연구한 코흐, 신경계 연구의 골지(Golgi), 생명현상의 핵심인 DNA 구조를 밝힌 크릭과 왓슨 등이 같은 상을 받았다. 화학상은 삼투압 현상을 연구한 반트호프를 시작으로, 퀴리 부인, 비료의 원료인 암모니아를 합성하여 인류를 기아에서 탈출시킨 하버 등이 받았다.

오늘날 학문 분야에서 수여되는 상 중에서 노벨상보다 더 큰 명성을 누리는 상은 아직 없다. 특히 미디어의 발달로 오늘날 노벨상은 언론의 엄청난 주목을 받는다. 수상자가 발표되면 속보로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될 뿐 아니라 이로 인해 매년 10월이 되면 과학계의 스타가 배출된다. 연구에만 전념하던 학자들이 노벨상을 받고 나면 갑자기 언론의 주목을 받고 가는 곳마다 환영받는 스타가 되는 것이다. 각종 모임에 강연 초청을 받는 등 커다란 개인적 명예도 뒤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제 노벨상 수상은 개인을 넘어 국가 간 경쟁이 되었다. 마치 올림픽의 금메달 개수로 국가 간 순서를 매기듯 매년 노벨상 수상국은 그 영예를 자기 국가의 힘으로 자랑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애타게 이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을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국가적인 투자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많이 받은 경험을 살려 과학 분야도 그렇게 노벨상을 받게 해보려고 예산을 투입하는 정책까지 쓰고 있다.

그러나 기초학문은 올림픽에 출전하는 운동선수의 체력단련과는 좀 다르다. 응용학문으로 제품을 만드는 일은 그런 방식으로 할 수 있지만, 기초학문은 그렇지 않다. 물론 천재적인 한 개인의 뛰어난 역량만으로 노벨상 수상이 가능은 하겠지만 현대 과학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은 일본은 현재 25개를 수상했다. 일찍 서구문명을 받아들여 근대화한 일본도 1890년대 들어서야 대학에 기초 이학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기초과학의 토대를 만들어 육성한 지 약 60년 후인 1949년이 되어서야 첫 노벨상을 받았다. 이제 과학 분야에는 더 이상 한 개인의 뛰어난 역량으로 새롭게 발견해 낼 것이 거의 없다. 오늘날 기초과학 연구는 국제적으로 많은 과학자들이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함께 찾아 나가는 공동 작업이다. 그 과정에서 각종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도입되어 과학 안에서 특정 분야가 발전한다. 그럴 경우 평생 그 연구를 한 많은 학자들 중에 가장 기여가 큰 그 분야 대표 학자들에게 (3명까지) 노벨상이 수여되는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은 특정 분야를 시작하고 주도하기에는 연구 역사도 짧고 연구 인력이나 연구 분야들도 제한적이다. 그동안 우리는 짧은 산업화 과정에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응용 분야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 90년대 혹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기초과학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일본이 갖춘 기초과학의 토양인 학문 시스템이나 연구 환경을 거의 100년 뒤에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이 노벨상을 25개나 받고, 그런 기초과학을 이용한 소재나 부품 산업의 세계적인 강국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일본이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100년의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그렇게 된 이유는 더 살펴볼 여지가 있다. 아무튼 그렇게 긴 시간에 걸쳐 토양과 시스템을 갖추고 이룩한 기초학문을 단기간에 넘어서서 앞서가려는 것은 의욕은 좋지만 다소 반칙이다. 설령 그렇게 하여 노벨상을 받는다 한들 우리나라가 과학이라는 학문에서 인류에 기여하는 국가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Unsplash.

 

물론 신자로서 노벨상이 그렇게 중요한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신자가 올림픽 금메달이나 노벨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것은 자칫 세상일에 지나치게 마음을 쓰고 세상의 영예를 누려 보려는 욕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이 세상의 신비를 발견하는 영예를 반드시 신자들에게만 주시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올림픽을 향한 노력이 아마추어 스포츠나 사회 체육 활성화로 이어진 것처럼, 노벨상을 향한 갖가지 노력이 우리나라가 가야 할 다음 단계인 기초과학 활성화로 연결되면 좋겠다. 현재 우리는 온 나라가 돈과 명예와 안정적인 직업을 위한 학문에 마음을 쓰고 있다. 그러니 기초과학을 평생 공부하고 연구하려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우리의 미래와 인류 사회를 위해 기초과학의 시스템과 연구 토양을 제대로 갖추어 나가야 할 현시점에서, 우리 기독교인들과 우리의 자녀들이 이 일에 앞장서면 어떨까? 세상 사람들이 돈을 버는 일에 마음을 쓸 때, 하나님이 이 세상과 이 학문 분야들을 만드셨다는 그 사실 하나 때문에 우리는 물리학, 천문학, 화학, 생물학 등을 하는 데서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다. 일평생 이 분야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찾아가는 일은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이 돈 잘 버는 분야로 자녀들을 보내느라고 법석을 떨 때 믿는 우리들은 믿음으로 이런 일을 하도록 우리 자녀들을 격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일들을 통해 기초학문의 토양이 자리 잡고 뿌리 내릴 때, 우리는 신앙과 학문, 기독교 학교, 기독교 정당, 기독교 윤리 등 수많은 문화적 사명에 대해서도 눈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복음이 이 땅에서 사회 전반에 걸쳐 결실을 맺게 하는 데도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노벨상을 받지 못한들 어떤가. 과학 분야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를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사용하는 것이 이런 일들로 이어지고, 하나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넘치는 영예가 아닌가. 노벨상 시즌을 지내면서 우리 기독교인들 중에서 이제 우리나라 기초학문의 발전에 마음을 쓰는 과학도들이 많이 나오기를 소원해 본다.


[1] “이 돈으로…기금을 마련하여 그 이자로 매년 지난해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상을 수여하도록 한다. 이자에서 나오는 상금은 다섯 개 부분으로 나누어 지급한다. 일부는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이나 발견을 한 사람에게 돌아가고, 일부는 가장 중요한 화학적 발견이나 진보를 이룬 사람에게 돌아가고, 일부는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에게 돌아가고, 일부는 문학에서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장 탁월한 작품을 발표한 사람에게 돌아가고, 일부는 민족 간의 화합, 기존 군대의 폐지 또는 축소, 평화회담의 성사와 촉진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1895년 노벨의 유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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