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필자는 여러 방송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일본이 수출 규제의 이유로 내세웠던 소재 관리 부실이나 북한으로 넘어가 무기제조에 사용될 위험이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음을 밝혔다. 그런데 이 소재들을 당장 자체적으로 생산 조달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들여올 가능성 역시 그리 높지 않다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다. 그만큼 이번에 일본이 취한 조치는 우리 산업의 약점을 철저히 파악한 뒤에 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본문 중)

성영은(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일본이 불화수소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주력 상품인 반도체 핵심 소재 3종에 대해 수출을 제한하는 규제를 발표하고, 그 규제 발표 이후 그 소재에 대한 수출 허가를 단 한 건도 승인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8월 2일에는 안보 우방국가에 주는 수출 허가신청 면제까지 없앴다. 소위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이다. 이러한 수출 규제를 통한 경제 보복의 이유가 정치적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파악이 되고 있다. 최근에 필자는 여러 방송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일본이 수출 규제의 이유로 내세웠던 소재 관리 부실이나 북한으로 넘어가 무기제조에 사용될 위험이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음을 밝혔다. 그런데 이 소재들을 당장 자체적으로 생산 조달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들여올 가능성 역시 그리 높지 않다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다. 그만큼 이번에 일본이 취한 조치는 우리 산업의 약점을 철저히 파악한 뒤에 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과학자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논하기보다는 첨단 기술의 주도권을 우리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이번 조치의 이면에 숨은 이유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 보려 한다.

이번 규제에서 가장 큰 이슈로 등장한 반도체는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소자(素子, 장치)를 말하는데, 이 반도체 소자 없는 현대사회는 생각하기 어렵다. 현대인의 삶에 필수적인 컴퓨터, 휴대폰, 자동차, TV, 가전제품 등에는 반드시 반도체 소자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 반도체 소자 중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의 세계 시장 70%를 점유하고 있다. 작년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10나노급 반도체를 양산했다고 발표했다. 1나노는 10억분의 1미터 크기인데, 10나노급 반도체는 머리카락에 5,000개의 전기 회로선을 새겨 넣을 정도로 정밀하다. 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반도체 안에 수만 권의 책을 저장할 수 있으니 이제 도서관 하나 정도 저장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이런 반도체 덕분에 엄청난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해야 하는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4차 산업혁명 같은 것이 실현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다음 세대에 이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그 변화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국가 간의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다. 이것이 일본이 우리 반도체를 규제하는 더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반도체 소자를 만드는 일이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수백 수천 종의 장비, 소재, 부품이 투입되어 600여 가지 공정을 거쳐야 비로소 반도체 소자가 만들어진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기술을 비롯해서 그야말로 글로벌 기술과 소재, 부품들이 총동원되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전 세계의 가장 뛰어난 기술들을 총동원해야 반도체 소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결코 한 국가의 단독 기술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본의 이번 규제는 특정 소재 하나를 가지고 이 전체 반도체 제조 공정을 멈추게 하여 우리나라로 하여금 제품을 못 만들게 하려는 조치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일본이 글로벌 시장 경제를 흔든다고 비판하면서 국제 여론에 호소하고 있는 동시에 일본 외의 소재 공급처를 찾고 핵심 소재를 국산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동안 등한시했던 기초 기술을 발전시키고 핵심 소재를 국산화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 간의 치열한 글로벌 경쟁 체제를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 이 분야의 선두에 있는 한국 편을 들어줄 나라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설령 몇 가지 소재를 다른 나라에서 도입하고 또 국산화한다고 한들, 연이어 이런저런 규제가 추가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수백 수천 종의 소재와 부품을 다 국산화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될 텐데 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또 문제는 이번과 같은 일본의 조치가 비단 반도체 분야만이 아니라 기술 제품 전반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일본이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에서 제외함으로 그런 우려가 현실 이 되었다. 자동차에는 약 3만 개, 항공기에는 수십만 개에서 최대 400만 개의 부품이 들어 있다. 이런 모든 제품들이 글로벌 협력구조의 결과로 생산된다. 전기자동차 등 신제품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부품 하나에만 문제가 생겨도 제품이 만들어질 수 없거나 결함이 생기게 된다. 최대 400만 개의 부품 중에서 한 개만 문제가 생겨도 비행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데, 어찌 보면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 자체가 위험천만한 일인 것이다. 아무튼 우리나라는 글로벌 협력으로 기술 제품을 만드는 일에 가장 적극적이고 또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국토도 좁고, 인구도 적고, 자원도 없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글로벌 협력에 의존하여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여 먹고 살아가는 것이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어느 하나 그렇지 않은 분야가 없다. 그 덕분에 이 정도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물론 이번 일본의 규제는 용인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그 원인이 되는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일본의 요구를 쉽게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글로벌 협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현실과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면 감정에 치우쳐 한 가지 태도를 딱 취하고 나가기 어려운 형편이다. 또 이 일이 비단 반도체나 특정 기술 제품만의 문제가 아닐 뿐더러 지금은 일본이 이런 규제를 하지만, 장차 중국, 미국, EU 등 기타 선진국들이 그와 같은 규제를 행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우리나라 안에서 해결하자는 주장은 현대의 기술의 특징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이 사태에 대해 명쾌한 해결책을 말한다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답답하지만 이런저런 대안에 대해 잘 살펴보고 장단점을 냉정히 평가하면서 그때그때 적절한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사실 이런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고 가진 것 없던 우리나라는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한 출발 시점부터 항상 위기를 겪었다. 그런 위기를 뚫고 최빈국에서 이 정도 잘사는 나라가 되었기에 그동안 선진국들의 각종 견제나 규제, 심지어 횡포를 어느 나라보다도 많이 겪었고 또 극복해 왔다. 그런 국가와 국민의 지혜가 다시 한 번 필요한 때이다.

 

수출 규제의 책임을 한국에 떠넘기는 아베 일본 총리.

 

현실적인 대안을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자는 이런 문제 앞에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이런저런 세상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이 문제 앞에서도 믿음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과학기술이나 과학기술 제품이 하나님과 무관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 기술은 하나님이, 자신이 창조하신 인간을 통해 만든 창조물이다. 그러니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부나 권력을 쌓기 위해 기술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과학기술의 창조주가 하나님이시라는 신앙은, 하나님께서 현대의 과학기술과 기술 제품들을 필요하신 대로 그리스도의 통치에 합당하게 사용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한다. 동시에 기술의 힘을 빌려 인간과 국가의 힘을 과시하고 남용하며 싸우는 죄악 된 세상의 특성에 대해서도 깨닫게 한다. 이런 인식 위에서 우리는 일본이든 우리나라든 기술을 정당하게 사용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두 나라 국민의 안녕과 평화 나아가 인류를 위해 서로 협력하여 기술을 바르게 사용할 것을 촉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는 기술로 쌓은 우리의 부도 우리가 쌓은 것이 아니고 주님이 주신 것이라는 점에 대한 인식이다. 이번 사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주님이 주시기도 하고 거두시기도 한다는 큰 경고일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기술이나 기술로 쌓은 부도 마찬가지이다. 경제적으로 더 부유해지고 더 잘 살려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더 합당한 것인지 냉정히 물어야 한다. 신자는 이런 문제를 세상에서 말하는 정치, 외교, 경제적인 논리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의 소명을 잘 발휘하여 의와 사랑이 있는 더 건전하고 바른 나라가 되게 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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