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선포 카드로 한·일 관계뿐 아니라 한·미 관계,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선택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곡절 끝에 조건부 종결 유예가 결정된 한·일 지소미아를 통해 한·일 갈등 관계가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본문 중)

조용래(광주대 초빙교수, 전 국민일보 편집인·대기자)

 

역사 문제가 경제·안보 문제로 비화되다

2019년은, 한국과 일본이 1965년 국교 정상화를 이룬 이래 양국 관계가 최악인 해로 기록될 모양이다. 우선 양국 간에 있었던 지난 1년 동안의 주요 사건의 흐름을 보자. 직접적인 발단은 지난해 10월의 우리 대법원의 판결이다. 대법원은 징용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 전범기업이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한국 정부는 사법부 결정 준수라는 원칙론에 서서 사실상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반면 일본은 65년 체결된 한·일 기본조약 및 청구권협정 등 양국이 합의한 틀 자체를 한국이 폐기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을 국가 간의 약속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한편, 지난 7월 한국의 반도체 생산에 필수 불가결한 일본산 최첨단 소재 3종에 대한 수출규제 등으로 그 불만을 표출했다. 이에 8월 한국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하지 않을 경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종료할 수도 있다고 맞받았다. 곧바로 안팎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한·일 공조가 절실한 상황인데 되레 안보상 균열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역사 문제에서 비롯된 한·일 갈등이 수출규제에 이어 안보 문제로까지 비화된 셈이다. 그런데 이후 벌어진 상황을 지켜보면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선포 카드로 한·일 관계뿐 아니라 한·미 관계,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선택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곡절 끝에 조건부 종결 유예가 결정된 한·일 지소미아를 통해 한·일 갈등 관계가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하에서 한·일 지소미아를 둘러싸고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지소미아는 미국의 동북아 핵심전략 중 하나

지소미아는 말 그대로 협정체결 국가 간 군사기밀을 공유하되 공유된 정보가 제3국에 유출되지 않도록 보호한다는 협정이다. 현재 한국은 일본을 포함해 34국, 그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군사보호 협정 및 약정을 체결하고 있다. 동맹국인 미국과는 87년부터 체결해왔다.

다만 한‧일 지소미아는 성격이 좀 각별하다. 한·미·일 관계에서 동맹으로 묶여 있지 않은 한국과 일본을 지소미아로 이어 군사정보 소통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한·미·일 안보연대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지가 깊이 개입돼 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중국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미국의 중국 견제전략이 급부상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 2010년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에 올라서면서 미국의 중국 견제 행보를 적극 지지하려는 일본의 절실함도 반영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2012년 한·일 지소미아 체결을 강권했고, 당시 이명박 정부는 이를 적극 수용해 그해 6월 27일 지소미아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국민들의 거센 반대에 직면해 이명박 정부는 지소미아 체결을 무기한 보류한 바 있다. 그러다 2016년 11월 23일 한·일 지소미아는 마침내 체결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기 겨우 16일 전의 일이다. 탄핵 위기에 직면한 정권이 왜 그렇듯 급하게 지소미아를 체결해야 했을까. 그 답은 지난 8월 22일 한국 정부가 한·일 지소미아를 종료할 수 있다는 선언을 내놓은 이후 드러난 미국의 다급한 대응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미국의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국무부 한국 담당 고위 관료, 주한 미국대사 등 주요 인사들이 한국을 바삐 드나들면서 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내민 한국 정부의 결정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지소미아 연장을 압박했다. 한·일 지소미아의 상대인 일본보다 정작 미국이 발끈하고 나선 모양새이다. 미국은 한·일 지소미아가 중국 압박을 위한 핵심전략 중 하나로 간주하는 듯하다.

 

2016년 11월 23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우측)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일본대사(좌측)가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2급이하 군사비밀을 직접 공유하는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을 체결하고 있다. (출처: 국방부)

 

미국의 대한(對韓) 압박 3종 세트 : 사드, 지소미아, 방위비 분담금 증액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카드는 한·일 갈등의 중재자로서 미국의 역할을 기대해서 나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일본의 수출규제 재고라는 협상 방안을 확보했고, 미국은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유예를 얻어 냈다. 물론 일본도 지소미아 폐기라는 안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한·일 양국은 상대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다. ‘수출 규제를 푸는 방향으로 논의하기로 합의했다’는 한국, ‘그런 적이 없다’는 일본. ‘일본의 완벽한 승리’라는 입장에 대해 ‘끝까지 해보자는 거냐(try me?)’ 등의 감정적인 불만도 터졌다. 이 모두가 한·일 양국이 스스로 해법을 못 낸 탓에 미국이 끼어들어 겨우 지소미아 종료 유예로 사태가 수습된 데 대한 자괴감의 분출이나 다름없다.

한국 정부로서는 한·일 갈등 문제에서 엉뚱하게도 미국의 본심을 읽게 됐다. 즉 한·일 지소미아가 단지 한·일 간의 군사기밀 소통의 축으로서가 아니라 미국의 동북아시아 핵심 전략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는 애초 2015년 말까지로 예정돼 있던 전시작전권환수가 2014년 10월 제46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무기한 연기된 사연, 2016년 7월 성주에 배치 강요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그해 11월 지소미아 체결, 최근 불거지고 있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5배로 인상 등에서 드러난 미국의 집요한 노력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특히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는 단순히 한국의 부담 증가는 물론이고 미국이 한국에 대한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고 있음을 뜻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태이다. 한국이 한반도 내 미군 주둔 비용을 분담하는 것을 넘어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수행과 관련한 미군 운용비용의 일부를 한국이 실질적으로 부담, 기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의 현안은 북한의 위협을 극복해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에 있는 만큼 중국과의 적대관계는 이를 되레 그르치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중국 견제노선에 한국을 끼워 넣으려고 혈안이 된 듯하다. 이미 받아들인 사드, 지소미아는 그렇다고 해도 방위비 분담금 증액에 대해서는 결코 수용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는 한·일 갈등에서 시작된 일본 수출규제 문제 해소를 위해 미국을 지렛대로 삼으려 했다가 되레 미국의 의도에 휘말려 들게 되는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앞세운 덕분에 미국의 의도를 분명하게 확인했다는 점에서는 문 정부의 대응은 의미 있는 것으로 우선 평가된다. 그럼에도 그 모든 과정이 한·일 관계를 선제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외교적 실책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문 정부는, 지소미아의 상징적 의미에서 드러났듯 미·중의 대립·갈등 구조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설 자리를 제대로 확보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좀 더 심각하게 고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의 대응 여하에 따라 조건부 종료 유예 상태인 지소미아를 최종적으로 종료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만에 하나 종료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태에 직면했을 때 예상되는 미국의 압박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 것인지도 모색해야 한다. 자존을 위한 생존노선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국민들에게 설득하고 협력을 구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한·미 동맹을 대신하는 새로운 외교안보적 방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해 한국이 중국 견제 연대 노선의 최전선을 떠맡는 나라로 전락할 수도 없는 일이다.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던 주한미국 방위비 분담금 협상 4차 회의. 미국측이 80분 만에 협상장을 박차고 나간 서울 협상과는 달리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출처: YTN Youtube 갈무리)

 

한일 갈등 현안은 여전히 징용자 문제

여러 가지 외교 문제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상황이지만 미·중 대립과 관련한 한국의 대응은 별도로 고심하더라도 결국 문제를 풀어가는 시작은 한·일 갈등의 해결에 있다. 미국의 압박에 따라 수출규제 등에 대한 문제가 다소 유연하게 전개된다고 해도 갈등의 본질인 징용자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나는 이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푸는 것이 마땅하다고 거론해왔다. 청구권협정 이후 징용자 보상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책임을 맡아온 바 있는 만큼 끝까지 그 책임을 완수한다는 차원에서, 또한 향후 일본과의 외교 관계에서 도덕적 우위에 설 수 있는 방법이 그것이기 때문이다.[1]

징용자 문제와 관련한 정부의 해법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다만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11월 5일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이른바 ‘문희상 안(案)’이다. 골자는 1) 징용자 및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의 일차적 책임은 한국 정부가 진다. 2)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한국 정부가 중심이 되어 마련한 펀드를 통해 대위 변제한다. 3) 펀드는 한국 정부가 우선 출연하고 한·일 양국의 미래를 위해 양국 기업과 개인들의 자발적 기부로 조성한다 등이다. 문희상 안은 일본 전범 기업의 책임 문제에 대한 추궁이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안고는 있지만, 이전보다 전향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어떻든 징용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한국의 대일 외교는 안정을 찾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평화구축을 위해서라면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 외교 또한 그 절실함에서 대일 외교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출고일자 : 2019년 12월 7일)


[1] 이와 관련해서는 ‘대법 징용배상판결 후 文 정부의 전략은’ “조용래 칼럼”, 국민일보 2018년 11월 5일 자와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한․일 갈등 더욱 거세졌으나’ “뉴스인사이트”, 국가미래연구원, 2019년 9월 3일 자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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