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최대 관심은 무엇이었을까요? 무엇이 그분의 마음 중심에 있었고, 그분은 무엇을 위하여 그토록 애쓰시고, 생명까지 내어놓으셨을까요? 사람들은 흔히 그것은 ‘우리 영혼의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어떤 사람은 ‘주님이 세우신 교회가 세상에서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예, 그런 생각들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에는 그런 것들과 관련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보다 큰 그림이 있었습니다. (중략)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본문 중)

현요한(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교수, 조직신학)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최대 관심은 무엇이었을까요? 무엇이 그분의 마음 중심에 있었고, 그분은 무엇을 위하여 그토록 애쓰시고, 생명까지 내어놓으셨을까요? 사람들은 흔히 그것은 ‘우리 영혼의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그것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이 세우신 교회가 세상에서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예, 그런 생각들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에는 그런 것들과 관련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보다 큰 그림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오늘날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도 ‘하나님 나라’가 최대 관심사입니까?

 

영화 ‘Son of God’ 스틸컷.

 

예수님 말씀의 핵심 주제가 ‘하나님 나라’였다는 것은 성서학자들 사이에서 이견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은 공관복음에 39회, 요한복음에 2회, 마태복음에 ‘천국’이라는 말로 37회 나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입만 열면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신 셈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설교의 내용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막1:14-15), 혹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와 있다는 것(마12:28), 하나님 나라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여러 가지 비유들, 어떻게 혹은 누가 그 나라에 들어가는지에 대한 것, 때가 오면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이루게 될 것이라는 점 등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주기도문)의 첫머리에 나오는 간구도 바로 ‘하나님 나라’가 오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나라가 임하시오며…”, 마 6:10).

유대인인 제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요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제사장 나라라는 자의식을 가진 민족이었습니다(출 19:6). 자신들의 나라를 ‘여호와의 나라’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대상 28:5). 그러나 그들의 극심한 죄악과 부패 때문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되었고, 남왕국 유다도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기도 하였지만, 독립국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지 못하였으며, 여전히 바사(페르시아) 제국 통치하에 있었습니다. 바사 시대 이후 그들의 나라는 헬라 제국, 그 분열된 헬라계 왕국, 그리고 이어서 로마 제국의 속국이 되어 그들의 지배를 받아야 했습니다.[1]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은 수백 년간 독립을 상실하고 주변 강대국의 지배와 수탈을 당해야 했으며, 그런 가운데서 그들의 정체성과 민족성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제사와 신앙마저도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헬라나 로마에 빌붙어 권력을 유지하려는 지도자들과 그들이 이끄는 종교 및 정치 세력들 외에 많은 유대인들은 선지자들에 의해 약속된 메시아 왕의 출현과 독립 이스라엘의 재건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던 시절,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신앙의 순수성을 요구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는 대각성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메시아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요한은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고, 자기 뒤에 오시는 이가 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리고 곧 나사렛 사람 예수라는 분이 나타났습니다. 그분은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능력을 행하시면서, 순수하고 올바른 신앙을 전파하셨는데, 특별히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2]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실 메시아 왕이라고 기대하면서 그를 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는데 (마 9:27; 12:23; 15:22; 20:30; 21:9 등), 이는 메시아(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에서 나온다는 예언(사 11:1, 10)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전쟁을 일으켜 로마 제국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재건할 그 날을 기다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대중이 예수님을 크게 환영하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를 외친 것을 보면(마 21:9), 그들의 갈망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께서 그의 나라에서 영광을 얻으실 때 그 우편과 좌편에 앉는 권세를 주시기를 청했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막 10:37; 마 20:37), 그분의 측근인 제자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임을 인정하셨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을 숨기려 하셨고, 전쟁과 승리가 아니라 고난과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막 8:27-31). 그리고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어이없게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제자들은 낙심하고 도망치고 흩어졌습니다.

 

영화 ‘Son of God’ 스틸컷.

 

그런데 그렇게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사흘 만에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제자들을 다시 찾아와 만나 주셨습니다. 부활 후 승천까지 40일 동안 예수님은 제자들을 직접 만나고 가르치셨습니다. 여러분은 죽을 때까지 자신에게 남은 기간이 40일 밖에 없다고 하면, 그 시간에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는 무슨 말을 남기기 원합니까? 이때 하는 일과 말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시간에 무엇을 하셨을까요? 놀랍게도 이 기간에 예수님은 여전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마음은 처음부터 이 마지막 순간까지 절절하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과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의 독립과 회복이라는 유대적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던 제자들은 다시 희망에 부풀어 올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 1:6). 제자들이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메시아 왕이심을 믿고 기대하고 따라왔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실망에 빠졌었는데, 그분이 이제 다시 살아 돌아오셨으니 말입니다. 이젠 정말 무서울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분,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시는 분이 자신들의 대장이시라면, 로마 제국이 아니라 그 어떤 나라와 전쟁을 해도 반드시 이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싸우다가 죽거나 상처를 입어도, 예수께서 다시 살리시고 다 고쳐주실 것이니, 세상에 이런 군대를 당할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또다시 제자들의 예상을 뒤집어 버립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7-8). 여기서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 자체를 부정하시지는 않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국가의 회복의 때와 시기는 하나님께 맡겨 두고, 너희는 가서 나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증언의 대상은 단순히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그 대상은 예루살렘과 유대뿐만이 아니라, 사마리아와 땅끝에 사는 모든 나라와 민족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꿈꾸시는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한 민족국가인 이스라엘의 독립이 아니라,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과 땅끝에 사는 이방인이 모두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통치에 들어가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제자들의 생각과 경계를 무너뜨리시고, 하나님 나라를 세계적인 범위로 확장하시고, 그 성격도 더 높은 차원으로 업그레이드해 주셨습니다.

 

영화 ‘Son of God’ 스틸컷.

 

그러면 그런 예수님의 명령을 받은 제자들은 그 후 어떻게 하였을까요? 이제야말로 더 이상 예수님에게 바랄 것이 없음을 깨닫고 실망하여 다 떠나 버렸을까요? 사도행전에 의하면, 제자들은 오순절 날 성령의 세례를 받은 후, 전 세계로 나아가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사도행전이 제자들이 전파한 것을 ‘하나님 나라’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전파한 것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한 것이었고(행 8:12), 바나바와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전한 복음을 듣고 박해를 받으면서, 처음 신자들을 위로한 내용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으며(행 14:22), 바울이 에베소의 회당에 들어가서 석 달 동안 담대히 강론하며 권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이었고(행 19:8),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청하여 말하면서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다”라고 상기하였으며(행 20:25), 바울이 로마에서 가이사의 재판을 기다리며 자기 셋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는 것이었습니다(행 28:23). 바울서신은 ‘하나님 나라’라는 말을 자주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도 분명하게 그리스도께서 왕으로서 다스리시는 나라, 온 세계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 있습니다(고전 15:20-26).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마음 중심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던 비전, 그리고 사도들을 비롯한 초기 제자들을 사로잡고 열정적으로 헌신하게 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인 우리의 마음 중심에는 무엇이 불타오르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복을 받아 부자 되고 잘 사는 것입니까? 나의 꿈이 이루어지고 성공하는 것입니까? 내 교회가 부흥 성장하여 대형교회가 되는 것입니까? 그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입니까? 우파 혹은 좌파의 정치적 이념이 실현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예수님과 사도들처럼 우리 마음에 예수님이 품으셨던 바로 그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불타오르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 마음과 삶은 진정으로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통치하고 계십니까? 우리들의 교회와 사회에는 하나님이 왕이 되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임하고 있습니까? 도대체 지금 우리 마음 중심이 하나님 나라를 향하고 있기는 한 것입니까?


[1] 주전 167년에 마타디아와 그 아들들을 중심으로 한 반란으로 마카베오 전쟁이 일어나 잠시 독립국의 모양을 가지게 되고 하스몬 왕가를 세우기도 했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또한 경건하고 순수한 성전 제사와 신앙을 회복하고자 전쟁을 일으켰었는데, 하스몬 왕조가 부당하게 대제사장 겸 왕권을 차지하였고, 유다의 독립을 위해 결국 헬라계의 셀류코스 왕조와 동맹을 맺고 거기에 고개를 숙임으로써 결국 그 정통성과 순수성을 상실하였습니다.

[2]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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