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처음으로 학교에 입학시킨 부모라면 학교라는 생태계를 자기들이 어릴 적 다녔던 모습으로 상상하며 섣부르게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학교의 실상을 보면, 대체로 아이들은 즐겁게 학교를 다닌다. 누군가 발표를 재미있게 하여 깔깔거리기도 하고, 과자를 못 가져와서 친구 걸 나누어 먹기도 하고, 색연필을 빌려주고, 친구가 심심해하면 같이 놀아주는 등 따뜻한 곳이다. 특히 요즘은 교육과정에서 받아쓰기, 지필평가 등이 사라지고 놀이 중심 수업이 많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재미있게 지내는 것이 보편적인 모습이다.(본문 중)

초등학교 예비 학부모에게:

아이가 짊어져야 할 짐을 엄마의 염려로 싸매지 마라

 

최경희(초등학교 교사)[1]

 

매해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학생과 학부모가 변화되는 것을 느낀다.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조부모가 양육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고, 스마트폰이 아이들의 생활필수품이 되었으며, 수업을 마친 후에도 돌봄교실이나 방과후학교에 참여하고, 다시 이어서 학원 2-3곳을 다니는 일도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SKY 캐슬’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 시작된 무한 경쟁을 소재로 삼아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 주기도 하였다. 입시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부모는 늘 남과 비교하면서 여기저기서 정보를 수집하여 재빠르게 움직이는 일을 부모의 중요한 역할로 여기고 있다. 전업주부도, 워킹맘도 모두 전전긍긍하는 가운데, ‘불안증’이 우리 시대의 대명사가 되었다.

어느 날 걱정 많은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우리 애가 맞았는데 알고 계세요?”

 

아이를 처음으로 학교에 입학시킨 부모라면 학교라는 생태계를 자기들이 어릴 적 다녔던 모습으로 상상하며 섣부르게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학교의 실상을 보면, 대체로 아이들은 즐겁게 학교를 다닌다. 누군가 발표를 재미있게 하여 깔깔거리기도 하고, 과자를 못 가져와서 친구 걸 나누어 먹기도 하고, 색연필을 빌려주고, 친구가 심심해하면 같이 놀아주는 등 따뜻한 곳이다. 특히 요즘은 교육과정에서 받아쓰기, 지필평가 등이 사라지고 놀이 중심 수업이 많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재미있게 지내는 것이 보편적인 모습이다.

 

제5차 교육과정기(1989~1992), 초등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교재로 사용되었던 통합 교과서. 이 글을 읽는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들은, ‘국민학교 1학년’시절 대부분 이 교재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아이들은 친구와 즐겁게 놀다가도 금방 토라지고, 또 조금 있으면 잊어버리고 다시 같이 논다. 1학년은 아직 자기중심성이 강한 시기라서 사물을 자기 관점으로만 해석한다. “아까 내가 가지고 놀던 건데 왜 네가 가지고 가!” 이런 식으로 울고 떼쓰는 아이, 토라지고 삐죽대는 아이, 몸싸움하는 아이, 자기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 아이 등 하루에도 수십 차례 다툼이 벌어지곤 한다.

몸으로 부딪쳐 다칠 수 있는 큰 싸움이 아니라면, 교사는 멀리서 지켜보며 아이와 사인을 교환한다. 때론 눈빛으로, 때론 강한 어투로 아이들에게 주문한다. 아이가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고 견뎌낼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 가급적 교사는 직접 개입하기 전에 잠시 지켜보는 시간을 가진다. 먹이사슬 생태계에 포식자를 없애는 등 인위적인 개입을 하면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는 것처럼, 교사의 지나친 개입이 또래 문화의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이제 고작 12년 학교생활의 첫걸음을 떼고 있을 뿐이다. 교사든 학부모든, 세세히 간섭할 것이 아니라 숲을 보듯 크게 멀리 보면서 아이를 지도해야 한다.

 

ⓒUnsplash.

 

다음은 학부모의 불안증이 아이와 학급에 어떻게 침투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진영(가명)이가 방과 후 집에 돌아와서 말한다.

 

“엄마, 오늘 영수(가명)가 날 때렸어.”

“무슨 일이 있었는데?”

“나는 블록을 가지고 놀고 있는데 아무 이유 없이 나를 때리고 사과도 안 했어.”

“너는 맞고만 있었어? 선생님께 말했어?”

 

엄마가 이런 식으로 시시콜콜 캐물으면, 아이는 유치원 때 기억까지 동원하여 자기 입장에서 유리한 말을 하게 된다. 마치 자신은 엄청난 희생자이고 상대는 못된 가해자임을 증명하려는 듯 말한다. 엄마는 실제 상황과 사건의 진짜 내막은 생각지도 못하고 아이 편에서만 상상을 하게 된다. 엄마는 아이에 대한 연민과 영수에 대한 분노로 하루 종일 머릿속이 어지럽다. 진영이는 자신의 문제를 엄마의 문제로 떠넘겼다.

한편, 진영이는 모든 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시 학교에 간다. 그리고 영수와 다시 재미있게 논다. 진영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는 다시 묻는다.

 

“오늘은 학교에서 어땠어?”

“재미있었어.”

“영수가 또 때리진 않았어?”

 

아이는 잊고 있었는데 엄마가 다시 상기시켜 주니, 영수 이야기뿐 아니라, 자신이 당한 억울한 일을 조목조목 소상히 말할 것이다. 엄마는 아이의 또 다른 부정적인 말에 분노는 더 증폭되고 온종일 아이에게 주파수를 맞추며 노심초사하게 된다. 아이는 또 다시 잊어버린다.

셋째 날, 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엄마가 즉시 달려가서 묻는다.

 

“오늘은 누가 널 괴롭혔어?”

“식당에서 줄 서는데 영수가 밀었어.”

 

엄마는 증오의 화신이 되고 영수를 문제 덩어리 아이로 확신하며 학교폭력 사건으로 신고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이렇게 부모에 의해 나쁜 기억만 증폭되는 대화를 ‘상처 후벼 파기’라고 부를 수 있다. 상처를 자꾸 후벼 파고 생채기를 내어 아이가 학급에서 가졌던 다른 좋은 기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엄마 자신이 확신하고자 하는 이야기만 남게 된다.

그리고 평소 가까이 지낸 엄마들에게 아이들의 문제를 어른 수준의 용어로 각색하여 다른 아이와 그 부모를 험담하기 시작한다. 아이가 당한 일을 어른들 사이에서 모함 거리로 둔갑시켜 타인을 소외시키는 복수가 일어난다. 이러한 학부모의 그림자가 아이들의 또래 관계를 어지럽히고 학급 분위기를 부정적으로 만든다. 이런 일이 1학년 학급에서 흔히 일어난다. 교사로서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1학년 아이들을 보면 학교폭력 사안이 될 만큼 지속적이고 의도적인 괴롭힘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부모는 꾸며내기 명수인 아이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 쉽다. 부모 자신의 진실을 왜곡하게 만드는 질문에 아이들이 대답한 결과를 믿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염려하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캐물을수록 아이의 마음도 부모를 닮아간다.

교사로서 친구 관계가 좋은 아이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희생양처럼 여기는 아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아이의 자아상은 부모라는 거울이 비춰준 대로 형성된다. 상처받았냐고 자꾸 묻지 마라. 부모 자신의 사춘기 시절 힘들었던 기억을 지금 자신의 아이에게 투사하여 이를 사실처럼 말하는 일을 삼가라. 교사 입장에서는 부모의 말 한마디에 달라지는 아이들의 미세한 떨림도 알아차릴 수 있다. 나의 성급한 말 한마디가 아이의 자아상과 친구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면서 행동해야 한다. 학부모도 학급 공동체의 일원임을 자각하고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Pixabay.

 

담임교사가 진영이와 영수가 싸우면서도 함께 잘 노는 관계라고 하면 믿어야 한다. 아이를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담임교사이다. 부모가 할 일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아이를 구조하는 일이라기보다 구명조끼를 입히고 수영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다. 특히 아이가 교우관계에서 배우고 자라는 그 영역은 아이들이 스스로 감당할 몫임을 인정해야 한다. 부모의 걱정이 아무리 크다 한들 도움이 될 수 없다. 아이들은 비열함과 배신, 놀림이라는 울퉁불퉁한 언덕과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과정에서 넘어지고 상처를 받으면서도 다시 일어설 것이다. 아이가 살려달라고 소리칠 때, 우리가 해 줄 것은 변호사나 경찰이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기대어 울 수 있는 어깨와 들어줄 수 있는 귀’가 되어 주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자신의 길을 항해해 갈 것이다. 그 길에서 친구를 만나고 우정을 배울 것이다. 아이들 내면에는 하나님께서 심어 두신 세상을 이겨나갈 생명력, 유머, 지혜가 있음을 늘 기억하자.


[1] 사춘기 두 아들을 키우는 22년 차 교사로서 작년에 1학년 담임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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