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에서 노예와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은 이유는 이들이 성숙한 시민의 자격이 없다고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근대 프랑스 혁명에서 여성 참정권을 주장한 메리쿠르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것도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여성은 1920년대에 와서야 남성과 동등한 보통 선거권을 획득하였는데, 1920년대에 비로소 여성이 정치적으로 성숙해졌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제 우리 사회는 미성숙한 선거권자에 대한 걱정을 뒤로하고 미래를 이끌어 갈 역량 있는 유권자를 교육하자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본문 중)
이봉수(덕성여고 교사)
2019년 12월 27일, 패스트트랙에 의해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핵심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었다. 복잡하고 생소한 이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두고 각 정당은 유리한 셈법을 찾아내느라 분주했다. 그런데 이번에 통과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선거 연령을 19세에서 18세로 낮추는 내용이 있었다. 뜨거운 논쟁이 있을 만했지만 준연동형 제도에 대한 갑론을박에 묻혀 조용히 통과되었다.[1] 하지만 이후로도 조용할 것 같지는 않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 선거 연령 하향 조정에 따른 정치 교육 논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벌써부터 서울시 교육청이 선거 공약과 관련된 선거 교육을 하겠다고 하는 것을 선관위에서 불법 사전 선거로 규정하며 금지시켰다.
참정권의 역사를 돌아보면, 참정권은 성숙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얻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획득함으로써 성숙해지는 권리인 것 같다. 고대 그리스에서 노예와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은 이유는 이들이 성숙한 시민의 자격이 없다고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근대 프랑스 혁명에서 여성 참정권을 주장한 메리쿠르(Theroigne de Mericourt: 1762-1817)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것도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여성은 1920년대에 와서야 남성과 동등한 보통 선거권을 획득하였는데, 1920년대에 비로소 여성이 정치적으로 성숙해졌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2] 그런 면에서 이제 우리 사회는 미성숙한 선거권자에 대한 걱정을 뒤로하고 미래를 이끌어 갈 역량 있는 유권자를 교육하자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이번 4월 선거의 18세 유권자 수는 53만 명이고, 이 중 고등학생 유권자 수는 14만 명이다.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 선거이므로 그 숫자의 영향력이 실제로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생 중 일부가 유권자에 포함되었다는 것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선,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 정치적 이슈들이 포함될 것이라는 점이다. 학교에서는 ‘촛불 집회’ 같은 격동적인 사건이 아니고서는 정치 이슈가 담론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학생들은 주로 입시 문제, 연예인 소식, 학교 내의 소소한 갈등을 주요 이야깃거리로 삼는다. 그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선거권이 주어졌으므로 학생들 사이에서 각 당의 공약을 중심으로 한 정치 이야기들이 오고 갈 것이다. 투표를 하는 학생들뿐 아니라 아직 예비 유권자인 학생들도 자신들과 관련된 정치적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러운 정치사회화 과정을 겪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정치권은 학생들의 일상적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정치권의 학교에 대한 관심은 주로 대입 선발의 공정성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것도 20% 상위 대학의 진학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지난 몇 년간 이루어진 수시와 정시 관련 논의는 이것을 잘 보여준다. 무엇이 더 공정한 제도인가, 무엇이 빈부격차 해소에 더 도움이 되는가, 무엇이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보장할 것인가, 교육 현장의 주체들 다수와는 상관이 없는 이런 논의들로 교육계가 격랑에 휩싸였다. 앞으로는 주요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나머지 대다수 학생들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낙후되고 어려운 교육 환경을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 정치권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에 빠르게 대응하는 정치 세력이 미래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게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정치 교육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 점은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자. 지금까지 학교에서의 정치 교육은 ‘민주 시민 양성 교육’을 의미했다. 민주 시민 양성 교육은 다시 ‘교과 교육’과 ‘생활 교육’으로 구분된다. 교과 교육은 주로 사회과가 담당한다. 학생들은 헌법의 원리, 국가의 구성 원리, 선거제도, 정치의 일반 원리 등 정치적 지식 및 소양을 교육받는데, 나선형 교육과정을 따라 개념을 점차 확장해 나간다. 생활 교육 부분은 학급 회장과 부회장의 선출, 전교 학생 및 부회장의 선출, 학급회의, 각종 학교 현안에 대한 학생들의 직간접 참여 등으로 진행되어 왔다. 학생들은 이 과정을 통해 일종의 시뮬레이션 정치 경험을 하며 정치 효능감을 높이는 정치 사회화 교육을 받는다. 교육감 직선제 이후에는 교육감들이 주도하는 ‘교복을 입은 시민’ 같은 민주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키우고자 하는 노력들이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그럼에도 이러한 방식의 민주 시민 양성 교육은 18세 선거권과 관련해 부족한 점이 많다.
우선, 교과 교육 측면에서 살펴보자. 나선형 교육과정에 의한 지식 습득 위주의 정치 교육이 현실 적합성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대학교에서 배울 ‘정치학’이나 ‘법학’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이 교육과정은 정치적 판단을 통해 투표를 해야 할 18세 고3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데 한계가 있다. 게다가 고등학교에서의 ‘정치’ 과목은 선택과목이므로 모든 학생들이 배우는 것도 아니다.
또한, 생활 교육이 정치 사회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민주 시민의 소양을 함양해야 할 프로그램들이 대개 형식적으로 진행되거나(학급회의), 소수 학생과만 관련이 있거나(회장 선거), 중요한 주체가 아닌 참고인으로 진행되어(각종 현안에 대한 학생 의견 조사) 오히려 정치 효능감을 떨어뜨리기 일쑤다. 대부분의 현안 문제 해결도 자신이 실제로 살게 될 사회에 대한 판단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고, 시시콜콜한 일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그러므로 18세 선거권자들이 바르고 역량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치 교육, 혹은 민주 시민 교육의 패러다임에 전적인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독일의 예를 들어보자. 독일의 경우 히틀러의 전체주의에 다수 시민이 협조한 것에 대한 반성에서 정치 교육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 교육을 하나의 지적인 교양 교육이나 대학교 이후 단계에서나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지 않았다.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비판적이고 민주적인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중대한 과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독일 사회에서 정치 교육은 정치적 현안과 관련된 교육이면서 비판적 판단력을 함양하는 교육이 되었다. 또, 이러한 종류의 교육을 위해서는 교실 속 수업을 넘어, 학교, 지역, 시민단체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했다. 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독일 연방정치교육원이다. 교육원은 정치 교육에 대한 자문 활동, 행사 진행, 자료 제공, 프로젝트 지원 등을 수행한다.
또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도 전후 독일 교육계의 큰 과제였다. 실제로 독일도 우리처럼 좌우 이념이 날카롭게 대립하면서 학교 현장이 극우, 극좌의 정치 교육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독일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치를 말하지 않는 방식이 아니라 정치 교육을 바르게 진행하는 방식으로 좌우 진영의 합의를 이루었다. 이를 독일에서는 ‘보이텔스바흐 합의’라 한다. 보이텔스바흐 합의에서 그들은 강압적 주입식 교육을 반대하는 ‘강제성의 금지’, 실제와 같은 논쟁적 상황을 드러내는 ‘논쟁성의 유지’, 학생 자신의 정치적 상황과 이해관계를 판단하는 능력의 함양이라는 세 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독일의 사례와 우리 현장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며, 새로운 정치 교육을 위해 필요한 몇 가지를 제안해 본다. 첫째로, 18세 선거권을 정치 교육의 하나의 종착점으로 보고, 투표권을 가진 학생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을 기초로 민주 시민 교육의 철학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어진 공약들을 잘 분석하고, 그것들이 자신의 삶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판단하는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박제화된 민주 시민 양성 교육을 넘어 논쟁적 주제들을 학교 교육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형 보이텔스바흐 합의’ 같은, 진보와 보수가 함께 동의하는 논쟁 수업의 원칙이 표명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정치 교육은 시뮬레이션 교육에 그치지 않고, 학교의 문제, 지역사회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교육이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고 성인이 되었을 때 적극적인 시민의 역할을 감당하고자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 사회 및 지역사회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셋째로, 정치 교육뿐 아니라 교육 전반에서 토론 및 토의 중심의 방법론을 도입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투표를 위한 정치적 판단을 하는 것은 단순히 정치의 영역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 사회, 환경, 에너지, 의학 등 인문과 자연을 망라한 모든 영역에서 무엇이 나에게, 공동체에, 인류에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과 전반에서 각 분야의 쟁점을 드러내고 이 쟁점을 토의하며 공동체적 합의점을 추구해 나감으로써 합리적 의식을 함양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18세 선거권 확대에 따른 정치 교육에 대한 논의는,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정의관을 주입하려 하거나 그것을 완전히 금지시키려 하는 양극단의 대립과 긴장 상태에 붙잡혀 있다. 올바른 정치 교육은 이 두 산을 넘어 학생들이 주체적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일 것이다.
[1]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OECD가 주관하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비교를 위한 평가. 만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3년마다 평가한다. 편집자 주) 등 국제 시험에서 최상위를 달리는 한국 학생들의 명민함을 찬양하면서, 유독 정치적 판단에 있어서만은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논리는 조금 기이해 보였다. 또한 한국을 제외한 모든 OECD 국가들이 이미 18세 선거권을 인정하고 있었다. 어찌되었건, 이제 18세가 정치적 판단을 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논쟁은 의미가 없어졌다.
[2] 한국 정치 발전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독재 종식 후 헌법에 명시된 지방자치제를 다시 복원할 때 수많은 반대가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논리였다. 여러 문제점이 실제로 있었지만 지금은 지방 자치가 민주주의의 당연한 원리이며 더 적극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가치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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