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감과 우울증의 차이에 대해서 여기에서는 한 가지만 강조해서 말씀드리려고 한다. 우울감과 우울증은 그 해결책이 완전히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우울감을 극복한 경험을 떠올리며 우울증 환자에게 충고하는데, 이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에게 ‘신앙생활 열심히 하라’는 것은 바람직한 조언이 아니다. 그것은 우울감의 경우에 통하는 조언이지 우울증에서는 통하는 조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단명료하게, 다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우울감(blue)은 자극(stimulation)을 통해 개선되고, 우울증(depression)은 규칙성(regulation)을 통해 개선된다.”(본문 중)

최의헌(목사, 연세로뎀정신과 원장)

 

블루(blue)는 기분 저하를 색으로 나타낸 서양식 표현이다. 비슷한 우리말 표현으로 ‘칙칙하다’가 있다. 남 얘기가 아니다. 최근에는 필자도 무기력하고 매사가 귀찮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생활 방식이 바뀐 상태가 오래 지속하였기 때문이다. 진료실에서도 전보다 참을성이 부족해져서 환자들의 말에 감정이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환자들도 이전보다 더 힘들다고 말한다. 힘든 정도가 코로나19 여파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무기력과 기분 저하 수준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해 주고 혼자만 더 힘든 것은 아님을 보게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사실 필자는 본래 게으른 사람이었다. 코로나19 사태 전에도 나는 산책이나 운동과는 거리두기를 하며 살아왔다. 사람을 만나거나 모임에 가는 일도 많지 않았다. 요즘은 늘 마스크를 쓴다는 점을 제외하면 나의 생활 반경과 습관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런데도 확연히 전과 다르게 무기력해진 것을 느낀다. 오죽하면 나 같은 사람도 운동을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겠는가.

아무튼,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현실의 제약만큼이나 심리적 제약도 큰 힘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우리 생활이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도, 주위 사람들이 생활 전반에 제약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위축된다. 밖에 안 나가나 못 나가나 한가지인 것 같으나, 안 나갈 땐 답답하지 않으면서도 못 나갈 땐 나갈 맘도 없으면서 답답한 것이다. 마음은 몸을 지배할 수 있다.

 

ⓒunsplash.

 

이런 원리를 적용한 심리 상담법으로서 인지 치료가 있다. 생각의 자세를 바꾸어서 몸과 마음을 개선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래에 대한 전망’에 대해 생각해 보자. 미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부정적인 예측은 긍정적인 예측보다 삶의 태도를 위축시킨다. 예측하는 방식, 즉 생각의 자세가 현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다.

막연함과 분명함의 차이도 우리의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 코로나19 상황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막연함이 있다. 그러나 만약 한 달 후면 끝난다는 분명함이 있다면 지금 나의 삶에 다른 영향을 끼칠 것이다. 현재 겪는 고통의 수준은 변하지 않아도, 끝나는 시점이 분명하다면 고통을 견딜 힘이 더 생겨난다. 이처럼, 현재의 어려움에 집착해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부 환자에게는 그의 예측에 포함된 막연함과 분명함의 요소를 살피고, 분명한 부분에 좀 더 무게를 두도록 권하기도 한다.

한편, 분명함의 시점이 다가오면 오히려 더 조바심이 생기기도 한다. 대소변을 멀리서 참는 것보다 화장실 문 앞에서 참기가 더 어렵다. 6시 퇴근 시간을 1시에 기다리는 것보다 5시에 기다릴 때 더 초조하다. 왜 그럴까? 대표적으로 두 가지 심리가 작용하는데, 하나는 그동안 충분히 참았으므로 더는 못 참겠다는 심리이다. 다른 하나는 혹시 분명한 것이 유보되거나 제거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 심리이다. 때로 인지 치료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속이도록’ 충고한다. 5시에 초조해 지면 지금을 그냥 1시라고 생각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바심과 초조함을 축소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순간의 처치로 숨통을 트이게 해주어 보다 여유롭게 대처하게 하는 것이다. 감기약으로 열과 재채기를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것도 비슷한 원리이다. 이처럼 코로나 블루의 시기에는 심리적인 제약을 이겨내는 다양한 지혜를 잘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누구나 무기력과 기분 저하를 경험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계기가 되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깊은 무기력과 우울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환경으로 인한 정상적인 반응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내적 취약성 때문에 우울증이 발생하는 경우이다. 우울감과 우울증은 둘 다 우울이라는 공통적 특성이 있지만 그 수준은 완전히 다르다. 우울감은 누구나 정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으며 우리가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수준이다. 반면 우울증은 질환으로 규정되는 비정상적인 상태이며 혼자서는 견뎌낼 수가 없으므로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흔히 ‘마음만 고쳐먹으면 되는 것’이라고 충고하면서 우울과 무기력의 상태를 그저 게으른 것으로 치부하는데, 우울감의 경우엔 그런 채찍질이 도움이 되지만, 우울증의 경우엔 그렇지 않다.

우울감과 우울증의 차이에 대해서 여기에서는 한 가지만 강조해서 말씀드리려고 한다.1) 우울감과 우울증은 그 해결책이 완전히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우울감을 극복한 경험을 떠올리며 우울증 환자에게 충고하는데, 이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에게 ‘신앙생활 열심히 하라’는 것은 바람직한 조언이 아니다. 그것은 우울감의 경우에 통하는 조언이지 우울증에서는 통하는 조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단명료하게, 다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우울감(blue)은 자극(stimulation)을 통해 개선되고, 우울증(depression)은 규칙성(regulation)을 통해 개선된다.”

 

ⓒunsplash.

 

평소에 당신이 우울할 때 무엇으로 기분을 개선하는지 적어보라. 쭉 열거해 놓고 보면 항목들의 공통점은 ‘자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분이 저조하면 ‘으쌰으쌰’ 하면서 기분 전환(refresh)을 일으키는 생각과 행동을 넣어 주어야 한다. 달콤한 음료나 과자가 그러한 자극으로 흔히 사용된다. 재미있는 생각이나 새로운 경험도 비슷하게 작용한다. 자극은 평소에 늘 있는 것이 아닌 것으로서 변화와 전환의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신앙생활 열심히 한다’는 말은 기존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증가시키거나 새로운 집회나 활동에 참석하는 변화를 의미한다. 새로운 자극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극이 우울증에도 유효할까? 그렇지 않다. 우울증에 들어가면 평소에는 자신에게 즉효 약이던 자극도 무용지물이다. 우울할 때 커피만 마시면 회복되고, 여행만 다녀오면 나아지던 사람들도 우울감을 넘어서는 우울증에 빠지면 커피도 여행도 효과가 전혀 없고 오히려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잘 통하던 자신의 자극 방식이 안 통할 때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중 하나로 나아간다. 하나는 더 큰 자극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회복보다는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는 원래 쓰면 방식이 안 통하니 어떤 방법도 없으리라 생각하고 절망하는 것이다. 결국 두 갈래가 모두 막다른 길이 되고 만다. 이런 시점에 진실을 알려주는 ‘복음’(a good news)이 필요하다. 그 복음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의 너의 상태는 우울감이 아니라 우울증이다. 그래서 자극이 안 통하는 것이다. 해결책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해결책이 아닌 다른 해결책을 써야 한다.” 즉, 우울증도 나을 수 있다는 말이다.

우울감과 우울증의 해결책이 다르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두 가지가 같은 취급을 받으면 안 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물론, 여전히 우울증은 마음먹기에 달렸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 회복된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한 번에 생각이 바뀌진 않겠지만 기회 있을 때마다 ‘우울감과 자극’, ‘우울증과 규칙성’에 대해 곱씹어보기를 바란다. 결국에는 나와 가족과 교인들에게 유용한 지침이 될 것이다. 규칙성이란 하루의 생활 리듬을 규칙적으로 꾸준히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제때 먹고, 제때 자고, 기본적인 몸과 마음의 활동을 정해진 대로 매일 유지하는 것이다. 변화보다는 익숙한 흐름에 더 비중을 두고 지낸다. 규칙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약물 치료가 필요하기도 하다. 규칙성이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지루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우울증에는 회복을 위한 왕도이다. 당장 반짝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으나, 하루하루 안정적으로 회복을 향해 나아가게 해 준다.


1) 둘을 구분하는 법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하라(편집자 주). 서울아산병원, “우울증입니까, 우울감입니까?” 헬스조선뉴스 2007. 4. 16. http://m.health.chosun.com/svc/news_view.html?contid=200704160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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