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며, 인간을 집단적인 환각 상태로 몰아가서 가장 이성적이라는 인간을 가장 비이성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집단적 환각 상태의 비이성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으로 인한 전쟁의 상처와 후유증은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모두 겪게 된다. 더구나 한국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희생과 파괴의 상처만 남긴 전쟁이었다. 이 파괴적 전쟁, 참혹한 살상과 폭력이 난무하는 전쟁을 교회가 적극적으로 지지 동조했다는 사실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의 십자가 죽음(고후 5:18~20, 엡 2:13~16)을 통한 복음을 증거할 사명을 저버리고 한 국가, 정부에 예속되어 그 지배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시녀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실로 한국전쟁을 통해 남북한 교회의 십자가는 전쟁의 상징이 되어버렸다.(본문 중)

최상도(호남신학대학교 교수, 역사신학)

 

한국전쟁과 기독교: 이데올로기에 찢긴 십자가①(전편) 보기

 

십자가, 평화가 아닌 전쟁의 상징이 되다

“전쟁을 그만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상징인 십자가가 이제는 전쟁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 전쟁터 각 진영에서는 승리를 기원하는 미사(예배)가 봉헌된다. 이보다 더 흉측스러운 일이 어디 있는가.” (에라스무스, 1517)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일어나자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분단된 남북 교회 모두 각각의 위치에서 전쟁을 적극 지원하게 되었다. 남한 교회 지도자들은 1950년 7월 대전제일교회에서 ‘대한기독교구국회’를 결성하여 여러 도시에 지회를 설치하고 국방부 및 사회부와 연결하여 선무, 구호, 방송 등으로 전쟁을 지원했으며, 나아가 기독교 청년들로 구성된 의용대를 조직하여 전선으로 보냈다. 1950년 10월에는 평양 탈환을 축하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는데, 약 3천여 명의 신도들이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국군과 유엔군 그리고 남쪽에서 파견된 윤하영, 한경직, 김양선, 이인식 등 장로교 대표들을 환영했다. 이들은 해방 공간에서 월남했던 목사들이었다. 1·4 후퇴 후, 부산 피난 시절에 남한 교회는 한경직과 류형기를 미국에 파견하여 한국 정황을 알리고 지원을 요청하는 등, 전쟁 승리를 위한 적극적 행동에 나섰다.

“전쟁 승리를 통한 통일”이라는 남한 교회의 태도는 1951년 여름, 휴전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하자 극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휴전 반대 입장을 고수한 이승만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는 정전(停戰) 반대, 휴전 반대 집회가 전국 각지에서 열렸다. 특히 휴전이 임박했던 1953년 6월 13-15일 사이에 서울에서는 약 7천여 명이, 부산에서는 1만여 명이 참석하여 휴전 반대, 북진 통일을 외치는 구국기독신도대회가 열렸으며, 세계 교회에 보내는 성명서를 통해 한반도의 통일은 “설복될 수 없는 마귀”인 “공산주의를 굴복시킴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남한 교회는 “최고의 구국적 행위”로 휴전 반대, 정전(停戰) 반대 운동을 진행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쟁 중 북조선기독교도련맹을 중심으로 한 북한 교회는 1950년 6월 인민군의 서울 탈환 환영 예배를 드렸고, 7월에는 김창준 목사를 포함한 조선기독교도연맹 대표들이 서울에 내려와 1947년에 활동이 중지된 좌파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민주동맹을 재건하기도 했다. 8월 5일 평양 및 북한 전 지역에서 개최된 궐기 대회를 통해 전국의 교인들에게 “정의의 성전”에서의 인민군 승리를 위한 예배와 기도를 호소하며 북의 전승을 위한 기도회를 가졌다. 나아가 전쟁의 승리를 위해 무기 대금 헌납 운동도 전개했다. 8월에 또한 기독교 교역자 궐기 대회를 열어 “정의로운” 전쟁 승리를 위해 “영웅적 우리 인민군대”에게 더 많은 무기를 헌납하기 위해 모금 운동을 “맹렬히 전개하자”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남북한 교회의 ‘전쟁 승리를 통한 조국의 통일’의 입장과 그에 따른 전쟁 동조 행위는 서로 다르지 않았다.

전쟁은 엄청난 물적, 인적 손실을 초래했다. 남한은 전체인구의 4-5%에 해당하는 82-85만 명이 사망, 실종되었으며, 민군 포함 약 111만 5천 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북한은 전체인구의 13-14%인 약 120-130만 명이 사망 혹은 실종되었고, 약 182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 부상자가 발생했다. 남북한의 교회도 피해를 입었다. 전쟁 전 1천 개 이상이던 북한 지역의 교회당은 초토화 전술에 따른 대대적인 미군 폭격에 의해 소수만 남게 되었고, 3-4만 명의 신자들이 양측의 교전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에서는 “조국 해방 전쟁”으로 불리는 한국전쟁 중 북한 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사망 혹은 실종된 교역자 수가 350여 명이며, 7만여 명 내외 개신교 신자들이 월남했다. 특히, 1950년 11월 8일 주일 예배를 드리던 신의주 제1, 2교회 교인 250여 명이 미군의 포격으로 몰사하였다는 보고는 유명한 사례이다.

 

한국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을지로5~6가.

 

1952년 6월 20일 세계교회협의회(WCC)에 보고된 내용에 따르면, 973개의 남한 지역 교회가 소실 및 파괴되었고, 997명의 교역자들이 공산군에게 체포되었고 889명의 신자들이 교전으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공산군은 교역자를 납북하고, 유엔군 및 군인을 환영한 기독교인들을 색출하여 사살하기도 했다. 전체 남한 개신교회 순교자 중 80% 이상이 이 시기에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어떠한 원인으로 발생했든지 전쟁의 본질은 파괴다. 전시에 나의 생명은 적의 죽음으로 보장되고, 내가 속한 사회의 존속은 적이 속한 사회의 패망으로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전쟁은 개인의 육체와 정신뿐 아니라 사회적 기반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그곳에 포흔(砲痕) 같은 깊은 상처와 후유증을 남긴다. 박태균의 말대로, 전쟁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며, 인간을 집단적인 환각 상태로 몰아가서 가장 이성적이라는 인간을 가장 비이성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집단적 환각 상태의 비이성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으로 인한 전쟁의 상처와 후유증은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모두 겪게 된다. 더구나 한국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희생과 파괴의 상처만 남긴 전쟁이었다. 이 파괴적 전쟁, 참혹한 살상과 폭력이 난무하는 전쟁을 교회가 적극적으로 지지 동조했다는 사실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의 십자가 죽음(고후 5:18~20, 엡 2:13~16)을 통한 복음을 증거할 사명을 저버리고 한 국가, 정부에 예속되어 그 지배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시녀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실로 한국전쟁을 통해 남북한 교회의 십자가는 전쟁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6.25 발발 직후 피난민들이 폭파된 한강 다리에 막혀 강변에 몰려있다.

 

일제 말기에 전쟁을 지원한 일본기독교단의 전쟁 협력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남북한 교회의 한국전쟁 동조, 지지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국가에 예속된 교회가 되어 복음보다 국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따랐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다. 198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통해 “우리는 갈라진 조국 때문에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을 미워하고 속이고 살인하였고, 그 죄악을 정치와 이념의 이름으로 오히려 정당화하는 이중의 죄를 범하여 왔다”고 죄책 고백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남북한 교회는 한국전쟁으로 강화된 각각의 지배이데올로기에 따라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하는 이날까지 여전히 ‘휴전’의 냉전 체제 속에서 상호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심지어, 전쟁 중에 교회를 지키기 위해 피난하지 않은 교인을 끝까지 목회하기 위해 남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 사랑을 본받아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지 않고 평화적 죽음을 택한 순교자들의 죽음을, 남한 교회의 ‘반공주의 재생산 기제’로 그리고 한국전쟁의 산물인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를 지속적으로 유포’하는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여전히 교회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동조자 내지 지지자로 자처하며 세속적 권력을 얻으려 하고 있다.

전쟁의 살상과 파괴를 다시 기억하고 재연한다는 것은 고통이고 악몽이다. 따라서 분단 체제와 휴전으로 인한 계속된 전쟁 위협으로 고통당하는 국민들을 위해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그것은 세속적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인한 전쟁의 폭력에 동조, 지지하거나 또는 같은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자기희생적 사랑과 용서를 통해 ‘화해’를 성취하신 것처럼 하늘의 방식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다시금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2018년 4·27 판문점 선언과 9·19 남북 군사 합의 이후 한반도에 불어온 평화의 바람으로 휴전이 종전으로 전환되고 머지않아 평화 통일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지난 6월 8일 북한의 남북 통신 연락선 전면 차단, 16일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대적 관계”로의 전환 선포 등으로 다시금 남북 간 긴장이 극대화되고 있다. 이런 시기에 남과 북의 교회는 과거에 국가 권력의 시녀가 되어 폭력과 파괴의 전쟁을 지지하고 동조한 과오를 회개하고, 세상의 폭력적 방식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 죽음으로 세상에 화해를 이룩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세상을 향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칼과 창을 쳐서 보습과 낫을 만드는”(미 4:3) 평화의 사도로 부름 받았음을 명심해야 한다. 새 하늘과 새 땅, 곧 어떠한 상함도 해됨도 없는(사 11:9) 평화를 희망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에 16세기 에라스무스의 외침은 여전히 강한 울림을 준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러워하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 되어 온 힘을 다해 전쟁을 반대하기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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