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는, 신약을 기록한 코이네 헬라어가 민중 언어였듯이 한국인을 위한 성경도 남녀노소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한글을 채택하였고, 단어나 표현도 한문투가 아닌 일상 생활어를 사용했다. 이는 그의 번역 조사들이 국경 무역에 종사하던 상인들로서 한문을 독점하던 유교 양반층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또한 로스가 번역문으로 한글을 선택한 것은 한글의 우수성 때문이기도 했다. 한문과 비교할 때 한국어가 그리스어 원문을 더 정확하고 아름답게 표현했기 때문이다.(본문 중)

옥성득(UCLA 한국기독교학 교수)

 

로스의 한글 성경으로 한글 기독교가 열리다

1877년 선교사를 위한 한국어 교본인 Corean Primer를 한글 영어 대조본으로 출판한 로스 목사는, 1881년 10월 9일 한국인 개종자들의 도움을 받아 첫 개신교 인쇄물인 『예수셩교문답』(Bible Catechism) 2,000부를 순한글로 출판했다. 138년 전이었다. 첫 부분을 현대어로 고쳐서 읽어 보자.

문: 천지 만물이 어떻게 있느뇨?

답: 하느님이 지어내은 것이라.

문: 하느님이 뉘뇨?

답: 영하고 얼굴 없어 보지 못하니 처음과 마지막 없고 능치 않음이 없으니 하느님의 총명은 측량 없이 알지 못하리라.

한국인에게 던진 첫 질문이 창조론이요 그 창조주인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였다. 일상어를 발음대로 적되 가능하면 아래아(·)를 생략하여 철자를 줄이고 간단하게 표기했다. 이 실험적 출판 후 1882년 봄, 첫 한글 복음서인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51쪽)와 『예수성교 요안ᄂᆡ복음젼셔』(39쪽) 각 3,000부를 출판하고, 이듬해까지 약 4,000부를 만주, 평안도, 부산에서 반포했다. 이로써 한글로 대량 인쇄된 문서를 가진 한국 기독교 시대가 열렸고, 동시에 근대 한글 출판 문화가 시작되었다.

심양의 문광서원에서 기독교 복음이 한글로 성육신하고, 예수께서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권서 전도인들과 동행하여 평양을 거쳐 서울까지 걷고 말씀하기 시작했다. 미국 선교사들이 오기 전에 한글 복음서가 먼저 한반도에 왔다. 로스 번역팀은 1887년 신약전서인 『예수셩교젼셔』를 완역 출판하고, 이후 5년 이상 로스본을 계속 발간하면서 만주와 압록강 주변 변경의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서북 기독교의 기초가 놓였다.

로스는, 신약을 기록한 코이네 헬라어가 민중 언어였듯이 한국인을 위한 성경도 남녀노소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한글을 채택하였고, 단어나 표현도 한문투가 아닌 일상 생활어를 사용했다. 이는 그의 번역 조사들이 국경 무역에 종사하던 상인들로서 한문을 독점하던 유교 양반층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또한 로스가 번역문으로 한글을 선택한 것은 한글의 우수성 때문이기도 했다. 한문과 비교할 때 한국어가 그리스어 원문을 더 정확하고 아름답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1887년 3월,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로교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 1842~1915)가 발행한 <예수셩교젼셔>. 평안도 의주 청년들이 번역을 주도하면서, 역본 곳곳에 평안도 사투리가 남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BBC 코리아

 

언더우드와 게일의 사전이 한글 말모음이 되다

로스 이후 서울에서 기독교 전도 소책자, 신문, 잡지, 서적, 성서가 한글로 출판되면서 한글 철자법, 띄어쓰기, 문법, 사전 등이 발전했다. 장로교회는 1891년부터 네비어스 정책을 채택하고 모든 문서를 한글로 출간했다. 그 대부분의 서적은 감리회활판소에서 출간했다. 또한 언더우드와 게일의 한영⦁영한사전과 문법서와 철자법 작업은 한글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오늘날의 한글과 한국어로 자리 잡게 했다. 아래 표에서 보듯이 1890년 8,400개에 불과했던 어휘는 개신교 출판 문서가 활발히 보급되던 1897년에 35,000개로 늘어나고, 1931년에는 다시 80,000개로 늘어났다. 한국어의 말 창고에 기독교 복음으로 세례를 받은 말이 좋은 씨앗처럼 저장되면서 근대 한국 사상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게 된다. 한국인의 근대 사상과 문화 발전에는 한글 기독교 서적과 성경의 출판과 반포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겠다. 표에서 한영자전은 영한자전을 포함하는 사전이었다.

 

(제공: 옥성득)

 

한글의 구성 원리는 외래성과 고유성의 융합

한글 자음은 음양오행설에 기초한 오음(어금니, 혀, 입술, 이, 목구멍에서 나오는 음인 ㄱ, ㄴ, ㅁ, ㅂ, ㅇ)을 기본으로 하지만, 하늘(ㅇ), 땅(ㅁ), 사람(ㅅ)의 삼재(三才)가 초성의 기본음이 된다. 모음은 천(⦁), 지(ㅡ), 인(ㅣ) 삼재를 기본 단위로 구성된다. 한 음절도 초성(하늘: 자음), 중성(땅: 모음), 종성(사람: 자음)의 삼성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한 글자에는 음양오행설과 삼재설이 융합되어 있다. 동아시아 세계관을 지배하던 중국의 음양오행설을 수용하는 포용성과 함께 한국 고유 사상으로 발전한 삼재설을 핵심 원리로 조화시키는 주체성이 한글의 원리이다. 곧 한글은 타자(한자나 외래어)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독립적 주체성을 유지하도록 한다.

 

한글의 정치성은 나라의 독립 추구

1896년 6월 4일 『독립신문』을 보면 새로 학부대신이 된 신기선은 “머리 깎고 양복 입는 것은 야만이 되는 시초요, 국문을 쓰고 청국 한문을 폐지하는 것은 사람을 짐승으로 변하게 만드는 일이요, 서양 태양력을 쓰고 청국 황제가 준 음력을 폐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라고 상소했다. 이 기사를 본 인천 독자들이 신문사에 편지하여 “국체를 손상하고 간신히 된 독립국을 도로 청국 속국을 만들자는 경영이요 우리 대군주 폐하를 남의 나라 임금들보다 낮게 하자는 뜻이라”고 항의하고 신기선의 사임을 요구했다.

개화기의 한글 사용은 중화주의로부터 벗어나 근대 독립 국가를 수립하는 중요한 길이었다. 마찬가지로 한글을 말살함으로써 민족정신을 죽이려고 했던 식민지 시대에는 일본 제국주의와 대동아주의에서 해방되어 독립된 근대 국가를 세우는 한 방도였다. 우리 고유의 문자는 한국인의 영혼을 살리고 민의를 소통하고 지식을 축적하는 수단인 동시에, 민족의 생사가 달린 독립과 건국의 문제였다.

 

한글의 사회계급성은 민중지향성

로스 이후 개신교 선교사와 한국인 저자들은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의 정신을 실천한 자들이었다. 중국 문자인 한자로 된 유교 경전과 한문 서적을 읽고 배우지 못한 일반 백성들이 뜻을 제대로 펼 수 있는 길은 한글이었다. 어리석은 백성도 배워서 사람답게, 한국인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성경과 기독교 문서로 열고자 하였다. 정음이란 부패와 불의의 세상에서 보통 사람과 함께 숨 쉬는 소리요, 낮은 자, 주변인, 소외자의 목소리도 들리게 하는 소통의 도구이다. 한글은 특권층과 엘리트의 문자 독점과 사유화를 깨고 문자와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배움과 사회 활동의 기회를 균등케 했다.

 

드라마 <뿌리깊은나무> 중 세종대왕(한석규 분)이 훈민정음을 민중들 앞에서 반포하고 있다. (출처: SBS)

 

한글의 신학성은 성육신과 십자가

한글은 계시(복음)를 담는 그릇이요, 기독교 복음은 한글로 성육신했다. 한글 신학자 다석 유영모(柳永模 1890~1981)는 한글은 소리글자이면서 또한 뜻글자라고 하여, 기독교 복음이 그 그릇 안에 담기면서 한글이 가진 뜻이 기독교화했고, 기독교 복음은 한글화했다고 보았다. 한글 한 글자 한 글자를 쓰고 말할 때마다, 한국인은 땅(ㅡ)에서 하늘(•)을 향해 홀로 뚫고 올라 바로 서려는 인간(ㅣ)을 지향한다. 땅(ㅡ)의 욕심, 미움, 거짓을 극복하려는 인간(ㅣ)이 만나는 자리가 십자가(十)이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인 사랑의 점(•)을 찍어 참 나(얼나)를 찾고 성령과 더불어 제소리를 내어 시대에 책임지는 “가온찍기”(「·」)를 하는 것이 십자가의 길이다.

유영모와 김흥호와 여러 한글 신학자들은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파타하’도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가온찍기로 읽었다. 내가 ‘가’야한다. ‘나’가마. 모든 사람이 ‘다’ 나간다. 기쁨으로 ‘나’간다. 어‘머’니께, 아‘버’지께 나간다. ‘살’기 위해서 나가고, ‘알’기 위해서 나가고, ‘자’라기 위해서 나가고, ‘찾’기 위해서 나가고, ‘크’기 위해서 나가고, ‘구’름 타고 나가고, ‘꽃’을 피우기 위해서 나간다. 하나님 끝에까지 나간다.

예수의 십자가, 그 피의 길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까지 용맹정진하는 수도사, 동역자, 개혁자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음양과 좌우로 나뉘어 싸우는 혼돈의 천지를 제3의 변수인 종교적 인간(巫, Homo religiosus)이 개입하여 춤추고 노래하고 기도하는 제사/예배를 통해 소통시키고 화해시켜 본래의 조화로운 상태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 한국인의 영성의 원형이요, 한글이 지향하고 창출하려는 이상적 세계이다. 그것이 십자가로 죽고 부활로 사는 예수의 복음이다. 하늘의 보물을 담는 것이 한글 성서였다면, 그 보물을 공유하고 이 세상에서 십자가를 구현하고 부활을 맛보는 것이 한글 기독교의 사명이다. 한글을 종이에 쓰고, 자판으로 치고, 화면에서 만지고, 단추를 누를 때마다, 우리는 죽고 예수는 사는 일, 땅에 속한 것은 죽이고 하늘에 속한 것을 찾는 예수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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