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교회 개척의 성공률이 낮은 까닭은 목회자 개인에게 모든 부담이 지워져 있기 때문이다. 개척 교회를 시작하는 목회자는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과 외로움을 견뎌내야 한다. (중략) 간혹 합류를 생각하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지만 너무나 적은 예배 인원에 부담을 느끼고 곧 합류를 포기한다.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현 개척교회의 실상이다. 극심한 어려움과 좌절감 속에서 어느 순간 목회자의 인내도 한계점에 이르고 태어나려던 교회는 유산되고 만다. 너무나 많은 개척 교회가 이런 과정을 겪는다.(본문 중)

김중락(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말씀동산교회 장로)

 

개인이 시작하는 교회 개척은 복음 전파에 장애만 될 뿐이다

먼저, 이 글이 교회 개척을 시작했거나, 준비하고 있는 이들을 비난하고 좌절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작성된 것이 아님을 밝혀 둔다. 이 글은 교회 개척에 대한 당위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할 뿐이다. 이 글이 주장하는 내용에 관해 작금의 노회들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인 만큼, 현재의 교회 개척 문화를 철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바른 방향인지는 알고 있어야 하며, 조금씩이라도 개혁을 추진해나가야 한다.

10년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종교 분포 조사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 교인의 수는 2005년에 844만 명이었으나, 2015년에는 967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는 개신교가 불교의 교세를 능가하였고, 대한민국의 최대 종교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최근 5년 동안에 개신교인의 수는 가파른 감소세를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장통합 총회 통계 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통합 교단 교인 수는 2014년 280만 명, 2015년 278만 명, 2016년 273만 명, 2017년 271만 명으로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최근 개신교회의 부정적 이미지를 고려한다면 더욱 큰 감소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의 수와 교회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독교인 수는 감소하는데 목사의 수와 교회의 수는 증가한다? 2020년 한국교회의 아이러니 중 하나이다. 그러면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단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사역지의 수보다 신학교를 졸업하는 이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사역지를 찾지 못한 이들이 교회 개척을 통해서라도 일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는 기존의 교회에 실망하여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어보자는 동기에서 개척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교회 개척이 쉽게 이루어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개척에 대한 교단의 통제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교회를 개척하고 싶으면 적당한 예배 처소를 마련하여 시작하면 되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경우 개척 교회는 목회자 단독으로 시작한다. 목회자 본인이 목돈을 구해 조그만 공간을 빌리고 교회 간판을 달고 가족 예배로 시작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공간만 확보되면 가능한 것이다. 소속 노회의 엄격한 심사 절차와 협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회 개척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혹자는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교회 개척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도 같은 숭고한 일이니, 개척이 많으면 많을수록 바람직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이 주장은 현 교회 개척의 상황을 살펴보면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개척 교회 성공률은 1%도 못 된다고 한다. 잠깐 생겼다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한국식 교회 개척의 성공률이 낮은 까닭은 목회자 개인에게 모든 부담이 지워져 있기 때문이다. 개척 교회를 시작하는 목회자는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과 외로움을 견뎌내야 한다. 교인이 없고, 헌금이 없으니 사례를 받을 방법은 없다. 어느 공적 기관으로부터도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사비를 털어야 하는 실정이다. 간혹 합류를 생각하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지만 너무나 적은 예배 인원에 부담을 느끼고 곧 합류를 포기한다.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현 개척교회의 실상이다. 극심한 어려움과 좌절감 속에서 어느 순간 목회자의 인내도 한계점에 이르고 태어나려던 교회는 유산되고 만다. 너무나 많은 개척 교회가 이런 과정을 겪는다.

이렇게 유산된 교회 개척은 복음 전파에 장애가 된다. 개척 교회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현상은 불신자들의 눈에 동네 구멍가게 하나가 생겼다 사라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들에게 교회는 영리 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도시나 아파트촌의 경우 한 건물에도 2~3개의 개척 교회가 들어서 있는 모습이 흔하다. 금세 다른 간판을 바꿔 단 교회도 보인다. 이는 건물마다 빽빽이 들어선 학원과 병원이 다른 학원과 병원으로 간판을 바꾸어 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개인이 세운 교회이다 보니 문을 닫는 것도 목회자 개인의 마음대로이다. 이런 경우 교회를 개척하고자 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장소를 파는 경우도 드문 일이 아니다.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일이 아니지만, 교회를 사고판다는 것이 불신자들의 눈에 어떻게 여겨지겠는가? 세상이 교회에 바라는 것은 진리를 구하는 구도자로서의 모습인데, 그들에게 거래의 대상으로 보이는 교회가 어찌 세상을 구할 수가 있을까.

게다가 목회자 개인에 의한 교회 개척은, 교구 교회와 목회자의 소속을 노회에 두는 장로회 교회의 근본 원리에 반하는 것이며, 노회의 정책을 혼란케 만들 뿐이다. 어느 곳에 교회 개척이 있어야 할 것인지는 노회가 결정할 문제이다. 교회의 분립과 통합도 노회의 소관이다. 어느 교구에 회중이 지나치게 많을 시 분립을 결정하고, 또한 회중의 수가 지나치게 적을 시 통합을 결정하는 주체는 노회이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에서 노회의 역할은 전무하다. 개척된 교회가 노회 가입을 원하면 허락해 주고 상회비나 받고자 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면 바람직한 교회 개척은 어떤 것일까?

 

말씀이 필요한 곳에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

교회 개척이 필요한 곳은 어디일까? 종교개혁 직후 존 녹스에 의해 초안된 『제1 치리서』는 ‘시찰감독’(Superintendents)의 자리를 규정하고 있는데, 그들의 주요 임무는 교회가 없는 곳곳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다. 『제1 치리서』가 규정한 시찰감독의 기능을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는 당분간(for this time) 이 나라에 있는 모든 경건하고 학식 있는 이들 가운데 12명 또는 10명(우리가 전국을 구분한 지역만큼)을 선택하여 교회를 개척하고 일으키고, 그들로 하여금 현재 목회자가 없는 곳에 목회자를 세우는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깁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나라 모든 백성들이 사랑과 돌봄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분들도 백성들에게 빚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단순하고 무지한 이들(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말씀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이 지식을 갖게 되고, 그 지식으로 미신과 무지로 죽었던 자들이 경건의 느낌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과 참된 종교와 예배에 대한 더 많은 지식을 구하도록 자극을 받을 것입니다. 만일 백성들을 내버려 두면 그들은 불평할 뿐 아니라 장님의 상태와 그들이 익숙한 우상숭배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부분은 그들은 교회가 필요한 곳, 즉 말씀이 필요한 곳을 위해 시찰감독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일을 전담하도록 한 것이다.

교회는 일자리가 없는 곳이 아니라, 말씀이 필요한 곳에 세워져야 한다. 따라서 노회는 관할 구역 내에 말씀이 미치지 못하는 곳, 또는 가까운 곳에 교회가 없어 먼 길을 이동해야 하는 곳이 있는지를 살펴서 교회 개척지를 정해야 한다. 관할 구역 내에서 노회의 승인을 받지 아니한 교회 개척이 이루어지는지를 면밀히 살피고, 불필요한 곳에 개척이 이루어지는 것을 통제해야 한다.

그리고 개척지 선택의 조건이 ‘말씀이 필요한 곳’이 되어야 한다면, 교단의 교세 확장이라는 목적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한국 장로회 교회의 문제점 중 하나는 교단이 크게 10개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분열은 개척지 선택에 큰 혼란을 주고 있다. 타 교단이 교회가 여기저기 있어도 자기 교단의 교회가 없으면 개척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한 상황이다. 마치 타 교단을 타 종교처럼 여기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골목마다 교회가 들어서 있다. 주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교회의 목적이라면 타 교단의 교회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각 교단의 노회는 개척지 선정에 있어서 타 교단의 교회가 있는 곳이라면 말씀이 전파되고 있는 곳이라고 여기고 개척지에서 제외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실제적인 제안을 하나 하겠다. 지역별로 주요 장로회 교단의 노회들, 즉 같은 지역을 관할 구역으로 두고 노회들이 협의체를 구성하여 교회 개척과 난립의 문제를 조정하도록 하자.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이 협의체에서 서로 간의 경쟁을 막고 가장 잘 준비된 노회에게 개척을 하도록 조정하면 어떨까? 적어도 한 건물에 교단이 다른 네 개의 교회가 문을 여는 꼴을 보이지는 말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우리 모두 주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동지가 아니던가!

 

노회는 교회 개척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관할 구역 내에 말씀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노회는 먼저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노회 내 개척을 지원하는 위원회가 있다면, 시찰감독의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사역자를 세우는 것이다. 사역자 세움에는 철저한 검증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가 일자리를 위한 사람인지, 사명을 잘 감당할 사람인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노회는 예배를 위한 적절한 공간과 시설, 그리고 사택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처음부터 화려한 교회당 건물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노회는 교회당이 지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규모와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개척 교회 한 곳이 설립될 때마다 지역 신문에 소개될 정도로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노회는 개척 교회가 자립할 때까지 사역자의 정당한 사례와 교회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해야 한다. 사역자가 개인의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나라를 위한 사역을 하는 것이고, 노회가 이를 맡겼다면 노회가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 지금처럼 사역자 본인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장로회 교회임을 부인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노회의 인력 지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목회자 단독으로 하는 개척은 찾아오는 교인들을 붙들어 두기 어렵다. 한두 가정으로 구성된 교회는 교인에게 너무나 큰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희생만 강요하는 개척은 실패하기에 십상이다. 노회는 일정 기간 개척 교회에서 봉사할 이들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가능하면 인근에 인력의 여유가 있는 교회에 부탁하여 1년 또는 2년 동안이라도 교사, 찬양 인도 등으로 봉사할 인원을 확보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노회가 교회의 단위이고, 노회원은 모두가 한 형제라 불리지 않는가? 이렇게 시작한 개척은 새로이 합류하는 교인들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제공할 것이다.

 

교회 개척은 대형 교회의 분립과 원자 교회의 통폐합과 연계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노회는 교회 수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새로운 교회의 개척은 대형 교회와 원자 교회(micro kirk)의 문제와 연계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 대형 교회의 문제점은 다시 열거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교회가 무엇인가? 교회는 회중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여서 예배하고 거룩한 교제를 나누는 집단이다. 대형 교회에서 회중은 1시간 동안 유명 강사의 강의를 듣고 돌아가는 익명의 대중과도 같다. 그리고 대형 교회는 조직과 경제력으로 노회의 기능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노회는 이처럼 백해무익한 대형 교회를 분립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새로운 교회 개척이 필요하다면 노회 내 대형 교회를 분립해서 새로운 교회를 만들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새로운 교회 개척에서 노회의 부담은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극단은 원자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원자 교회는 한두 가정으로 구성된 교회를 말한다. 실제 한국교회의 상당수는 이런 교회들이다. 이런 교회들 역시 교회로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교회가 필수 기능인 구제 사업을 하기는커녕 목회자 생활비도 감당하지 못하며, 성도들 간의 적절한 교제를 위한 공동체 구성도 어렵고, 주일학교와 같은 교육 시스템도 운영하기 어렵다. 스코틀랜드 종교개혁 직후 교구 나누기도 목회자의 생계유지에 적합한 규모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노회는 원자 교회들을 하나의 적당한 규모의 교회로 재조직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그들 교회의 목회자가 은퇴하면 후임을 청빙하지 않거나, 조기 은퇴를 유도하여 이웃 교회와 통합하도록 할 수도 있고, 원자 교회를 통폐합한 후 사역자들은 일시적으로 공동 목회를 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물론 이런 경우 노회는 강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의 의사를 확인하면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노회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시작하는 교회 개척을 막아야 한다. 이 난립을 막자면 노회가 교회 설립의 처음과 끝을 주도해야 한다. 노회는 타 교단, 대형 교회와 원자 교회를 고려하여 말씀이 필요한 곳에 개척지를 정하고, 개척에 필요한 시설과 인적‧물적 지원에 책임을 져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교회 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바른 전파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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