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한편으로 그를 외면한 기독교인들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전태일 사건을 보고 빚진 자의 마음으로 나선 의로운 기독교인들도 있었음을 말하고 싶었다. 실제로 새문안교회 대학생회나 도시산업선교회 등의 노력들은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많은 이야기들을 시간 제약 때문에 다큐멘터리에 다 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이기도 한 “기독 청년 전태일”이라는 말 속에는 노동, 인권, 정의, 종교, 다음 세대 등 한국 기독교가 나아갈 모든 함의가 담겨 있었다.(본문 중)

밀알이 되어 세상을 바꾼 기독 청년:

CBS 전태일 50주기 특집 다큐멘터리 <기독청년 전태일> 제작記 (이형준)

 

이형준(CBS PD, <기독청년 전태일> 연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기독청년 전태일> 타이틀 (제공: CBS)

 

2020년은 코로나19라는 강력한 블랙홀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전쟁, 5.18 등 기억할 이슈들이 있었다. 특히나 올해는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전태일 열사의 서거 50주기이기도 하다. 박정희 정권이 근대화와 경제성장에 열심을 내던 1960년대 후반, 골방에서 하루 15시간 이상을 일해야 했던 22살의 청년 재단사 전태일. 그는 자신보다 더 열악한 처지의 어린 여공들을 보며 동대문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자 노력했고, 지켜지지 않던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항의 시위 중 끝내 사망하였다(1970.11.13.). 50년의 시간이 흘러 정부에서는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전태일 열사에게 각각 국민 훈장을 수여하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50이라는 숫자 때문이었을까. 여러 방송국에서 앞다투어 전태일을 다룬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방송했다. CBS도 2019년 말부터 특집 다큐멘터리 <기독청년 전태일>을 준비해, 지난 11월 13일 서거 50주기에 맞춰 방송했다.

 

<기독청년 전태일> 포스터(제공: CBS)

 

올해 전태일을 다룬 여러 프로그램들이 있었지만,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의 삶과 죽음을 기독교적으로 재조명한 다큐멘터리는 <기독청년 전태일>이 유일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전태일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전태일 평전』을 읽었다던 사람들도 그가 독실한 기독 청년이었음을 알고 놀라워했다.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안장된 전태일의 묘비명은 “기독 청년 전태일”이다. 묘비 뒤편에는 요한복음 12장 24절이 새겨 있다. 그럼에도 그에 관해 기독교적으로 정리된 자료나 흔적들을 찾기 어려워 초기에 다큐멘터리의 방향을 잡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전태일은 기독 청년이었지만, 그의 죽음이 자살이란 이유로 그동안 주류 기독교 내에서 철저히 외면당해 왔다. 한 대형 교회는 전태일의 장례를 거부했고, 그가 다녔던 교회에서는 가족들이 쫓기듯 교회를 떠나는 등 수많은 외면들이 있었다.

 

“기독 청년 전태일”이라고 쓰인 전태일의 묘와 동상(제공: CBS)

 

하지만 이번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한편으로 그를 외면한 기독교인들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전태일 사건을 보고 빚진 자의 마음으로 나선 의로운 기독교인들도 있었음을 말하고 싶었다. 실제로 새문안교회 대학생회나 도시산업선교회 등의 노력들은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많은 이야기들을 시간 제약 때문에 다큐멘터리에 다 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이기도 한 “기독 청년 전태일”이라는 말 속에는 노동, 인권, 정의, 종교, 다음 세대 등 한국 기독교가 나아갈 모든 함의가 담겨 있었다.

<기독청년 전태일> 다큐멘터리는 과거 평화시장에서 함께 행동했던 전태일의 친구가 전태일 연극을 보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후 당시의 친구들과 여공들, 그리고 전태일 사건 이후 각성한 기독교인들이 출연해 당시의 상황과 의미들을 증언하는 방식이다. 전반부는 전태일의 삶과 죽음을, 후반부는 그 사건을 겪으며 각성한 강원용 목사를 비롯한 의로운 기독교인들을 다룬다. 중간중간 당시 사진과 실제 전태일의 일기를 소개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배웠고 그 사랑을 실천하며 한 알의 밀알이 된 기독 청년 전태일의 삶, 그리고 그의 죽음을 보고 깨어나 노동 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여 마찬가지로 밀알이 된 의로운 기독교인들을 통해 지금 우리 시대 기독교의 역할을 다시금 고민하도록 한다.

 

전태일의 동상을 바라보는 전태일의 친구(<기독청년 전태일> 중)

 

<기독청년 전태일> 다큐멘터리에는 유명 연예인의 출연도, 멋들어진 세트에서 수십 명이 등장하는 재연 장면도 없다. ‘특집’이라면 기대할 만한 유명 성우나 스타의 내레이션조차도 없다. 하지만, 전태일과 그 시대를 기억하는 실존 인물들의 증언과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들이 극적 긴장감과 사실성을 높인다. 30여 명이 각각 1시간 이상, 때로는 2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하였고, 그 증언을 60분으로 추려낸 내용들이 이 다큐멘터리의 튼튼한 뼈대가 됐다. 그러나 꼭 인터뷰하고 싶었던 분들이 해외에도 있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나갈 길이 막혀 만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평화시장 여공 출신 봉제 노동자 촬영 중.(제공:CBS)

 

<기독청년 전태일>은 특별히 전태일의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그의 일기와 증언을 통해 조명하였다. 전태일의 신앙고백이 담긴 실제 일기를 어렵게(?) 가족의 허락을 얻어 촬영했으며, 전태일과 함께 교회를 다녔던 교인의 인터뷰는 최초로 소개했다. 단순히 ‘종교’ 콘텐츠를 넘어, 다큐멘터리가 담은 보편적인 ‘사랑’의 메시지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에게 울림을 준다. 올해 전태일과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국민 훈장을 받았지만, 그것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태일의 시대처럼 어려운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오늘의 전태일들을 이야기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촉구한다.

 

전태일의 일기(<기독청년 전태일> 중)

 

전태일의 실제 일기

 

코로나로 저마다 어렵다고 한다. 교회들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배덕만 교수는 말한다. “강도 만난 이웃들을, 지금이야말로 한국교회가 이웃들을 어떻게 섬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찾아내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해요.” <기독청년 전태일>은 전태일이라는 지극히 평범하면서 가난했던 한 청년이, 성경의 가르침대로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피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았던 삶을 통해, 오늘의 기독교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전태일 사건이 단지 50년 전의 에피소드로 그치지 않는 것은,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 배달 플랫폼 노동자나 특수 고용 노동자 등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신앙의 실천은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돌아보고 알고 관심을 가지는 일에서 시작될 것이다. 기독 청년 전태일의 사랑과 헌신이 70년대의 지식인, 종교인, 기독 청년들을 깨웠던 것처럼, 다큐멘터리 <기독청년 전태일>도 오늘날 우리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CBS 특집 다큐멘터리 <기독청년 전태일> 보러 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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