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공개 입양 가족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중략)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를 혼내기도 하고 벌 줄 수도 있습니다. (중략) 그런데 입양 부모에게는 “그러려고 애를 입양했느냐?”라는 말을 합니다. 자기 새끼가 아니니까 저런다고 말합니다. 이번처럼 입양 부모의 아동 학대 사건이 생기면, 입양 가족들은 죄인 아닌 죄인이 되고 맙니다. 아이 잘 지내냐는 지인의 안부 전화에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아요. 입양 당사자인 아이에게는 “쟤는 입양되어서 저런다” 같은 꼬리표가 따라붙습니다.(본문 중)

김경아1)

 

한 아이가 부모의 지속적인 학대와 폭행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TV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진 폭행의 흔적은 눈에 담을 수조차 없을 만큼 참혹했습니다. 겨우 16개월밖에 안 된 아기였는데 부모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요? 인간의 잔인함에 혀를 내두르는 동시에 아기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학대로 인한 아동 사망 사건이어서라기보다 입양아동 사망 사건이라서 더 큰 파문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첫 언급은 끓는 기름에 불을 붙였습니다. 대통령은 입양의 사후 관리뿐 아니라 입양 절차 전반에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번 사건의 원인과 책임으로 입양을 콕 찍어 언급하셨습니다. 사건의 본질을 입양 문제로 보신 발언이었죠. 대통령의 발표 이후 여론과 언론은 입양 문제에 대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습니다.

저는 막내딸을 입양했습니다. 입양한 막내는 올해 18살이에요. 사망한 아이에 비할 바 없겠으나, 이 사건은 입양 가족에게도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온라인상에서 입양 가족은 아파트 분양권이나 월 15만 원의 양육 수당을 노린 파렴치범으로 취급받았습니다. 딸에게 여동생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입양했다는 가해자의 입양 동기에 대해서도 비난이 들끓었지요. 지인들의 SNS에는 “입양아는 매년 건강 검진을 해야 한다”, “입양 가정은 전수 조사를 해 봐야 한다” 같은 글들이 올라오더군요. 평소에는 입양에 관심도 없더니 이렇게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다들 입양에 대한 전문가처럼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온라인 속 불특정 다수의 글을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부부가 선교 단체 간사로서 없는 살림에 입양을 한 건 아이를 고생시키는 것이니 잘못한 일이었나, 우리 사정에 맞추어 입양이 잘 안 되는 남자아이가 아닌 여자아이를 입양한 것도 이기적인 것인가, 난임으로 고생하다가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에 입양한 그 집사님도 잘못인 건가, 아들만 줄줄이 낳고 딸을 키워보고 싶어서 입양한 후배 역시 동기가 잘못된 것인가…. 과연 어떤 동기로 입양을 했어야 옳은 건지 혼란했습니다. 또한, 모든 가정의 아이들의 신체적, 정서적 건강 상태를 돌아보는 게 아니라 입양 가정을 전수 조사하라니, 입양 가정의 아이가 학대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건 어디서 비롯된 생각일까요?

2012년, 기존의 입양촉진법이 ‘입양특례법’으로 바뀌면서 입양 절차는 매우 까다로워졌습니다. ‘아무나’ 입양할 수 없게 되었죠. 예비 입양 부모들의 경제적인 여건, 심리적 상태, 사회적· 물리적 환경 등을 꼼꼼하고 엄격하게 체크합니다. ‘영혼이 탈탈 털릴’ 정도라고 해요. 입양하기로 마음먹었다가도 입양 절차 과정에서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제의 입양 부모가 대체 어떻게 그 까다로운 과정을 통과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평소에 공개 입양 가족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합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를 혼내기도 하고 벌 줄 수도 있습니다. 사춘기에는 아이와 갈등을 겪을 수도 있고요. 낳은 아이와도 다들 그렇게 살잖아요. 그런데 입양 부모에게는 “그러려고 애를 입양했느냐?”라는 말을 합니다. 자기 새끼가 아니니까 저런다고 말합니다. 이번처럼 입양 부모의 아동 학대 사건이 생기면, 입양 가족들은 죄인 아닌 죄인이 되고 맙니다. 아이 잘 지내냐는 지인의 안부 전화에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아요. 입양 당사자인 아이에게는 “쟤는 입양되어서 저런다” 같은 꼬리표가 따라붙습니다.

이번 사건에 막내도 영향을 받았습니다(아이의 허락을 받고 지면에 옮깁니다). 다른 사건·사고와 달리 막내의 친구나 선후배들이 이번 사건에 관한 기사를 유난히 많이 공유했다고 합니다. 그중에 다른 아이로부터 제 딸이 입양되었다는 걸 들은 한 아이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런 글을 썼다는군요.

“내가 아는 애도 입양됐는데 걔도 정인이처럼 피해자 중의 한 명이었을 수도 있다.”

“걔도 입양아여서 그런지 학교에 적응을 못 한다.”

막내가 그 글을 읽고 글을 쓴 아이에게 전화했습니다. ‘내가 이러저러한 것은 입양돼서 그런 게 아니다, 사람의 사정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대요. 그리고는 “다시는 어디 가서 그런 무식한 소리 하지 말라”라고 일침을 놓았답니다. 처음에 방어적으로 변명하며 반박하던 그 아이는, 알았다며 꼬리를 내렸습니다. 막내는 제게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은 많다”라고 말하면서, “어떤 사람을 잘 모르면서 설치는 건 죄”라고까지 강하게 표현했습니다. 우리 집 막내가 이러저러한 건 입양 때문인가요?

한 사람의 삶에는 다양한 조건과 변수가 작용합니다. 입양 아동은 친생부모의 품을 떠나 보육원을 거쳐 입양 부모의 품에 오기까지 많은 일을 겪습니다. 어린아이가 겪어서는 안 될 일이지요. 입양 부모와 가족을 이루어 사는 중에 또 다양한 일을 겪고요. 가족을 이루어 사는 누구라도 가정 안에서 희로애락을 겪습니다. 입양되었다는 이유로 내 자식이 이런 눈초리를 받고 살다니,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입양의 문제로 볼 때 제가 걱정하는 부분은 이것입니다. 이제 입양이 더 줄겠구나 하는 거죠. 지난 5년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에 매년 4,000명이 넘는 보호 대상 아동이 발생했습니다. 친생부모의 품을 떠난 그 아이들의 70퍼센트 이상은 보육원이라는 시설에서 삽니다. 국내외 가정으로 입양되는 아이는 100명 중 2~3명 정도에 불과해요. 가뜩이나 입양되는 아이들이 적은데 이 사건의 여파로 더 적어지겠죠.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는 입양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조차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입양이 줄면 더 많은 아이가 가정이 아닌 보육 시설로 갈 수밖에 없어요. 아동은 가정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고, 아동권리헌장에서 우리 모두 약속하지 않았나요?

보육원에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지 저는 입양을 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보육원에도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아주는 어른들이 계세요.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나이가 되면 그곳에서 나와야 합니다. 정부에서 쥐여 주는 몇백만 원의 지원금을 받아들고서요. 이런 현실을 알게 된 후, 저는 입양의 필요성을 알리는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기회만 닿으면 지인들에게 입양과 관련한 현실의 아픔과 고통을 알렸고, 실제 주변 사람들이 입양하는 사례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자랑하려고 입양을 맘먹지 않았어요. 아이와 잠깐 놀아주려고 입양하는 것도 아닙니다. 한 아이의 평생을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까다로운 입양 절차도 감당합니다. 아기를 낳은 부모들처럼, 어떻게 하면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아이를 사랑으로 잘 양육해야 할 정인이의 양부모는 실패했습니다. 공적 시스템도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했습니다. 아동 학대에 관해서는 이미 어지간한 법과 제도가 갖춰져 있다는군요. 그런데도 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때, 그리스도인은 특정인을 악마화해서 분노를 표출하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학대는 악마가 벌이는 짓이 아니라 우리처럼 평범한 누군가가 저지릅니다. 아동 학대에 대해 보이는 작금의 뜨거운 열정으로, 우리 주변의 아이들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내 아이만 잘 키워서는 내 아이도 잘 키울 수 없다는 걸 명심했으면 좋겠어요. 내 아이가 살아가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약자를 돌아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입양입니다.


1) 진로와소명연구소 성교육 팀장이며, 지은 책으로 『너라는 우주를 만나』(IVP, 2018), 『성을 알면 달라지는 것들』(IVP, 2020)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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