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나, 어린 시절, 같이 정치인이 되어 사회를 바꿔보자던 친구의 옛말은 지키기 힘든 약속으로 남아 있다. ‘너라도 편히 살라’는 친구의 말에, 나도 성인이 되었는데 너무 철없이 사는 게 아닌지 되돌아보았다. 과거에 결혼, 출산,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세대를 ‘3포 세대’로 불렀지만, 현재는 ‘n포 세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한 새내기들은 ‘n포 세대’를 넘어 생존 자체를 걱정하고 있다. (본문 중)

안혁(대학생)

 

나는 2002년에 태어났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2002년 하면 월드컵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어! 너 월드컵 때 태어났구나. 그 재미있는 걸 못 봤어?” 이런 말은 아마 2002년에 태어난 친구들은 적어도 한 번씩은 꼭 들어봤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는 어른이 된다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 시절 나에겐 너무나 먼 미래였기 때문이다. 주변에 어른이란 가족과 학교 선생님뿐이었다. 그랬기에 어른은 나와는 다른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중학교 때는 아직 초등학교 때와 다른 점을 찾지는 못했다. 굳이 다른 점을 말한다면, 초등학교 때보다 키가 더 컸고, 공부가 더 어려워졌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진로를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을 할지 생각해 보았지만, 그 시절 나에겐 대학 진학이 삶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고3이 되었을 땐, 세상에서 내가 가장 힘들고, 내가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수능만 보면 진짜 마음껏 놀아야지”라고 마음먹고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드디어 수능을 보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난 지금 생각했던 대로 마음껏 놀고 있을까?

 

솔직히 말해, 어른이 되면 마음껏 놀고 자유로워질 줄 알았다. 그러나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우선 어른이 되었다는 체감이 들지 않았다. 19살 12월과 20살이 된 1월 사이에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당연한 거지만 몸에도 마음에도 별 변화가 없었다. 그렇다면 언제 성인이 되었다고 느꼈을까? 바로 버스에 탈 때다. 버스 카드를 찍을 때의 소리가 ‘삐빅’에서 ‘삑’으로 바뀌었을 때, 내가 비로서 성인이 되긴 했구나 느꼈다. 둘의 차이는 정말 크다. ‘삐빅’은 청소년 요금이고 ‘삑’은 성인 요금이다. 교통비가 더 든다는 것으로 성인이 되었음을 깨달았을 땐, 조금 웃기고도 씁쓸했다.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것도 성인이 되었음을 체감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중학교 시절,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나는 항상 술집에 가보고 싶다고 답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술맛이 어떨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20살이 된 기념으로 첫술을 부모님과 마시며 술 마시는 예의를 배웠다. 술맛이 어떠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너무 쓰다고 찡그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버지는 “술맛이 달게 느껴지면 인생을 알게 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른이 되기 전, 어른이 되면 할 ‘To Do 리스트’에서 1번이 술 마시기였는데 조금 후회됐다.

 

대학생이 되면 낭만적인 캠퍼스 생활을 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방에서 줌으로 교수님 방 배경을 보고 멍하니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학교도 못 가고 온라인으로 수업하기 때문이다. 누가 대학생이 되면 맨날 논다고 했을까. 고등학교 때보다 공부가 더 힘들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교과서를 보고 외운 만큼 성적이 나왔다. 공부는 수동적이었다. 또, 문제를 풀고 답이 보기 안에 있는 시험을 봤다. 그러나 대학 공부는 고등학교 공부와 정말 달랐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책과 논문을 읽어야 하고, 또 누가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다. 수동적인 공부가 아니고 모든 것이 본인 책임인 것이다. 시험도 답을 보기 중에서 고르는 것이 아닌, 내 생각을 글로 쓰는 문제가 나왔다. 1학기 중간고사 문제를 아직도 기억한다. 1번 문제가 ‘나에게 민주주의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였다. 얼마나 정말 당황했던지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났다. 아무튼, 이제는 더 깊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느꼈다.

 

 

이렇게 내가 성인이 되면서 느낀 점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그러다 문득 나의 친구들은 어떻게 성년을 맞이하는지 궁금해졌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군대와 독립이 걱정이라고 답했다. 남성들의 경우 군 입대를 가장 많이 걱정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가 어른이 될 때면 통일이 돼서 군대 안 가도 괜찮을 거야”라고 떠들었던 친구들이, 이제는 군대를 다녀오면 생길 학력 단절을 걱정하고 있다. 나 역시 군대를 다녀와서 다시 대학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군대뿐만 아니라 독립 걱정 역시 많았다. 나는 아직 부모님과 같이 살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독립하는 친구들이 몇 있다. 독립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직장과 가까운 곳에 월세로 살고 있다고 한다. 1만 원도 안 되는 시급을 받고 밤새워 일해도 월세에 전기세, 수도세 내면 남는 게 없다고 한탄한다. 뉴스에서 연일 집값 상승을 보도해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넘겼지만, 이제는 내 친구의 일이고, 곧 나의 일이다. 배달 아르바이트를 위해 친구가 밥도 못 먹고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닌다는 이야기에 안타까웠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나, 어린 시절, 같이 정치인이 되어 사회를 바꿔보자던 친구의 옛말은 지키기 힘든 약속으로 남아 있다. ‘너라도 편히 살라’는 친구의 말에, 나도 성인이 되었는데 너무 철없이 사는 게 아닌지 되돌아보았다. 과거에 결혼, 출산,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세대를 ‘3포 세대’로 불렀지만, 현재는 ‘n포 세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한 새내기들은 ‘n포 세대’를 넘어 생존 자체를 걱정하고 있다.

 

힘들게 사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나 분노의 대상이 없다. 누구를 향해 화를 내야 하는가? 사회는 언제나 힘든 곳이었으니 적응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청년의 편은 없다. 정치인들은 집값에 대한 공약을 말한다. 그러나 청년을 위해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청년들의 투표 참여율이 다른 세대보다 낮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청년을 위한 공약은 부족하고, 이는 또 청년들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는다. 성년이 된다는 것에 다양한 의미가 있지만, 나는 ‘투표를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아 뉴스를 보며 정치인 욕을 많이 했다. 어린 시절 나는 투표권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들을 뽑지 않았으니 함부로 말하고 다녔다. 그러나 투표권을 가지게 된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나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내가 뽑은 후보가 선출되든 뽑지 않은 후보가 선출되든, 나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누가 바꿔주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닌 변화가 필요하다면 목소리를 내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렇듯, 성년의 날1)이 지나고 성인이 된 지금 나의 걱정은 더 늘었다. 하지만, 걱정에 파묻히지 않고 당당히 걸어가려고 한다. 이것이 성인이 된 나의 다짐이다.

 


1)  매년 5월 셋째 월요일. 한국 민법에서는 만 19세가 되는 출생일부터 법적으로 성년이 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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