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됩니다. 우리가 꿈꾸지 않고 믿지 않으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러한 꿈은 3000년 전 선지자들이 꾸었던 꿈입니다. 너무 아득하지만 믿음으로 꿈꾸었던 그 세월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에겐 다음 세대에 이보다 한 걸음 앞선 평화를 물려주어야 할 숙제가 있습니다. 그 평화를 위해 비무장 평화의 섬을 함께 꿈꾸어 주십시오. (본문 중)

류복희(‘개척자들’ 활동가)

 

저는 강정에서 ‘사하자’(인도네시아어로 ‘단순한’이라는 뜻)로 불리는 류복희입니다. 브라더 송(송강호)과 함께 2020년 3월 7일 강정해군기지 내에 남아 있는 구럼비 바위에 기도하러 들어갔습니다. 그 일로 군 형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기소되었습니다. 그해 3월 31일 영장 실질 심사일에 저는 6시까지 구치소에 있다가 불구속으로 자유로운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고, 브라더 송은 계속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올 2021년 6월 30일에 대법원 선고가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한결같이 브라더 송은 실형 2년, 저는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였습니다.

 

‘거대 항공모함’이 되어 가는 세계평화의 섬

 

2005년 세계평화의 섬으로 선언된 제주는 곳곳에 ‘세계평화의 섬 제주’라는 현수막을 붙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제주도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세계자연유산 등재‧세계지질공원 인증으로 유네스코 자연분야 3관왕에 오른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홍보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아름다운 섬 제주도는 슬픔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가 제주도에 살면서 듣게 된 말 중에 “까매기 모르는 식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주도 방언으로 ‘까마귀가 먹으러 오기도 전에 몰래 제사를 끝낸다’는 뜻으로, 어렸을 때 집집마다 귀신도 모르는 제사를 지내셨다던 이야기였습니다. 제주4.3과 예비검속으로 가족을 잃었지만 혹여나 잘못되어 연좌제로 남은 자식들에게 올무가 될까 봐 죽은 가족조차 마음 놓고 기억할 수 없었던 아픔이었습니다. 그런 제주도가 세계평화의 섬으로 선언된다는 것은 국가의 폭력 앞에 너무나 무력했던 도민들에게 다시는 그런 폭력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의 약속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주도는 너무나 무섭고 끈질기게 군사기지화하고 있습니다. 강정 해군기지 싸움은 14년이 되었고 1000여 명이 체포‧연행되어 사법적 처벌을 받았습니다. 강정에 해군기지가 들어서기 전 이미 화순에서 위미로 해군기지 건설을 시도했지만 쫓겨났습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는지 불법과 탈법, 편법을 동원하여 강정에 해군기지가 기어코 건설되었습니다.1)

그리고 공군기지로 쓰일 것이 자명한 제2공항을 건설하겠다고 합니다.2) 6년간의 투쟁으로 이뤄진 제주도민 여론조사에서 분명 반대 의견으로 결론이 난 제2공항을 백지화하기는커녕 제주의 공공버스마다 제2공항 홍보 영상을 계속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군대의 눈과 귀가 될 국가위성통합운영센터를 축구장 152배나 되는 크기로 구좌읍 덕천리에 건설하고 있습니다.3) 세계평화의 섬 제주 전체가 거대한 항공모함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주도의 군사기지화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선에 제주도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정 해군기지가 과연 제주도와 한반도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 맞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중의 패권 다툼 과정에서 혹여나 무력충돌이 발생한다면 군사기지가 있는 제주도가 첫 번째 타깃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4.3의 고통을 겪은 제주가 다시 한 번 희생양이 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제 강정마을회는 처음부터 해군기지를 찬성하던 이들이 집행부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2020년 8월 31일 마을회와 군은 민‧군 상생협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이후 2021년 5월 31일 민‧관 상생협약 선언식을 진행했고, 6월 30일 제주 도의회가 이 상생협약을 의결했습니다. 해군기지 건설과정의 절차적 타당성에 대한 문제와 그 과정에서 발생했던 폭력과 인권유린에 대한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은 채 강정 마을회는 5년간 매년 50억원을 지원받는 내용에 서명함으로 모든 갈등을 돈으로 덮어 버리는 국가폭력에 동조한 것입니다. 이로써 이제 강정에서 군‧관‧민의 갈등은 모두 해결되고 끝난 것처럼 포장되었습니다.

 

함께 꿈꾸는 ‘비무장 평화의 섬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기, 해군기지를 반대하고 제주가 진정한 평화의 섬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현재 건설중인 해군기지 진입도로가 서귀포 시민의 70%가 마시는 상수원 위쪽을 지나감에도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받지 않았음을 증명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또한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이라고 해 놓고 크루즈가 들어오는 항구까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으려는 것을 저지하며 싸우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연산호 군락지에 군함의 출입항로를 만들려는 것을 막기 위해 깊은 바닷속을 모니터링하며 저항하고 있습니다.

한때 생업을 포기하면서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참여하셨던 마을 어르신들도 구럼비 바위를 덮어 버리고 세워진 해군기지를 인정할 수 없다며 억울함과 울분을 쏟아냅니다. 이미 해군기지가 세워졌다고 해서, 구럼비 바위를 덮은 군사기지가 위풍당당하게 존재를 과시한다고 해서, ‘해군기지는 이제 어쩔 수 없다’는 말에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기지가 세워지기 전보다 더 어려운 싸움을 이어가야 합니다.

제주 해군기지는 저희의 마음과 눈을 열었습니다. 이것은 강정의 문제를 넘어 평화를 바라는 모든 이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해군기지 반대운동은 우리 마을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던 좁은 시야를 벗어나 제주도가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했습니다. 제주도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의 패권 다툼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을 모든 나라가 인정하는 비무장 섬으로 선포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한다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됩니다. 우리가 꿈꾸지 않고 믿지 않으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러한 꿈은 3000년 전 선지자들이 꾸었던 꿈입니다. 너무 아득하지만 믿음으로 꿈꾸었던 그 세월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에겐 다음 세대에 이보다 한 걸음 앞선 평화를 물려주어야 할 숙제가 있습니다. 그 평화를 위해 비무장 평화의 섬을 함께 꿈꾸어 주십시오.

 


1) 박소희, “재판부는 왜 해군기지 불법성은 제끼고 송강호 박사에만 죄를 묻나요?”, <제주투데이>, 2021. 4. 5.

2) 박찬식, “논리와 명분 상실한 제주 제2공항, 공군기지 위한 포석?”, <오마이뉴스>, 2019. 07. 25.

3) 최성희,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할 국가위성통합운영센터”, <헤드라인제주>, 2021.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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