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립장으로 갈 캔을 학교 동과 기숙사 동을 합쳐서 하루 평균 50개는 끄집어낸다. 일주일이면 250개, 한 달이면 1,000개다. 내가 구해낸 종이와 플라스틱과 비닐까지 합치면 한 달에 트럭 한 대 분량은 된다. 그만큼 매립지를 줄이는 일을 하는 셈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참 기쁘다. 큰 수고도 아니다. 학교 동에서는 하루 15분 정도, 기숙사 동에서는 아침에 10분 정도다. (본문 중)

류재신(월광기독학교 교사)

 

내가 재직하는 전남 함평의 월광기독학교는 올해로 설립 7주년을 맞는 중고등 과정 기숙형 대안학교다. 교명에서 드러나듯이 미션 스쿨을 넘어 학교의 모든 교과와 행정과 삶 전체를 기독교적으로 운영하고자 추구하는 기독 학교다. 교훈도 “하나님 사랑, 자기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3애 정신이다. 아침저녁으로 성경 묵상과 예배 시간도 가진다. 그런데 쓰레기 재활용품 분리수거가 영 안 되고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편 24:1)

 

성경 말씀에 땅(지구, 세상)이 그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땅을 청결히 유지하고 잘 관리하고 개발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지자체마다 쓰레기 매립지가 포화 상태가 되어 난리라는데 재활용품을 매립장으로 보내 하나님의 땅을 황폐하게 만드는 일은 비윤리를 넘어 죄악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학교에서 재활용이 잘 이루어지도록 나름대로 노력을 안 해 본 게 아니다. 채플이나 전체 모임 후에 전교생에게 삶도 예배처럼 정직하자고 부탁도 해 봤다. 각 반에 재활용품 분리수거 도우미를 두고 노란 분리수거 상자를 별도로 배치했다. 분리수거 도우미의 활동 시간은 봉사 시간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수업 시간마다 잔소리도 해 봤다. 말짱 도루묵이었다. 1층 재활용품 분리수거 통 앞에 서 있으면 각반 쓰레기통들이 뒤죽박죽된 채로 내려온다. 내가 있으면 그때서야 겨우 분리수거하는 척하고 내가 늦거나 없으면 그냥 일반 쓰레기통에 다 붓고 가 버린다.

결국 나는 두 손을 들었고, 더 이상 이 문제로 학생들과 싸우지 않기로 했다. 온몸으로 막아서는 기분으로 내가 청소 시간마다 내려와서 직접 분리수거를 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우리 학교에서 나오는 재활용품만큼은 매립지로 들어가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감격스러운 예배와 찬양을 드리는 학생들이라도 교실에서 재활용품을 분리하는 ‘자발적 불편’은 도저히 감수하기 어려운가 보다. 학생들의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는 교사인 내 책임이니 내가 감당할 몫이라 여겼다.

 

 

작년부터 해 오던 학교 동 쓰레기 분리수거를 올 3월부터는 기숙사 동에서도 하기 시작했다. 기숙사에서도 저녁이면 매점에서 각종 캔 음료나 과자, 컵라면 등을 사 먹고 남은 쓰레기가 나오는데, 학생들은 재활용품을 철저히 분리하는 ‘자발적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다. 그냥 편한 대로 일반 쓰레기통에 쏟아 버린다. 학교 동에서도 안 되는 일이 기숙사 동이라고 될 리가 없을 것이다. 아침에 출근하며 나는 출근 시간보다 한 20분 먼저 나와 기숙사 1층 분리수거 통 뚜껑을 모두 열어젖힌다. 대부분은 일반 쓰레기통에 재활용품이 들어가 있지만, 어떤 경우는 종이나 캔을 넣는 재활용품 수거통에 라면 그릇과 각종 쓰레기가 들어 있을 때도 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열불을 내지 않기로 했다. 출근 배낭 옆구리에 늘 넣어 다니는 빨간 분리수거용 장갑을 꺼내 끼고 열심히 분리수거 놀이를 한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 방송을 들으며 즐겁게 한다. 누가 하래서 하는 일도 아니고, 내 업무로 주어진 일도 아니다. 이 일을 노동이라고 생각하면 힘들고 짜증이 난다. 그러나 놀이로 생각하거나 보람을 느끼면서 하니 별로 힘도 들지 않았다.

한 번씩 계산도 해본다. 매립장으로 갈 캔을 학교 동과 기숙사 동을 합쳐서 하루 평균 50개는 끄집어낸다. 일주일이면 250개, 한 달이면 1,000개다. 내가 구해낸 종이와 플라스틱과 비닐까지 합치면 한 달에 트럭 한 대 분량은 된다. 그만큼 매립지를 줄이는 일을 하는 셈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참 기쁘다. 큰 수고도 아니다. 학교 동에서는 하루 15분 정도, 기숙사 동에서는 아침에 10분 정도다. 이 정도 자원봉사로 지구를 구하는 일에 한몫하게 된다니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 더구나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땅의 황폐화를 막는 이 일을 하나님도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는 만큼 기뻐하시리라 여겨진다.

삶과 가르침과 배움이 모두 기독교적이길 원해서 모인 기독 대안학교에서조차 재활용품 분리수거라는 조그만 자발적 불편을 실천하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재활용품 분리수거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서로 전혀 다른 일이 아님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지구 온난화니 기후 위기니 하는데 재활용품을 잘 분리해서 땅을 잘 보존하고 자원을 아끼는 일에 나 하나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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