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노인들에게 미친 가장 큰 영향은 ‘고립’과 ‘적응’의 과제를 던져 준 것이다. 고립은 보편적인 노인 문제 중 하나이지만, 코로나19는 노인들이 경험하는 고립의 속성이 얼마나 입체적인지를 드러내 주었다. 노인 고립을 유형별로 정리해 보면, 첫 번째는 ‘관계 분리’ 혹은 ‘상호작용의 분리’이다. (본문 중)

박지영(상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주일 오전 10시, 아흔을 넘기신 아버지 방에서 우렁찬 찬양 소리가 들린다. 4년 전 암 수술 이후 기력이 많이 쇠약해지신 아버지는 휘청거리는 몸으로 단정한 옷차림을 하시고 40여 년 섬겨온 교회의 예배를 드리신다. 아버지에게는 사명과도 같았던 예배를 방안으로 끌어들인 건 코로나19였다. 교회가 아닌 곳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 낯선 상황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신 건,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높아질 즈음 딸들과의 실랑이 이후였고, 또, 교회의 결단이 있고 난 후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교회에서 단체로 제공하는 정보와 예배 링크 주소 연결을 위해 아흔의 연세에 카카오톡 사용법을 배우셔야 했다. 오래 앉아 계시기 어려운 어머니는, 그나마 기력이 괜찮으실 때면,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오랫동안 기도로 섬겼던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시거나 TV가 선택해 주는 어느 낯선 교회의 예배를 드리신다.

 

코로나19로 인한 부모님의 일상 변화는 예배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가야 하는 3차 병원의 출입 통제, 평소에도 호흡이 어려운데 마스크까지 착용해야 하는 불편함, 명절에나 모두 모일 수 있었던 자녀들과의 만남도 못 가지는 일 등 익숙한 것들의 제한과 중단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가까이 있는 막둥이 딸들이 아니었다면 완벽하게 고립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코로나19가 노인들에게 미친 가장 큰 영향은 ‘고립’과 ‘적응’의 과제를 던져 준 것이다. 고립은 보편적인 노인 문제 중 하나이지만, 코로나19는 노인들이 경험하는 고립의 속성이 얼마나 입체적인지를 드러내 주었다. 노인 고립을 유형별로 정리해 보면, 첫 번째는 ‘관계 분리’ 혹은 ‘상호작용의 분리’이다. ‘익숙한 지지 체계로부터의 분리’인데, 일차적으로는 가족, 이차적으로는 노인이 이용해 오던 사회 서비스로부터의 분리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코로나19는 노인 복지관과 같은 친숙한 사회 서비스뿐 아니라, 경로당, 노인 대학 등 노인들의 친목 모임까지 중단하거나 제한했다. 이러한 물리적 접근성의 제한은 한편으로 노인에게 심리적 고립감, 우울감, 소외감 등을 초래했고, 또한, 가사 지원과 같은 도구적(instrumental) 서비스의 제한으로 생활의 불편함과 이로 인한 스트레스, 짜증, 좌절감 같은 심리적 변화를 낳았다. 여기에 가족이나 친지, 친구와의 소통마저 원활하지 않다면, ‘세상에 나 혼자 남은 것 같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누가 나를 도와줄 것인가?’와 같은 생각이 들게 되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떨치기가 어렵게 된다.

 

노인 고립의 두 번째 유형은 정보로부터의 배제이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로 하여금 막연하고 예측 불가능한 두려움이 어떠한 것인지 인지하게 했다. 우리는 예측이 어려운 상황일수록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정보를 획득하려 한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노인들이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은 매우 제한적이다. 2020년, 필자는 원주 지역의 노인 복지관 등록 노인 9,300명을 대상으로 관련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그 결과를 보면 응답자 5,700명 중 컴퓨터나 핸드폰을 보유한 노인은 각각 312명, 1,482명으로 총 1,794명에 불과했다. 특히, 핸드폰 보유 노인들의 상당수는 조사 당시 2G폰을 사용 중이었는데, 세부적인 조사가 어려웠던 이유는 보유한 핸드폰의 기종이나 인터넷 사양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노인에게 핸드폰의 용도는 유선 전화기와 별 차이가 없는 ‘전화로 소통하기’가 절대적이었다. 다시 말해서, 현대 사회의 정보 유통 시스템은 대부분 인터넷인데, 노인들은 이러한 정보의 흐름 체계에서 배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접근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적절한 코로나19 대응을 하지 못하거나 도움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현장의 많은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가정 방문 등을 통해 노인의 정보 배제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지만, 이 또한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노인의 정보로부터의 고립은 노인 스스로가 고립되었다고 인지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자칫 그 문제의 중요성이 간과될 수 있다. 그러나 정보로부터의 배제는 결과적으로 다른 이차, 삼차로 파생된 문제를 초래할 수 있고, 새로운 사회 변화에 대한 노인의 적응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세 번째 유형의 고립은 ‘영적 안전망으로부터의 분리‘이다. 노인들에게 교회는 단순히 종교적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청‧장년기를 거쳐 오래 섬겨온 교회는 그들에게 역사의 일부이며 삶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젊음과 노화를 함께 겪어낸 영적 동지들이 있고, 퇴직 제도가 있는 세상과는 달리 영원한 소속(belonging)이 보장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 죽음까지도 영적으로 정리해 주리라 믿는 대상이 교회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교회는 예배드리는 공간(space)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연구 과정에서 인터뷰한 어느 80대 권사님은 일주일에 한 번 ‘권사님 잘 지내시지요?’라는 목사님, 전도사님 전화 한 통에 일주일을 버티는 힘을 얻는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일종의 산소 공급 같은 관계와 역할이 교회에 존재하는 것이다.

 

살아가는 세상이 점점 좁아지는 노인들에게 코로나19는 그 좁아진 세상마저 방구석으로 더욱 좁힐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극한 현실이다. 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TV를 시청하거나 누군가 걸어주는 전화에 응답하면서,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 무료한 일상을 지쳐가는 몸과 마음을 스스로 치켜세우며 버티는 것이다. 이것이 보통 노인들의 삶이 되었다. 아마도 더 취약한 계층, 더 열악한 지역의 노인들을 살펴본다면, 그들의 삶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절대적인 고립과의 치열한 생존 고투가 훨씬 더 심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독거노인은 노인 인구의 19.6%이다. 그리고 노인 삶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인 노인 자살률은 인구 십만 명당 한 해 46.6명, 자살 사망자 수는 약 3,600명, 노인 학대 신고 수는 꾸준히 늘어 16,973건에 다다르고 있다(통계청, 2020). 노인의 삶은 다른 세대로부터 고립되어 가고 있고, 그들을 심지어 자살에까지 이르게 하는 고통도 고립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노인의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삼는 전문화된 사회복지 서비스나 체계적인 지역 사회 돌봄과는 달리, 교회는 노인이 안도할 수 있고 심리·사회·영적(psycho-social-spiritual)으로 든든하게 하는 돌봄을 제공할 수 있다.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이 역할은 심리적으로나 영적으로 노인을 ‘혼자 두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를 억압했던 코로나19와도 함께하는 ‘위드코로나’의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교회는 청장년기를 교회 안에서 헌신한 노인과 함께하는, 지역 사회조차 돌보지 못하는 노인들을 돌보는, 가장 믿음직한 관계와 생존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교회 안에 노인들의 역할이 많았으면 좋겠다. 노인이 전하는 성경 이야기, 간증 이야기, 노인이 함께한 우리 교회 성장 이야기, 옛 찬양 회고 등이 이루어지는, 노인의 삶에 내재한 소중한 이야기들을 존중하고 이 삶을 살아온 노인의 존재를 존중하는 그런 공간이 되면 좋겠다. 그래서 교회가 연령이나 빈부에 상관없이, 코로나19에도 상관없이, 한결같은 사랑으로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 점점 고립되어 가는 노인들이 맘껏 호흡하고 살아있음을 감사할 수 있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 오늘날 노인의 고립은 단지 코로나19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점점 멀어지는 사람들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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