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율은 31.7%이다. 여러 가구 형태 중에 가장 높은 비율이다. 이 뒤를 이어 2인 가구가 28%, 3인 가구가 20.1%, 4인 가구가 15.6%로 나타나고, 5인 가구는 4.5%이다. 이를 보면 1인 가구의 비율이 현저히 높으며, 1인 가구와 2인 가구를 합칠 경우 58.1%로 거의 60%에 가까운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그동안 우리가 ‘가구’를 생각할 때 떠올리던, ‘가구=부모와 자녀’라는 등식이 완전히 깨진 것을 의미한다. (본문 중)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기윤실 공동대표)

 

2020년 11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율은 31.7%이다. 여러 가구 형태 중에 가장 높은 비율이다. 이 뒤를 이어 2인 가구가 28%, 3인 가구가 20.1%, 4인 가구가 15.6%로 나타나고, 5인 가구는 4.5%이다. 이를 보면 1인 가구의 비율이 현저히 높으며, 1인 가구와 2인 가구를 합칠 경우 58.1%로 거의 60%에 가까운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그동안 우리가 ‘가구’를 생각할 때 떠올리던, ‘가구=부모와 자녀’라는 등식이 완전히 깨진 것을 의미한다.

 

1인 가구는 최근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1인 가구가 처음으로 일반 가구 중 가장 큰 비율로 나타난 것은 2015년이었다. 2020년 통계 조사로부터 불과 5년 전인 그 당시만 해도 1인 가구의 비율은 27.2%였다. 즉, 5년 사이에 4.5%가 증가한 것이다. 5년마다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985년까지만 해도 가장 주된 가구는 5인 이상 가구였다. 1980년 통계를 보면 5인 이상 가구가 49.9%였다. 그런데 그 이후 1990년부터 2005년까지 4인 가구가 가장 많게 나타났고, 2010년 조사에서는 2인 가구가 24.6%로 가장 많았다. 그리고 다시 5년 만에 1인 가구가 가장 많게 나타난 것이다. 이를 보면, 4인 가구가 가장 많이 나타나다가 2010년에 3인 가구를 뛰어넘어 2인 가구가 가장 많이 나타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바로 5년 뒤에 1인 가구가 가장 많이 나타난다. 변화 속도가 놀랍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1인 가구의 증가가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우 1인 가구가 10% 증가하는 데 40년이 걸렸다. 미국의 1인 가구 비율은 1970년 17.1%였는데 2010년 26.7%로 늘어났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2000년에 15.5%였다가 2012년에 25.3%로 늘어났다. 대략 비교해 보아도, 미국에서 40년 걸린 인구 및 가구 형태의 변화가 우리나라에서는 12년 만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런 급격한 변화는 사회의 빠른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고, 또, 이러한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이끌었음을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지 않은 이런 빠른 변화는 다양한 곳에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무엇보다도, 사회적 갈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1인 가구의 이해

 

1인 가구는 결혼을 기준으로 세 가지 정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미혼 가구이고, 둘째는 과혼(過婚: 결혼을 넘어섬) 가구로 이혼 등으로 결혼 이후를 사는 가구, 그리고 셋째는 노혼 가구로 노령 인구의 1인 가구이다. 미혼 가구는 1인 가구 중 약 43% 정도를 차지하는 가장 많은 형태이나 1인 가구의 전체는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그리고 둘째는 과혼 가구인데 이런 가구가 생겨난 이유는 이혼, 사별, 별거 등으로 볼 수 있다. 2015년 기준으로 1인 가구 중 미혼이 43.8%, 이혼이 15.5%, 사별이 29.5%이고 배우자 있음이 11.1%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보면 1인 가구 중에서 과혼은 미혼보다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요한 부분은 노혼 가구인데, 평균 연령이 늘어나면서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100세 인생에 부부가 함께 장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인 가구는 이같이 결혼을 기준으로 볼 때 좀 더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고, 고려해야 할 부분도 있음을 알 수 있다.

 

 

1인 가구가 가져온 변화

 

1인 가구는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클라이넨버그는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에서 점점 1인 가구들이 늘어나고, 결혼을 안 했거나, 이혼이나 사별로 혼자 살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는 그 근거를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제시하는데, 첫째는 여성의 지위 상승이고, 둘째는 통신 혁명, 셋째는 대도시의 형성, 그리고 넷째는 수명 연장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요인들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한국의 경우 복지가 발달하면서 노후에 대한 걱정이 과거에 비해 덜어졌다는 점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혼자 늙어갈 수 있겠다는 경제적 계산이 서면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자신감도 늘어날 수 있다. 이런 경향들 때문에 당연히 한국에서도 1인 가구가 빠르게 증가할 것이다. 2017년에 통계청은 30년 후인 2047년에는 1인 가구가 558만에서 832만 가구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런데 그 예측 후 3년 만인 2020년에 이미 1인 가구가 664만 가구가 된 것을 보면, 그 증가 속도가 정부의 예측보다 더 빠를 것 같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사회는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맞는 생활환경을 만들고 있다. 특히 이들은 소비 비중이 크다. 그래서 경제는 이들에 맞는 소비 형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요즘 ‘싱글슈머’나 ‘일코노미’란 신조어가 생겼다. 싱글슈머는 혼자라는 ‘싱글’과 소비자를 말하는 ‘컨슈머’의 합성어이다. 이 신조어는 모두 1인 가구, 또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소비력 증대에 따른 경제적 변화를 보여 준다. 실제로 시장에는 싱글슈머에 맞춘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미 마트나 편의점 등에는 싱글슈머를 위한 1인용 음식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특히, 혼자 먹기 힘든 과일을 작은 양으로 나누어서 판매하는 소분 상품이 일상화되었다. 싱글슈머들의 소비를 상징하는 편의점이나 온라인 판매의 매출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또한, 생활 인프라 역시 1인 가구에 맞추어 나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원룸 등의 주거 공간이 대거 공급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LH공사나 SH공사 등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1인 가구를 위한 주택 지원을 하고 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안전 귀가 지원 서비스, 무인 택배 보관함, 간병 서비스나 전문 상담 서비스 등 생활 지원을 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요즘 서울시에서는 구 단위로 1인 가구 지원 센터를 설립하여 종합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심리적 환경 속에서 1인 가구의 삶은 편리해졌고, 장려되는 듯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1인 가구는 ‘화려한 싱글’의 대명사였다. 그들은 해방의 공간에서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이 자유와 풍요의 상징이었던 1인 가구가 갑자기 걱정과 근심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최근 1인 가구의 증가가 가져온 사회적 부작용들이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상황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청년 1인 가구가 꼽히고 있다. 1인 가구의 취약함은 극단적으로는 자살과 고독사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상황으로 가기까지 1인 가구들이 겪는 경제적, 심리적, 사회적, 개인적 어려움이 상당하다. 그래서 사회와 정부는 1인 가구에 대한 돌봄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즉, 1인 가구가 급격하게 이 사회의 근심거리로 나타났다.

 

1인 가구와 교회

 

1인 가구는 이제 사회적 대세이다. 그런데 그 증가 속도가 너무 빨라서 사회가 못 좇아가고 있다. 불과 5년여 전만 해도 그들의 삶은 동경의 대상이었고, 사회는 그들로 인해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이나 소비 현상을 보면서 신기해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1인 가구가 오히려 돌봄의 대상, 사회적 취약 계층이 되고 있다. 너무 빠르게 그 형태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교회 역시 이제는 기존의 ‘정상 가족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서 이들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환경이나 사회적 환경을 이해하고, 그들의 필요에 맞추어 가는 목회가 필요하다. ‘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다’는 그들의 심리와 환경에 맞는 모임과, 그들의 필요를 채워가는 세심한 배려 역시 필요하다. 혼자이면서 공동체를 그리워하는 그들에게 교회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 이 글은 『기독교세계』(2021년 10월호)에 실린 글을 <좋은나무> 성격에 맞추어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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