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드리는 기도문(정병오)

정병오(기윤실 공동대표, 오디세이학교 교사)

이 땅에 국가를 세우시고 국가의 통치자들에게 다스리는 권한을 위임하셔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를 실현해 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세우신 통치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권력을 휘두름으로 인한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셔서, 모든 백성들의 총의를 통해 권력자를 선출하게 하시며, 권력의 연수를 제한하고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을 역사 가운데서 만들어 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민주주의 제도 역시 여러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의 죄성과 연약함을 고려할 때 하나님이 인류에게 허락하신 최선의 선물임을 고백합니다.

오랜 왕정과 신분제 사회를 거쳐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 가운데 고통받던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기사 해방과 민주주의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비록 이후의 역사가 순탄치 않아 친일 청산 실패,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 군부 독재의 억압이라는 암울한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많은 이들의 수고와 희생을 통해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룩하는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저희는 이 선물을 소중히 가꾸어 가며 질적 성숙을 이루어가는 데 연약하고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희에게 주어진 많은 과제와 문제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많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의 성과가 소수에게 집중되어 양극화와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하고,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가 무시되고 부동산을 비롯한 불로소득을 향한 탐욕이 넘쳐나는 병든 사회가 되었습니다. 정치적 지향이나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을 적대시하고 극단적으로 서로 대립하는 사회적 갈등은,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타협하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며 사회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적대적 대립은 평화를 위협하고 있으며, 우리를 둘러싼 여러 나라들의 대립과 갈등은 우리의 외교적 입지를 좁히고 있습니다. 코로나 전염병과 기후 위기로 인해 미래 삶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게 소비하고 불편한 삶을 감수하고자 하는 사회적 합의와 실천에서는 조금도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5년 주기로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는 바로 이러한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보다 효과적인 정책 대안을 산출하기 위해 경쟁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기회임을 믿습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 과정은 후보자와 그 주변 사람들의 도덕성에 대한 공방에 치우쳐,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각 후보의 대안은 무엇이며, 그 대안은 얼마나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성은 있으며, 각 후보와 정당은 그것을 실현할 역량과 의지를 갖추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 충분히 부각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 제약 가운데서도 이미 제시된 정보들을 부지런히 찾아 자세히 살피고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비교할 수 있는 열심을 우리에게 주시고, 이들 가운데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후보를 찾아낼 수 있는 분별력을 갖게 하옵소서.

이를 위해, 먼저 우리의 판단 기준을 정결케 하옵소서. 내가 가진 집의 값을 올려주거나 나의 기득권을 강화해 줄 수 있는 후보가 아니라, 집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의 주거권을 위해 노력하며, 자산과 권리를 갖지 못한 자들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정책을 기준으로 삼게 하소서. 비록 내가 가진 정치적 입장과 가치관과 일치하는 후보일지라도, 정치적 입장과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조장하며 그 분열의 에너지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후보를 멀리하게 하시고, 여러 다양한 정치적 입장과 가치관을 존중하고 대화를 통한 타협으로 이끌고자 하는 후보를 선택하게 하소서. 전쟁을 피하며 평화를 끌어낼 수 있는 지도자, 경제 성장이 늦더라도 환경을 보호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지도자, 선명한 이념이 아니라 여러 복잡한 국제 관계 속에서 국익과 평화를 조율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도자를 분별하게 하옵소서.

기도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합리적인 판단력을 활용해 국민으로서 투표의 책임을 다하게 하시되, 나와 다른 정치적 선택을 했던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존중할 수 있는 마음과 자세를 갖게 하소서. 내가 선택한 후보가 당선될 경우 더 큰 책임감으로 그 후보가 전체 국민을 아우르는 정치를 하도록 기도하며, 그 후보에 대한 비판적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게 하소서. 혹 내가 선택한 후보가 당선되지 않았더라도, 선출된 이를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로 인정하고 그가 바른 정치를 하도록 기도하게 하시고, 혹 그를 비판하더라도 사실에 기반하여 합리적으로 비판하며 정치적 행동을 하게 하소서.

하나님,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실천으로서 대통령 선거가 중요하긴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님을 기억하게 하소서. 자칫 정치에 과몰입하거나 선명한 정치적 주장을 하는 것을 통해 민주 시민으로서 내 책임을 다한 것으로 착각하지 않게 하소서. 대통령 선거에서 가졌던 그 관심과 그때 했던 기도를 따라 민주 시민으로서 내 몫과 책임을 다하게 하소서. 가정에서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녀의 책임을 다하게 하시며, 직장에서 주어진 일을 정직하게 감당하며 동료들을 섬기게 하시고,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세워 나가는 일을 통해 이 세상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조금씩 더 실현해 가게 하소서. 날마다 온전한 기독 시민으로 성숙해 가게 하시며, 이번 대선 투표와 그 결과에 반응하는 자세도 그 과정 가운데 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