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나쁜 일만 생겼던 것은 아니다. 격리 기간 동안 개인 시간을 가질 수도 있고, 훈련이 간소화되면서 부담이 덜어진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사회와 마찬가지로 자주 바뀌는 부대 방역 규칙에 혼란스럽기도 했고, 부대가 장병들의 ‘건강’을 관리한다는 느낌보다 ‘병’을 관리한다는 인상을 받을 때도 많았다. 많은 부대가 무사고일 수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처럼, 부대 내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누군가에겐 성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본문 중)

규진(가명, 시민)

 

나는 최전방 모 사단 신병 교육 대대에서 조교로 복무했다. 입대 초기엔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전이라서 예전과 크게 다른 것이 없었지만, 이후 코로나가 전국적으로 퍼지고 부대 방역 수칙이 생기고 변화하며 많은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우선, 전에 없던 훈련소 격리 기간이 생겼다. 내가 훈련병이던 시절엔 없었는데, 조교가 되어 훈련소로 돌아와 보니 훈련병들에게 입대 후 2주간 격리 기간을 가지게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 영향으로 입대 전 관행부터 바뀌었다. 일례로 이전엔 입대 당시 소지품 중 의약품처럼 필수 물품이 아니면 수거하여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이제는 책이나 텀블러를 가지고 입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공용 컵 사용이 어렵게 되었고, 훈련소에서는 휴대폰 사용이 허용되지 않으므로 책이라도 볼 수 있게 허락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기에 입대한 훈련병들은 격리 기간 동안 할 일이 없으니 책이라도 꼭 가지고 들어가라는 조언을 여기저기서 들었다고 했다.

 

훈련소 격리 2주 동안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칸막이 사이에서 생활해야 하며, 화장실 이용 및 식사도 통제 가운데 이루어지고, 훈련은 실내에서 가능한 정신 교육이나 간단한 제식 훈련 위주로 진행되었다. 식사는 조교들이 직접 생활관까지 운반하여 실시했고, 설거지도 조교들이 훈련병들 몫까지 담당했다. 한 중대에 배치된 20여 명의 조교가 200여 명 훈련병의 식사를 운반하고 설거지까지 해야 하니 조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2주간 낯설고 좁은 공간에서 동기들과 대화도 제대로 못 하고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훈련병들도 오죽했을까 싶다.

 

격리 기간 이후엔 본격적인 훈련이 진행되었는데, 이것 역시 상당히 간소화되거나 생략되었다. 예를 들어, 지형지물 코스를 이용해야 할 각개전투 훈련을 실내에서 실시했고, 외부에서 텐트를 치고 자야 하는 숙영이 한동안 사라졌으며, 행군은 영외로 나가는 거리를 줄이고 영내로 선회하곤 했다. 5주간의 훈련이 끝나면 훈련 수료식 날에 부대 개방 행사를 가지고 가족들과 면회하던 문화는 옛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종교 행사도 마찬가지다. 이전에는 개신교인 훈련병들은 예배당에 모여서 ‘실로암’ 등의 찬양을 크게 부르며 함께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했는데, 신천지발 코로나 확산 이후엔 찬양을 못 부르게 하거나 심할 땐 종교 행사 자체가 금지되기도 했다. 이렇듯 코로나는 군 생활 첫걸음인 훈련소 생활부터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해당 글과는 관련없는 이미지 입니다.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받아 가면 또 다른 변화된 상황이 기다린다. 우선 부대 내 여러 선임병들의 얼굴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때문에 휴가를 제때 나가지 못해서 조기 전역한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용하지 못한 휴가 기간을 모아서 2-3달 정도의 말년 휴가를 보내게 되었는데, 전역일까지는 군인 신분이기 때문에 부대원 명단에는 그대로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일을 할 사람이 부족하다. 그런데 인력이 부족해도 부대의 편제상 인원은 채워져 있으므로 신병을 새로 뽑을 수도 없다. 여기에 더하여 복무 중인 병사가 휴가를 다녀오면 2주간 격리를 하고, 면회라도 한 번 하면 4일간 격리하는 규정 등 격리 요건도 늘어나다 보니, 내가 근무한 부대를 포함하여 많은 부대가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인력이 부족할수록 휴가나 면회는 더 제한되므로 또 조기 전역자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휴가, 면회, 외출, 외박 같은 ‘쉼’의 제한은 많은 이들에게 스트레스를 겪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내 선임 중 한 명은 9개월 정도 휴가를 나가지 못했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비교적 순한 성격이었던 선임이 점점 예민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장병뿐 아니라 간부들도 휴가나 사적인 외출을 통제당하니 예민해지기 쉬웠고, 불똥이 튀지 않게 서로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스트레스가 심해질 즈음 외출을 한 번씩 허용하면, 그때마다 음주 사고나 군기 위반 사고 등 크고 작은 일탈 행위들이 발생해 논란이 되곤 했다. 그나마 몇 년 전부터 부대 내 스마트폰 반입이 허용되어 외부와의 소통이 완전히 단절되지 않은 점이 참 다행이었다.

 

물론 나쁜 일만 생겼던 것은 아니다. 격리 기간 동안 개인 시간을 가질 수도 있고, 훈련이 간소화되면서 부담이 덜어진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사회와 마찬가지로 자주 바뀌는 부대 방역 규칙에 혼란스럽기도 했고, 부대가 장병들의 ‘건강’을 관리한다는 느낌보다 ‘병’을 관리한다는 인상을 받을 때도 많았다. 많은 부대가 무사고일 수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처럼, 부대 내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누군가에겐 성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모 부대에선 PCR 검사를 최대한 늦게 실시해 확진자 수를 낮추는 꼼수를 쓰기도 했다. 이런 문제들 중 일부가 드러난 것이 ‘격리자 도시락 논란’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 부대의 일은 아니었지만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외부에 이런 사실들이 더 많이 알려지길 바랐다. 병사들은 일방적인 통제를 받는 집단이다 보니 외부에 문제가 알려져야만 개선이 되는 점이 자주 안타까웠다.

 

지금도 많은 장병들이 코로나 때문에 예전보다 더 많이 자유를 제한당하며 군 복무를 하고 있다. 오늘도 고생하고 있을 수많은 장병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언제 또 제2, 제3의 코로나가 우리를 강타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때마다 우리 사회나 군대가 우왕좌왕하거나 미숙하게 대응하여 많은 이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대응 시스템을 갖추게 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실속 있는 시스템이 정착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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