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노동 문제는 안으로는 사회의 무관심과 싸워야 하고, 밖으로는 정부의 친자본적 경영과 다가오는 기후 위기와 노동의 종말 시대에 예상되는 노동 시장의 변화와 싸워야 한다. 노동 문제를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과 동시에, 노동 시장의 감소에 지혜롭게 대처해야 하는 이중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폭넓은 연대가 필요하다. (본문 중)

송기훈(영등포산업선교회 교육홍보팀장)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좀처럼 노동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지난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언론에서 노동 문제가 잠시 언급되었지만,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서 유력 후보들의 비리 논쟁에 휩쓸려버린 까닭에 노동 문제는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져 버렸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의 52시간 노동 논쟁, 최저 임금 이하를 받고도 일하고 싶은 노동자들이 많다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노동 이슈가 확산되었고 그 결과는 노동 문제에 대한 관심 보다는 외면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론 조사 등에서 보듯이 차기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로는 일자리 창출과, 부동산 빈부 격차 완화 등 경제에 관련된 문제가 꼽혔다. 일자리뿐만 아니라 경제 문제를 다룰 때 노동 문제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보수를 지향한다는 윤석열 후보의 노동 공약 주제도 ‘노동 개혁’이 될 정도로 노동 문제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런데 노동 문제가 부동산 등 다른 경제 문제에 묻혀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노동 문제가 노사 문제로만 접근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친노동 정부를 표방하며 출발한 문재인 정부는 초기에 최저 임금 1만 원, 노동 시간 단축,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 같은 굵직한 노동 이슈들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를 맞으며 그와 같은 정책들은 축소되거나 다소 왜곡되었고, 반도체, 철강, 배터리 등의 대기업 중심 산업은 코로나 특수를 힘입어 역대 최고의 실적을 발표한 반면, 노동자들은 코로나 상황을 겪으며 장시간 노동, 무급 노동과 고용 조정 등의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다. 코로나 고용 지원금을 의도적으로 신청하지 않고 집단 무급 휴가를 강요하는 사업장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 문제를 제기했던 노동 운동은 사회의 호응을 받지 못했고, 오히려 코로나 확산의 주범으로 여겨지기만 하였다.

 

윤석열 정부의 시작을 앞두고 지난 12월 기독시민단체들이 공동으로 발표한 ‘대선 100대 공약 제안’을 다시 더듬어 보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청소년 노동 교육,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노동 등의 이슈는 오히려 급진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각 정당에 보낸 질의서에 대해 노동 부문에 관하여 국민의힘 측이 답신을 보내왔지만, 그 내용은 대기업 중심의 노동 구조 개편과 노동 시장 유연화, 그리고 정책과 법제를 검토하겠다는 추상적인 수준에 그쳤다.

 

 

물론 대통령에게만 노동 문제의 모든 책임을 묻고 해결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행정부와의 긴밀한 협조, 시민 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다면, 노동 문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기독시민단체의 역할도 대선 100대 공약을 제안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 부문의 제안들이 잘 실현될 수 있도록 끝까지 그 뜻을 지켜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중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노동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가장 선행되어야 한다. 모든 고용 형태가 정규직일 수는 없지만, 현재 노동 구조는 정규직 채용으로 인한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하청의 하청으로 짜인 이중 삼중의 착취 구조가 원칙처럼 되어 있는 현실이다. 또한 플랫폼 노동 등 새롭게 나타나는 노동 현상에 대한 법제적인 보완도 절실한 상황이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사실상 잃어버린 노동자성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그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은 위험의 외주화를 줄이고, 특수 고용, 계약직 등 사실상 노동자이면서 고용된 노동자가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노동 교육이 필요하다. 청소년들은 노동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과 권리, 불합리한 구조에 처해 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조차 배우지 못한 채, 열악한 노동 시장에 내던져지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청소년을 착취하는 구조를 방기하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청소년, 청년에 대한 교육과 그들의 노동 문제에 대한 구조적인 대책이 없이는 이 땅의 노동의 미래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현실로 다가온 기후 위기와, 자동화, 기계화에 따른 ‘노동의 종말’이 예고되는 이 시점에서, 기업들은 법령을 악용하여 발 빠르게 ‘쉬운 해고 요건’을 갖추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피해 사업장 종사 인원을 50인 이하 5인 이하로 쪼개는 왜곡된 고용 구조를 만들어 놓고 있다. 겉으로는 ESG 경영 등 사회의 변화에 따른 책임 있는 경영을 내세우지만, 필요 이상의 생산을 끊임없이 지속해 나가는 한 기후 위기는 가속될 뿐이다. 노동의 종말과 기후 위기로 인해 변화되는 노동 시장 속에서 일자리를 잃을 노동자를 위한 재교육 및 재고용을 보장하지 않은 경영은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며, 그 피해는 전적으로 노동자가 떠맡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노동 문제는 안으로는 사회의 무관심과 싸워야 하고, 밖으로는 정부의 친자본적 경영과 다가오는 기후 위기와 노동의 종말 시대에 예상되는 노동 시장의 변화와 싸워야 한다. 노동 문제를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과 동시에, 노동 시장의 감소에 지혜롭게 대처해야 하는 이중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폭넓은 연대가 필요하다. 시민사회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 노동 운동은 기존의 임금 상승을 골자로 하는 협상에서 벗어나, 초과 이윤을 지역 사회 돌봄과 기후 위기 극복에 환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연대 기금 조성에 힘써나갈 때 사회의 더 많은 지지를 얻게 될 것이다.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모든 일들은 이 세계의 온전한 창조 질서 회복과 그리 먼 일이 아니다. 왜곡된 하청 고용 구조 속에서 산업 재해로 죽어가는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를 살리는 일, 앞으로 노동 시장을 만들고 이끌 청소년, 예비 노동자들을 준비시키는 일, 그리고 기후 위기를 지혜롭게 돌파하며 노동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은 생명 공동체를 지키고 보전하는 일이다. 대선 100가지 공약을 제안했으니 그 책임과 발걸음이 더욱 무겁다. 이 거룩한 일을 함께 해 나갈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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