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 시비에도 불구하고 여러 주가 반낙태 입법을 강행하는 이유는, 지난 몇 년 사이 대법원 분위기가 변했기 때문이다. 5년 전 보수 세력의 결집으로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재임 중 3명의 대법관을 지명했는데, 보수, 중도, 진보가 각각 차지했던 자리를 전부 보수로 채웠다. 현재 연방 대법원은 보수와 진보가 6:3을 이루고 있어 낙태에 대한 입장도 달라질 수밖에 없고, 난공불락 같던 로 대 웨이드 판결 자체가 뒤집힐 가능성도 예견된다. (본문 중)

권수경(목사, 좋은나무 편집위원)

 

싸움의 시작

 

지금 미국에서는 낙태를 둘러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낙태를 합법으로 유지하려는 쪽과 불법으로 규정해 금지하려는 쪽 사이의 싸움이다. 미국은 1973년의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 이후 50년 동안 임신 6개월 이전의 낙태는 완전 합법이었다. 연방 대법원이 모든 시민의 동등권을 보장한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에 근거하여 임신 여성의 낙태 결정을 개인의 합법적 권리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 판결로 그때까지 연방 및 여러 주에서 시행되던 낙태 금지법은 전부 효력을 잃었다. 1992년에는 ‘임신 6개월’ 대신 ‘태아의 생존 가능성’을 합법 낙태의 새 기준으로 삼으면서 1973년 판결의 효력을 재확인하였다. 지난 50년 동안 미국은 적어도 낙태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의 자유를 누려 왔다.

 

그동안 남부와 중서부 여러 주에서는 낙태를 금지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았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런 가운데 2013년 노스다코타주가 심장박동법이라는 새 금지법을 제정했다. 태아의 심장이 뛰기 시작한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는 법으로서 사실상 임신 6주 이후의 모든 낙태를 금지하는 강력한 법이었다. 이 법은 다른 주에도 영향을 미쳐 현재까지 보수 개신교의 영향이 강한 미국 중남부 바이블벨트를 중심으로 9개 주가 이 심장박동법을 채택했고, 이런저런 형태의 반낙태법을 통과시켜 둔 주는 20개가 넘는다. 그렇지만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위배되는 법이라 효력도 없고 뉴스거리도 되지 않았다.

 

본격적인 싸움은 작년 9월에 시작됐다. 텍사스주가 심장박동법을 제정하면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무력화할 기발한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낙태를 엄격히 금지한다는 취지는 타주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낙태자 본인이 아닌 시술 업자를 처벌하게 만든 점과 처벌 방식을 정부 주도의 형사소송이 아닌 민간 주도의 민사소송으로 하게 한 점이 독특했다. 새 법에 따르면 누구든 불법 낙태를 시술하거나 방조하는 의사나 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피고의 위법 사실이 확인되면 피고는 원고에게 최소 일만 달러의 손해 배상금을 소송 비용과 함께 지급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손해 배상액에 상한선이 없고 중복 소송도 원칙상 가능하므로, 한두 건의 낙태로도 시술 업자를 파산시킬 수 있는 강력한 법이다.

 

이 법은 논의 과정에서부터 위헌 소송이 줄을 이었다. 심지어 미국 법무부도 텍사스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위헌 판정을 얻어내지 못했다. 범법자를 처벌하는 주체가 불특정 다수의 민간인이고, 주 공무원은 참여 자체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 법은 고소인이 피고소인의 유죄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피고소인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책임을 지도록 하여 법 자체가 낙태 시술자에게 절대 불리하게 구성되어 있다. 또, 원고는 피고의 무죄가 드러나도 소송 비용을 내줄 필요가 없다. 텍사스주에서는 법 시행 첫 달에 낙태가 전년 대비 반 정도로 줄었다. 돈의 힘을 활용한 덕분에 텍사스는 현재 미국에서 낙태 금지법이 실질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유일한 주가 되었다.

 

 

동조와 반발

 

텍사스주의 성공에 고무된 다른 주들도 행동에 나서 올해에만 30개 주가 반낙태 입법을 시도했다. 아이다호주는 텍사스주 법을 그대로 모방한 민간 주도의 심장박동법을 통과시켰는데, 위헌 소송이 진행 중이라 효력은 일단 중지된 상태다. 오클라호마주의 새 법은 낙태를 10년 이하의 징역형이 가능한 중범죄로 규정하여 인근 텍사스인들의 원정 낙태를 차단했다. 플로리다주는 심장박동법이 두 번 부결된 이후 미시시피주처럼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시시피주는 반낙태법을 2018년에 통과시켰는데, 주내 유일의 낙태 시술 기관이 위헌 소송을 제기하여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연방 하급 법원과 항소 법원이 잇달아 위헌 판결을 내리자 주 정부가 연방 대법원에 상고했는데 연방 대법원은 태아의 생존 가능성 이전의 낙태 금지가 모두 위헌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올여름 전에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위헌 시비에도 불구하고 여러 주가 반낙태 입법을 강행하는 이유는, 지난 몇 년 사이 대법원 분위기가 변했기 때문이다. 5년 전 보수 세력의 결집으로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재임 중 3명의 대법관을 지명했는데, 보수, 중도, 진보가 각각 차지했던 자리를 전부 보수로 채웠다. 현재 연방 대법원은 보수와 진보가 6:3을 이루고 있어 낙태에 대한 입장도 달라질 수밖에 없고, 난공불락 같던 로 대 웨이드 판결 자체가 뒤집힐 가능성도 예견된다.1) 다만 로버츠 대법원장의 중재에 따라 로 대 웨이드 판결의 효력도 인정하면서 미시시피주 법안도 합헌으로 인정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여성의 임신 중단권과 주 정부의 반낙태 규정 모두 합헌이 되는 셈이다.

 

반격도 만만찮다. 그래서 싸움이다. 이미 16개 주가 낙태를 합법으로 명시하고 있는 가운데, 버몬트, 캘리포니아, 메릴랜드, 수도 워싱턴 등 약 30개 주가 여성의 임신 중단권을 보호하는 새 규정을 추진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자기 주를 낙태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선언을 했다. 낙태 문제로 소송을 당하는 사람의 소송 비용을 대납해 주겠다는 기업체도 속속 등장했다. 남북전쟁 때 중간에 끼었던 켄터키주는 의회에서 통과시킨 반낙태법을 주지사가 거부하자 의회가 재의결하는 일도 있었다. 연방 하원도 임신 중단권을 연방법으로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상원에서 부결당했다. 과거 노예 문제로 나누어졌던 나라가 지금은 낙태 문제로 다시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임신 중단권자와 낙태 반대자 사이의 골은 점점 커지고 감정적 대립도 격화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금 하루에도 몇 개씩 낙태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정치와 교회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낙태 전쟁은 일종의 이념 대립이다. 오랜 전통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반발과 그 반발을 거부하는 보수 반동 사이의 갈등이다. 포스트모던 상대주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인정하자는 포용적인 태도다. 그런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앞세우는데, 여성, 장애인, 빈민, 소수인종 등 전통적 약자에 지금은 성소수자가 큰 비중으로 가세해 있다. 그렇지만 상생과 평화라는 아름다운 간판 뒤에서는 주도권 쟁탈전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현실의 삶에서는 공존이 불가능하여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낙태도 그 가운데 하나다. 여성이 약자인가 아니면 태어나지 못한 생명이 약자인가? 문제는 둘 다 보호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낙태에 대한 태도는 정치적 성향과 통한다. 보수가 낙태 반대 운동을 벌이면, 진보는 임신 중단권을 강조한다. 공화당은 대체로 낙태를 반대하고 민주당은 낙태에 호의적이다. 이런 싸움에서는 중도 타협이 없다. 다 먹거나 다 잃는 게임이어서 피를 말리는 싸움이 벌어진다. 합법 여부가 결정된 이후에도 비용 등 세부적인 문제로 힘겨루기가 이어진다. 상대를 제압하는 기발한 방법도 계속 개발될 것이다. 올여름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미국에서는 단일한 행위가 합헌인 동시에 위헌도 되는 지극히 포스트모던스러운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다수결이 우리 시대 진리의 기준이니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다.

 

이런 낙태 전쟁에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낙태하는 미국인 100명 중에 개신교인은 37명 천주교인은 28명이다. 미국 내 기독교인이 65퍼센트라 하니 기독교인도 남들만큼 낙태를 한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낙태 전쟁은 진보와 보수 사이의 싸움인데, 교회 역시 진보냐 보수냐에 따라 찬성과 반대가 갈린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분이신데 결론은 정반대로 난다. 그런 이념 대립이 성 윤리나 자연과학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도 일관성 있게 나타나므로, 사람들은 이념이 기독교 신앙보다 강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교회는 낙태를 반대하는 쪽과 찬성하는 쪽 모두에 적극 참여하고 있어 교회의 존재감은 상당히 크다. 그렇지만 상반된 주장으로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미국의 낙태 전쟁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우리도 비슷한 상황 가운데서 같은 문제를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적 이슈와 관련하여 교회의 성경적 역할에 대해 따져볼 좋은 기회다. 이념으로 나누어져 있는 현실 가운데 진리의 복음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절대적인 신앙을 상대적인 정치 현실 가운데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무겁고 미안하고 아픈 질문이다. 생명 존중이라는 성경의 핵심 원리를 선포할 뿐 아니라 그 원리를 자유, 평화, 공존 가운데 현실로 이루어내는 일은 경건의 능력과 삶의 지혜를 함께 요구하는 일이다. 십자가로만 가능할 것이니 교회가 할 수 있고 또 꼭 해야 한다.

 


1) 필자는 2020년 1월 출간한 저서에서 트럼프의 영향으로 일어날 이런 변화를 예견하고 설명한 바 있다. 『변하는 세상 영원한 복음』(SFC), 48-49쪽을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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