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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그쳤으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곳도 때가 되면 총성도 그치고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그때 누군가는 죽은 아이의 조그만 머리를 손으로 쓸어 본 기억을 애써 지우려 할 것이나, 불편하고 아파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이든 사건이든 잊히는 게 진짜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 중)

 

이정일(작가, 목사)

 

줄리안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1)를 읽고 나면 기억은 다르게 적힌다는 걸 알게 된다. 분명히 같은 일을 겪고 같은 장소에 있었고 한 사람은 피해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가해자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정반대였다. 소설은 기억이 빚어내는 인생의 변덕스러움을 말하나 우리는 이런 변덕을 한국전쟁을 통해서도 느끼곤 한다.

 

6.25 전쟁은 74년 전의 일이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1개월간 진행되며 남북한 합쳐 약 300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당시 한반도 인구가 3천만이었으니 열 명 중 한 명이 죽었다. 하지만 이걸 기억하는 사람의 기억은 저마다 다르다. 불편하거나 아프기도 하고, 치밀하거나 허술하기도 하다.

 

수원시 인계동 예술공원 평화의 거리에는 6.25 전쟁의 아픔을 일깨워 주는 전시물이 있는데, 만화가 김성환 화백의 그림이다. 그림은 6월 27일 서울, 돈암동 근처 모습으로 시작한다. 시민들이 피란길에 오르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엔 의정부 쪽에서 포성이 들리고 포연이 솟아나더니 다음날 공산군이 서울에 진입했다.

 

6월 29일 그림은 절규하는 남녀의 모습을 그렸다. 가족을 잃었을 것이다. 6월 30일은 유엔군 전투기의 폭격을 그렸다. 이후 9월 28일엔 서울이 수복되는 모습을 그렸는데 불과 석 달 뒤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한다. 이렇게 그린 그림 중엔 중공군 포로를 이송하는 장면도 있다. 피부병에 걸린 포로들의 모습이 보인다.

 

 

김성환 화백이 그린 1951년 10월 29일 장면에 나온 중공군은 하진의 소설 『전쟁 쓰레기』2)에선 좀 더 깊이 그려진다. 소설은 중공군 전쟁 포로 이야기다. 작가는 인민해방군으로 7년을 복무한 뒤 미국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1989년 천안문 사태에 충격을 받고 미국에 남았고 이 소설을 썼다. 작가는 왜 포로에 관심을 가졌을까?

 

포로로 잡힌 중공군은 2만 명쯤 된다. 휴전 후 이들 중 3분의 1은 중국 본토로 돌아갔고 나머지 3분의 2는 대만으로 갔다. 작가는 본토로 간 사람들의 삶을 추적한다. 수백 명이 간첩 혐의로 감옥에 갇혔고 모든 포로가 불명예제대를 했고 평생을 특별 관리 대상으로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았다. 이들이 복권된 건 1980년이다.

 

27년간 포로들은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장렬하게 전사하지 못하고 적에게 항복하여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했다고 말이다. 소설이지만 실제 있었던 일을 쓰면서 작가 하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소설 끝에서 포로였던 사단장 페이가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게!”라고 부탁하고 일흔네 살이 된 화자가 기록한 게 소설이다.

 

하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6.25 전쟁을 우리의 시선과 기억으로만 읽었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결코 후회해서는 안 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대만행을 뿌리치고 본토 귀환을 선택한 주인공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는 게 느껴진다. 소설은 유물 같은 가치는 없지만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전쟁의 슬픔을 증언해 준다.

 

종군 화가 우신출은 총을 왼손에 쥐고 배낭을 등에 멘 채 오른손으로 편지를 읽고 있는 병사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최초의 종군 사진사 임인식은 라이카 카메라를 총이라고 생각하며 전쟁 속 순간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이게 사소해 보여도 개인이 경험한 순간의 기억도 모아지면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읽도록 도와준다.

 

기록은 기억을 남긴다. 기록은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전쟁의 아픔과 슬픔을 상기시킨다. 하진은 국가를 위해 싸웠으나 국가가 인간을 물건처럼 이용하고 버리는 아픔을 보여 준다. 미제 담배를 피운 것은 항복으로 간주하였고, 적에게 자신의 본명과 부대 일련번호를 말한 사람은 국가의 비밀을 누설한 자로 분류되었다.

 

비슷한 아픔을 국민 방위군으로 징집되었던 이봉균 씨도 갖고 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그는 23세에 중매로 만난 아내와 결혼했다. 하지만 빨갱이로 몰려 방공호에서 수류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을 끝내 찾지 못한 죄책감으로 지금도 괴로워한다. 이런 그를 보면 인간이란 존재는 부재 속에서도 존재한다는 걸 느낀다.

 

한국전쟁은 그쳤으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곳도 때가 되면 총성도 그치고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그때 누군가는 죽은 아이의 조그만 머리를 손으로 쓸어 본 기억을 애써 지우려 할 것이나, 불편하고 아파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이든 사건이든 잊히는 게 진짜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1)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최세희 역. 다산책방, 2023.

2) 하진. 『전쟁 쓰레기』. 왕은철 역. 시공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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