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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평범한 농사꾼임을 후회하거나 큰 인물이 못되고 작은 인물이 된 것을 후회한 일은 단 한 번도 없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에 만족한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 맞는 작은 일 밖에는 할 줄 모른다. 그러나 그 작은 일도 오랜 세월을 두고 쌓아 올리면 그것이 큰 일이 된다. 그것이 나의 살아가는 방침이요 이 책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본문 중)

 

손승호(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사무국장)

 

큰 일과 작은 일, 큰 사람과 작은 사람

 

세상에는 크고 중요한 일이 있는가 하면 평범하고 작은 일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보통 큰 일이라고 하면 국가적 이벤트나 정치적 사건, 또는 큰 이익이 오가는 경제적 활동을 말합니다. 큰 사람과 작은 사람도 있지요. 요즘 세상에서는 영향력이 큰 이들이 큰 사람인 것 같습니다. 주로 정치인이나 경제인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요즘은 인플루언서라고 부르는(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 직업도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큰 사람들은 선망과 성원의 대상이 됩니다. 그만큼 적이 많아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대개 큰일에 많은 관심을 쏟고 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주변으로부터 존중받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태 속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건네는 이가 있습니다.

 

나는 내가 평범한 농사꾼임을 후회하거나 큰 인물이 못되고 작은 인물이 된 것을 후회한 일은 단 한 번도 없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에 만족한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 맞는 작은 일 밖에는 할 줄 모른다. 그러나 그 작은 일도 오랜 세월을 두고 쌓아 올리면 그것이 큰 일이 된다. 그것이 나의 살아가는 방침이요 이 책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가나안 농군학교를 설립한 김용기 장로가 쓴 『가나안으로 가는 길』의 한 대목입니다. 작은 일을 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우리 모두, 화이팅입니다!

 

그러나 김용기 장로님이 ‘나는 작은 인물이고 작은 일 밖에 할 줄 모른다’라고 고백한 말씀은 과연 그러한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볼 수는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만큼 큰 일을 하신 큰 어른도 없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 문화관이 상설 전시하고 있는 『가나안으로 가는 길』 책과 가나안 농군학교 문서 이야기와 함께, 김용기 장로님과 가나안 농군학교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여러 번 재판된 책인데(최근 개정판은 규장, 2014) 우리 문화관은 1968년 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김용기 장로의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장로님은 워낙 한국 역사에 족적이 뚜렷한 분이라 여러 사람이 이 분의 생애를 연구했습니다. 저는 장로회신학대학에서 김용기 장로 연구로 석사논문을 쓴 차주만 선생의 글이 제일 흥미로워서, 그 글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일가(一家) 김용기의 성장기

 

김용기 장로님은 1912년에 태어나신 것 같습니다. ‘같다’라는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습니다. 당시의 출생 등록 관행이 요즘 같지 않아서, 김용기 장로님의 생애 연구들도 어떤 것은 출생 연도를 1907년, 어떤 것은 1909년, 또 어떤 것은 1912년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1980년에 출판된 자서전 『나의 한길 60년』에서는 1912년 9월 5일이 생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때는 한일 강제 병합 직후였으니 사회 분위기가 정말로 심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장로님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독립’, ‘민족’ 이런 이야기를 지겹도록 들으셨다고 합니다. 3.1운동 때는 어른들 틈에서 만세를 부르셨다고 합니다. 1919년이면 장로님이 7살일 때였습니다. 말하자면 민족운동 꿈나무로 자라나신 것입니다. 광동학교에 진학했을 때 조원택이라는 체육 선생님을 만나게 되시는데, 이분이 또 학생들의 마음에 민족혼을 불 지피는 분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19살이 되던 해에 일이 터지고야 맙니다. 장로님은 일제를 멸망시키기 위해 우선 중국을 지배해야겠다는 마음을 품으셨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요. 스케일이 커도 너무 큽니다. 뜻을 품은 사나이는 머뭇거리지 않는 법, 장로님은 40여 장의 긴 편지를 아버지께 남기고 집을 떠나 중국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리고 심양에서 서탑교회 목사였던 독립운동가 이성락 목사님을 만납니다. 두 분의 일화가 재미있습니다. 장로님은 일단 마적단으로 들어간 다음에 군인이 될 생각을 품으셨습니다. 목사님께 이 이야기를 하면서 군인으로 세력을 계속 확장해서 중국 본토를 우리 민족의 땅으로 되찾겠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무협지처럼 허황돼 보이는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이 이야기를 들은 목사님은 장로님을 데리고 식당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전병을 시켜 놓고 한복판부터 파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장로님이 이 큰 걸 어떻게 복판부터 먹냐고 하자 목사님이 소리를 지르셨답니다. “떡 한 조각도 복판에서 못 먹겠다는 주제에 중국 대륙을 복판에서 먹겠다고?” 이 말을 들은 장로님은 자신의 생각이 허황되다는 걸 느끼고 두 달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셨습니다. 포기도 빠르셨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했는가 하면, 겨우내 성서를 읽으셨습니다. 성서를 완독한 다음에는 강화도의 마니산에서 40일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생 최대의 엄청난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농사꾼이 되기로 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장로님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군인이 돼서 중국을 정복하겠다고 했다가, 몇 달 뒤에 평생 농사를 짓겠다고 다짐하는 이 엄청난 격차!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뒤에 펼쳐지는 이야기를 보면 이해가 됩니다. 그냥 농사를 짓겠다는 게 아니라 이상촌을 만들겠다는 결심이었던 것입니다.

 

그럼, 이상촌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장사를 합니다. 이상촌 건설에는 돈이 많이 들 것이니까요. 잡화상과 이발소를 하셨다는데, 장사가 잘 되어 돈을 좀 버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누가 돈을 좀 벌었다고 하면 다가오는 사기꾼에게 걸려들어서, 광산에 투자했다가 벌어 놓은 돈을 모두 날리셨습니다. 하지만 비범한 인물은 실패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기 마련입니다. “이상촌은 돈만이 아니라 피와 땀으로 일구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고리대금업자를 찾아가 “몸뚱이가 내 담보”라는 말로 400원을 빌리셨습니다. 그리고 비탈진 산 3천 평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부인과 둘이서 그 땅을 개간하셨습니다. 3년 동안 개척한 땅은 훌륭한 과수원과 고구마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걸 1,200원에 팔았습니다. 돈을 갚고 800원이 남았고, 이걸로 또 마을 앞산 4,100평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상촌을 건설할 목적으로 동지들을 불러들입니다. 제일 먼저 달려온 것은 몽양 여운형 선생의 6촌 동생인 여운혁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명의 동지가 합류하면서 10세대가 모이게 됩니다. 이상촌 운동을 함께 펼쳐나갈 공동체가 생겼습니다. 우선 살 집을 짓고 집 둘레에 무궁화를 심어 담장을 대신했습니다. 그리고 마을 중앙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김용기 장로님의 1차 이상촌 개척이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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