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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를 읽는 것은 뇌의 아키텍처를 순식간에 재조립하거나 업그레이드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늘 고민하던 문제를 새롭고 낯선 세계관 속에서 마주하는 순간, 우리의 뇌는 굳어진 이성의 방화벽을 가볍게 우회하여 생각의 가중치를 완전히 재조정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성을 우회해 마음을 두드리는 천선란 소설의 문장들처럼 말이다. (본문 중)
이정일(작가, 목사)
한국에서 발랄한 SF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2030 세대다. SF는 본질적으로 변화를 좋아하는 이들의 장르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인공지능, 메타버스 속에서 자라난 이들에게 SF적 세계관은 따로 학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직관으로 이해되는 현실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무한 경쟁과 취업난에 가로막힌 청년들에게 현재의 한국 사회는 답답할 수 있다. SF는 그들에게 숨구멍이 되어 준다.
실제로 김초엽, 천선란, 김보영 같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청년들이 왜 SF라는 인터페이스를 선택했는지 명확히 이해하게 된다. 이들은 2030 세대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쟁과 소외, 효율성 만능주의, 인간성, 희망, 공감과 연대, 생명의 본질 같은 아젠다를 미래 세계에 빗대어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효율성만을 따지는 기술 사회에서 뒤처지고 소외된 이들의 복잡한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해 냈다.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은 상처 입은 로봇과 경주마,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다. 읽으면 나만 뒤처진다고 느껴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준다. 김보영의 『종의 기원담』은 인류가 멸망하고 로봇들만 살아가는 세상에서 창조주와 자신의 기원을 탐구하는 이야기다.

SF를 읽는 것은 뇌의 아키텍처를 순식간에 재조립하거나 업그레이드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늘 고민하던 문제를 새롭고 낯선 세계관 속에서 마주하는 순간, 우리의 뇌는 굳어진 이성의 방화벽을 가볍게 우회하여 생각의 가중치를 완전히 재조정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성을 우회해 마음을 두드리는 천선란 소설의 문장들처럼 말이다.
천 개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짧은 삶을 살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천 개의 단어는 모두 하늘 같은 느낌이었다. 좌절이나 시련, 슬픔, 당신도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이 모두 다 천 개의 파랑이었다.
우주는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것만 탄생시켰다.
행복만이 유일하게 과거를 이길 수 있어요.
SF는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시뮬레이션한다. 소설 속 미래의 인물도 현재의 우리처럼 같은 곳을 보지만 서로 다른 것을 기억하고, 때론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것처럼 시간을 공유한다.
내가 사는 현재든 미래든 산다는 것은 어렵고 복잡하지만, 우리는 SF를 통해 지금 발 딛고 있는 현재를 전혀 다르게 바라보는 눈을 뜨게 된다.
요즘의 SF는 과거의 문법과 궤를 달리한다. 과거 〈듄〉이나 〈스타워즈〉 같은 광활한 스페이스 오페라가 영웅 서사에 집중했다면, 요즘의 SF는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같은 지극히 철학적이고 실존적인 질문에 집중한다. AI가 진보하고 인간 복제가 언급되는 시대이기에, 우리는 진짜 나의 본질과 영혼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묻게 되는 것이다.
결국 2030 세대에게 SF는 먼 미래의 허황된 공상이 아니다. 완벽하지 않은 주인공들이 붕괴된 미래의 한복판에서도 끝내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듯, 청년들은 SF라는 미래를 빌려와 오늘을 살아낼 용기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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