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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 교회인데 왜 통역이 필요한가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농인이 중심이 된 교회에 굳이 음성 통역이 필요한 이유를 궁금해합니다. 우리 교회처럼 농인이 주축이 되어 수어로 예배가 진행되는 공동체에는 코다, 농인의 가족, 혹은 농인 사역에 관심을 가진 일반 청인 성도가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이들은 수어 실력이 능숙하지 않을 수도 있고, 신앙과 관련된 내용을 깊이 이해하는 데 언어 장벽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 중)
조미혜(주안수어교회 통역사)
저는 ‘코다’(CODA, Child of Deaf Adult)입니다. 코다는 부모 중 한 명 또는 양쪽 모두가 농인 혹은 청각장애인이거나, 보호자가 농인 혹은 청각장애인인 가정에서 양육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저 역시 부모님 두 분 모두가 농인1)이십니다.
저는 모태 신앙인으로, 부모님은 46년간 한 농인 교회를 섬기셨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을 따라 농인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렸고, 청인2) 선생님으로부터 신앙 교육을 받으며 신앙심을 키워 왔습니다. 이후 학령기에 접어들면서 친구들과 함께 집에서 가까운 교회를 다녔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교회를 옮겨 열심히 신앙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신앙은 점차 식어갔고, 어느새 제가 형식적인 예배만을 드리는 성도가 되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결혼 후에는 자녀를 데리고 계속해서 교회에 출석하였으나, 여전히 마음은 뜨겁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교회 내에서 정치적 욕심과 권력을 추구하는 어른들의 행동이 눈에 띄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교회에 대한 회의감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신앙을 완전히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고, 결국 어머니가 출석하시는 교회를 다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주안수어교회로, 농인 목사님이 수어로 설교를 하시고, 성도들 역시 대부분이 농인이며, 청인을 위한 음성 통역(수어→음성)이 제공되는 교회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농인 교회인데 왜 통역이 필요한가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농인이 중심이 된 교회에 굳이 음성 통역이 필요한 이유를 궁금해합니다. 우리 교회처럼 농인이 주축이 되어 수어로 예배가 진행되는 공동체에는 코다, 농인의 가족, 혹은 농인 사역에 관심을 가진 일반 청인 성도가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이들은 수어 실력이 능숙하지 않을 수도 있고, 신앙과 관련된 내용을 깊이 이해하는 데 언어 장벽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수어 예배를 음성으로 실시간 통역해 주는 ‘음성 통역’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수어가 시각 언어로서 풍부한 표현력을 지녔다 해도, 그것을 정확히 음성으로 전달하는 과정이 없으면 청인은 예배 중 나누어지는 핵심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우리 교회에는 농인 목사님이 직접 설교를 하시기 때문에, 설교의 핵심 메시지와 영적 감동을 청인 성도에게도 동일하게 전하기 위해서는 수어를 음성으로 바꾸는 통역이 필요합니다.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서, 설교의 흐름, 감정, 강조점까지 섬세하게 옮기는 통역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음성 통역사’입니다. 저 역시 그 사역에 참여하며 통역의 중요성과 무게를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수어는 저의 모어이고 편한 언어이지만, 그 내용을 음성으로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수어를 보면 즉시 이해가 되지만, 그걸 입으로 표현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는 경험을 자주 했습니다.
스스로 수어에 익숙하다고 자부했지만, 성경에 대한 지식과 신학적 어휘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교만과 자만심을 인식하고서 말씀을 더욱 가까이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음성 통역을 하면서 혹여나 설교를 잘못 전달하면 어떡하나 염려하던 어느 날, 농인 전도사님께 상담을 요청하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전도사님이 보여 주신 말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출애굽기 4:10-12)
이 말씀은 저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주님이 제 연약함을 아시고 함께하시며 입술을 사용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다시금 통역 사역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완전한 통역은 어렵지만, 말씀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수어 예배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청인을 배려해 통역을 제공하는 이유는, 바로 모든 사람이 한 말씀 안에서 하나 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수어로 설교를 한다고요?”라고 놀랍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농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훌륭한 농인 목회자와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농인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청인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춘 분들도 계십니다. 다만 그 능력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는 통역자가 부족하기에, 청인들이 그 가치를 제대로 접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저는 지금의 우리 교회가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고요하지만 고요하지 않은, 시각 언어로 드려지는 살아 있는 예배. 농인과 청인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이 공동체가 저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합니다.
1) 제1 언어로 수어를 사용하고, 수어를 중심으로 한 농문화를 공유하며, 수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농정체성을 가진 사람.
2) 청각 중심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 그 문화와 언어(말과 문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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