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기윤실 <좋은나무> 입니다.
지난 8월 6일, 구독자님들께 <좋은나무> 카카오톡 발송료 후원요청 편지를 보내드린 이후 현재(8월 19일)까지 약 180만원의 후원금이 모였습니다. 마음을 모아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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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나무>는 교회와 사회, 문화와 과학·기술, 성경과 신학 등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함께 생각해 온 웹진입니다. 그렇다면 <좋은나무>를 읽는 독자들은 이 글들을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요? 이번에는 <좋은나무>를 꾸준히 읽어 온 세 분의 이야기를 통해 <좋은나무>가 각자의 삶과 일상, 그리고 신앙의 자리에서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를 들어봅니다. <좋은나무>가 흩어진 정보 속에서 생각의 방향을 찾도록 돕고, 익숙한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과 신앙을 함께 고민하도록 돕는 순간들을 만나보세요!
「좋은나무」 구독자 후기(박용한)
박용한(연리지감리교회 담임목사, 기독 인문학 모임 ‘춘천 더불어 숲’ 운영진)
구슬을 꿰는 틀을 만나다
나는 설교를 준비하기 전, 신문 오피니언과 칼럼 세 군데 정도를 습관처럼 훑어본다. 정치, 문학, 생태, 예술, 사회, 동물 등 다양한 영역의 글들이 언제나 새로운 관점과 신선한 통찰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회자로서는 늘 아쉬움이 있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여러 분야의 다양한 정보들은 얻지만 그것들을 기독교적 관점으로 소화할 뚜렷한 틀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접하게 된 「좋은나무」의 글들은 내게 ‘흩어진 구슬을 꿸 수 있는 단단한 틀’을 제공해 주었다. 특히 평소 생태와 환경, 그리고 과학기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좋은나무」의 글들을 읽으면서 조금씩 구슬이 꿰어지는 듯한 경험을 하고 있다.
시대의 맥을 짚어 주는 시의적절한 시선
「좋은나무」에 올라오는 글들은 매번 놀라울 정도로 시의적절하다. 한국 사회가 지금 이 시점에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가 함께 아파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지, 그리고 교회와 목회자가 자칫 놓치기 쉬운 중요한 사역이 무엇인지 예리하게 지적하며 돌아보게 만든다.
나의 경우는 특히 관심은 있지만 스스로 취약하다고 느끼는 과학·기술 분야의 글들을 세세히 읽게 된다. 「좋은나무」의 글들이 매일 급변하는 과학·기술 관련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중심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좋은나무」의 글들은 짧은 분량임에도 묵직한 통찰을 담고 있어 언제나 긴 여운을 남긴다. 기독교와 공공성, 청년 세대의 이해, 환경과 생태 문제 등 본질적 이슈를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
목회 현장에서의 활용
「좋은나무」를 구독하며 얻은 통찰들은 목회 현장에서도 아주 유용하다. 깊은 울림을 준 글들은 캡처해 두었다가, 주일 설교에서 서론이나 시의적절한 예화로 녹여내기도 하고, 글을 쓸 때 든든한 참고 자료로 삼는다. 때로는 동료 목회자들과의 모임에서 토론을 하거나 의견을 나눌 때 논의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단편화된 세상 속에서 깊이를 회복하는 길
요즘처럼 쇼츠와 같은 콘텐츠가 우리의 시선과 시간을 독점하는 시대에는 우리의 생각도 단편화되기 쉽다. 청소년과 청년뿐 아니라 중장년층 또한 동일한, 어쩌면 더 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더 나아가 목회자들마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단편적이 되고 편협해진다면 교회의 공공성은 큰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 50세 중반을 넘어서면 눈이 불편해지고 독서량이 감소하고 두꺼운 책을 멀리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럴 때 「좋은나무」가 전하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글들이 유익하다. 좋은 글들을 계속 접하다 보면 야위어 가던 사유의 근력을 조금이나마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지만 이런 글들을 읽는 습관이, 사회의 변화를 이해하는 통찰을 얻고 사람을 향한 따뜻한 감수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노인과 늙음, 그다음 시선을 기대하며
「좋은나무」에 요청하고 싶은 부분도 있다. 최근 2년간의 발행 주제들을 살펴보면 다소 아쉽거나 비어 있다고 느껴지는 영역이 보인다. 바로 ‘노인’, ‘늙음’과 같은 주제다. 우리 사회는 이미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고, 그 변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는 현장이 바로 교회다.
교회 안에서 노인들의 지혜가 종종 긍정적인 기여를 하지만, 때로는 완고한 고집이나 오래된 관성으로 변하여 공동체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청년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여러 주제들이 깊이 있게 반복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처럼, 이제는 ‘노인’과 ‘늙음’의 주제도 비슷한 분량으로 다뤄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함으로써 「좋은나무」가 개인과 사회, 그리고 우리 교회를 이루고 있는 어르신들의 삶을 더욱 진지하고 입체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길 기대해 본다.
「좋은나무」를 읽는 마음(김은재)
김은재(2025 기윤실 광주 기행 참여 청년)
정보가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덮어버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알고리즘은 자꾸만 나를 어떤 곳으로 끌고 간다.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을 보여 주고, 내가 믿어 온 생각과 비슷한 말을 들려준다. 나는 스스로 보고 판단한다고 여기지만, 어쩌면 무엇을 볼지부터 이미 누군가에게 맡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내 생각을 어디에서 얻고 있을까. 생각은 온전히 내 것 같지만, 실은 그동안 보고 들은 것들이 쌓인 결과일 것이다. 무엇을 자주 접하는지는 내가 무엇을 쉽게 믿고, 어떤 일에 반응하며, 무엇을 그저 지나치는지를 결정한다. 그래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런 와중에 오후 4시가 되면 「좋은나무」가 온다. 오는 시간도 좋다. 곧 퇴근 시간이 되리라 알리는 반가운 신호이기도 하다. 「좋은나무」는 교회, 사회, 문화, 과학·기술, 성경·신학, 북리뷰라는 여섯 분야에 걸쳐 신앙과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함께 살피는 글을 보내 준다. 보통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한 편씩, 금요일에는 그 주의 글을 모아 네 편이 온다. 금요일에는 알림이 뜨면 먼저 제목을 살피고 글을 잠깐 훑어본다. 마음이 가는 글은 퇴근길에 마저 읽는다. 나름의 불금(?) 루틴이다.
알고리즘이 내 취향을 따라 비슷한 이야기를 보여 준다면, 「좋은나무」는 내가 스스로 찾지 못했을 질문을 건넨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일을 다른 자리에서 바라보게 하고, 쉽게 내렸던 판단 곁에 내가 미처 살피지 못한 사실을 놓아 준다. 글을 읽고 생각이 명확해질 때도 있지만, 오히려 이전보다 복잡해질 때도 있다.
「좋은나무」라는 이름은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마 7:17, 새번역)라는 말씀에서 왔다고 한다. 물론 좋은 글 한 편을 읽었다고 곧장 좋은 열매를 맺을 리는 없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지만, 「좋은나무」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게 한다. 오후 4시에 도착한 글 한 편은 퇴근길이 끝난 뒤에도 하나의 물음으로 남는다. 좋은 열매는 아마 거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좋은나무」 구독자 편지(신하영)
신하영(세명대 교양대학 교육학 교수)
「좋은나무」의 독자, 필자, 편집위원이 된 지 벌써 4년이 넘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횡행하던 시절인 2021년에 대학에 교수로 임용된 후 첫 번째로 든 느낌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제목이기도 하다-라고 할 정도의 황량함이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학생들이 캠퍼스에 머물지 않게 되면서, 캠퍼스 ‘라이프’ 즉 대학 생활 자체가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학생들이 대학 생활을 통해서 향유하던 사제 관계, 선후배 관계, 동아리 활동, 유의미한 학습 활동, 그리고 캠퍼스 커플(!)의 상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이후 ‘포스트코로나’시대가 도래한 지금도,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대학 캠퍼스에는 여러모로 회복되지 않은 상흔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학생들의 자치 활동, 동아리 활동의 비활성화이다. 기독교 동아리는 코로나19 전후로 엄청난 위기를 겪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여느 동아리만큼 치열하게 ‘신입생 유치’에 열심이던 SFC, CCC, IVF, 네비게이토 등의 여러 선교 단체들이 있었다. 연합 동아리 모임을 할 때는 함께 방학 기도회를 기획할 정도로 기독교 동아리 나름의 문화와 연대를 이루었었다. 그런데 코로나19 동안 한국 교회의 교세가 기울었던 것처럼 대학 내 기독교 동아리도 자취를 감췄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는 유일하게 CCC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타 기독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친구들도 이제 사라진 자신의 동아리 대신 ‘초교파적으로’ 수렴된 CCC 안에서 그나마 신앙 활동의 숨구멍을 찾고 있다. 작년(2025년) 어느 날이었다. CCC 동아리 지도 교수였던 선배 교수님 부탁으로 CCC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탄핵 정국 전후로 더 심해진, 교회와 기독교인에 대한 세상의 부정적 인식 때문에 한껏 위축되어 있었다. 기독교에 대한 혐오 발언이 학생들의 익명 게시판-일명 ‘에타’(에브리타임)로 불린다-에도 종종 올라오고 있었다. 학생들은 뭐라고 반박은 하고 싶은데, 부모님 혹은 교회 내 기성세대가 알려주는 제한된 정보 안에서는 기독교 세계관과 그로 해석하는 다채로운 세상 이야기를 접하기 어려웠기에 질문이 많았다. 질문 중에는 내가 대답해 주기 어려운, 과학, 전쟁, 정치, 경제 등의 다양한 주제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좋은나무」를 추천했다. 학생들은 목회자와 다양한 분야 지식인이 조화를 이루는 필진 구성, 그리고 신문 기사와 인터넷 커뮤니티 글에서 ‘뜨거운 감자’로 다뤄지는 이슈를 사실은 교회에서도, 기독 지식인들도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고 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에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좋은나무」의 독자, 필자, 편집위원으로서 너무나 감사하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학생들은 앞으로도 세상에서 계속 도전받고 때로는 비난받고 더 자주 외로워질 것이다. 대학 시절 선교 단체 선배들의 든든한 멘토링을 받으면서도 힘들었던 나의 방황을 생각하면, 그마저도 없는 우리 젊은 기독 청년들의 상황은 더 안타깝다. 「좋은나무」의 글들이 기독교 세계관을 정립해 나가고, 세상의 길 위에서 자신의 길, 하나님의 길을 더듬어 찾아가려는 청년들을 위해 곳곳에 놓인 작은 촛불들이 되기를 바란다.
※ 저희는 이번에 총 210명의 구독자가 후원에 참여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래 제시한 기대표를 보면서 선생님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카톡 발송비 후원자로 참여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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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모금은 8월 6일(목)-9월 4일(금)까지 진행합니다.
해당 기간에 후원해주신 금액은 <좋은나무> 제작에 사용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