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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쟁 교수는 작년에 프랑스연합개신교회에 이 성서를 전달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성서는 공포, 침묵, 망각을 극복하고 살아남았습니다. 이제 가톨릭 교인인 몽쟁 가족이 이 성서를 한국 개신교 박물관에 기증하는 일이 평화, 일치, 복음 메시지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내는 일이 되길 바랍니다.” 평화, 일치, 복음 메시지에 대한 충성심이라 … 뭔가 프랑스인스러운 멋이 나는 말입니다. (본문 중)

 

손승호(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사무국장)

 

프랑스 교회의 선물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은 한국 기독교를 주제로 다룹니다. 그래서 수집한 유물도 예외적인 몇몇 건을 제외하면 다 한국 교회와 직접 관련된 것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오래된 유물이라고 하더라도 19세기 말보다 더 과거로 거슬러 가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에 개신교 선교가 시작된 시기를 보통 1884년이나 1885년 정도로 보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17세기의 문화유산이 수집되었습니다. 뜬금없이 유럽에서 프랑스어 성서가 들어온 거죠.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우리 문화관이 이 성서를 수집하게 된 경위는 이렇습니다. 우리 문화관의 건립을 위한 기초 작업이 한창 진행되던 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과 동역자 관계에 있는 프랑스연합개신교회에 한국에서 새로운 초교파 기독교 박물관이 생긴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이사 중 한 분이 프랑스연합개신교회에 우리 박물관 건립 기념으로 프랑스교회의 문화유산을 기증해 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프랑스연합개신교회가 흔쾌히 응한 것입니다.

 

프랑스연합개신교회는 2013년에 프랑스개혁교회와 프랑스복음주의루터교회가 연합하면서 생겨난 프랑스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단이지만, 교단이 소유한 문화유산은 마땅한 게 없었나 봅니다. 그래서 한국에 보낼 문화유산을 모집했고 릴 제1대학의 피에르 몽쟁(Pierre Mongin) 교수가 가문 대대로 전해 내려온 성서를 내놓았습니다. 피에르 몽쟁 교수는 한국에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마인드맵 관련 베스트셀러 『생각 정리의 기술』(지형, 2007)이라는 책을 출판한 저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 문화유산을 보내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올해 8월 30일, 프랑스 릴에서 프랑스 교회가 준비한 기증 예식이 있었습니다. 마침, 올해는 조불수호통상조약(1886년)이 체결된 지 14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를 기념하며 프랑스 교회와 한국 교회가 협력과 연대를 확인하는 행사를 가진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이 프랑스에 파송한 에큐메니컬 선교 동역자 성원용 목사의 수고가 많았습니다. 프랑스연합개신교회 전 총회장 에마뉘엘 세이볼트(Emmanuelle Seyboldt) 목사는 기증 예식 설교에서 “프랑스 개신교회 신앙의 중심인 이 성서가 한국 교회에 전달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것을 계기로 한불 양국의 역사와 선교적 교류가 더욱 공고해지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문화관도 “이 문화유산이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아온 프랑스와 한국의 신앙인들의 이야기를 잇는 다리가 될 것”이라고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서로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주고받으며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하나입니다. “내 마음속에 당신이 차지한 자리가 있습니다.” 프랑스 교회가 한국 교회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로 여기고 있다는 그 마음이 문화유산의 기증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유물을 받은 것은 우리 문화관이지만 그 마음은 한국 교회 전체를 향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베자의 프랑스어 성서 개정판

 

이번에 기증받은 성서는 1678년 제네바에서 출판된 것입니다. 장 칼뱅의 뒤를 이은 종교개혁자 중 하나인 테오도르 드 베자(Théodore de Bèze)가 1588년에 프랑스어 성서를 발행한 적이 있는데, 그 성서의 개정판입니다. 베자의 프랑스어 성서는 위그노(16-17세기 프랑스 개신교 칼뱅주의 신자들―편집자) 역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신앙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사실 각 나라의 언어로 성서가 번역되는 것이 종교개혁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었으니까요.

 

종교개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535년에 프랑스어 성경전서가 처음으로 스위스 뇌샤텔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칼뱅의 사촌인 피에르 로베르 올리베탕(Pierre Robert Olivétan)이 번역하고 칼뱅이 서문을 쓴 이 성서를 올리베탕 성서라고도 부릅니다. 이후 언어 실력이 뛰어난 성서학자 베자와 그 동료들이 이 올리베탕 성서를 철저히 개정합니다. 그 결과가 베자의 프랑스어 성서입니다. 이 책은 이후 위그노들의 사랑을 받으며 개신교 프랑스어 성서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우리 문화관이 기증받은 베자의 프랑스어 성서 개정판은 뒤몽(les Dumont de Crest) 가문이 보존해 왔습니다. 뒤몽 가문은 열렬한 위그노 가문이었습니다. 1562년,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프랑수와 드 기즈(François de Guise) 공작이 바시에서 위그노를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른바 바시 학살 사건입니다. 이후 프랑스는 37년간 이어지는 큰 내전에 빠져듭니다. 이 전쟁은 가톨릭과 위그노 간의 종교 전쟁이었기 때문에 위그노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뒤몽 가문도 이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뒤몽 가문의 안투안(Antoyne)은 가톨릭 세력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몽콩투르 전투에 장교로 참여했다가 전사했습니다.

 

위그노 전쟁은 종교적 관용과 자유를 인정한 낭트칙령(1598)으로 일단락됩니다. 하지만 1685년에 낭트칙령이 철회되었고 뒤몽 가문은 프랑스를 떠나 제네바 망명길에 오릅니다. 이때 아마 이 성서를 구입한 것 같습니다. 뒤몽 가문은 1727년 크레 인근의 라 레파라(La Répara) 영지를 구입하고 프랑스로 귀환했지만, 이후로도 종교적 탄압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이 성서를 몰래 장남에게 물려주며 숨겨왔습니다.

 

이 성서는 표지 등 몇 페이지가 누락되어 있습니다. 박해 당시 가톨릭 왕권파는 개신교인을 색출하기 위해 가택 수사를 했습니다. 이 가택 수사의 주된 목적은 성서 등을 비롯한 개신교 신앙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가톨릭은 라틴어로 된 불가타(Vulgata) 성서만 공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어 성서를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위그노인 게 확실하다고 여겼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이 문맹이었던 군인들은 책을 보고도 이게 성서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급하게 ‘성서’(Bible)란 단어만 익히고 가택 수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위그노들은 앞뒤 표지, 색인, 판권 등 성서라는 말이 적혀 있는 부분을 찢어버렸다고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앞의 몇 장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쉬워했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이 누락이 성서를 지켜낸 뒤몽 가문의 신앙과 역사를 잘 보여 주는 흔적인 것 같아 오히려 새로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마지막 개인 소장자이자 기증자인 피에르 몽쟁 교수는 가톨릭 신자라고 합니다. 몽쟁 교수의 아버지는 뒤몽 가문의 사위였는데 성서가 아버지에게 전달되어 몽쟁 교수가 물려받게 되었다고 하네요. 몽쟁 교수는 작년에 프랑스연합개신교회에 이 성서를 전달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성서는 공포, 침묵, 망각을 극복하고 살아남았습니다. 이제 가톨릭 교인인 몽쟁 가족이 이 성서를 한국 개신교 박물관에 기증하는 일이 평화, 일치, 복음 메시지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내는 일이 되길 바랍니다.” 평화, 일치, 복음 메시지에 대한 충성심이라 … 뭔가 프랑스인스러운 멋이 나는 말입니다.

 

문화관을 대표하여 올해 8월 기증식에 참여한 손달익 이사는 답사에서, “이 성서에는 지난 수백 년 동안 프랑스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지켜온 신앙과 고난, 인내의 역사가 스며 있다. … 몽쟁 교수님 가족이 여러 대에 걸쳐 이 성서를 지켜 오신 마음과 정성을 이어받아 다음 세대까지 안전하게 전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약속했습니다. 우리 이사님이 약속했으니 우리 문화관이 지켜야겠지요. 불이 나더라도 이 성서만은 들고 대피하겠습니다. 이 성서의 실물을 보시고 싶은 분들은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을 방문해 주세요. 전시실에서 오랜 세월을 건너온 성서와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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