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사역 중에는 옛 예언자들의 행위 예언처럼 행위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로 자세히 그 의미를 설명하지 않으셨지만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이해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것들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의미심장한 두 가지는, 12제자를 세우신 것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에서 성찬식을 제정하신 일입니다.(본문 중)
노종문(좋은나무 편집주간)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겔 36:22-23)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 6:9)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사역은 크게 셋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시며 그 가시적 표지로서 치유와 귀신 축출 사역을 행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12제자를 세우시고 제자 공동체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는 결정적 행위로서 십자가와 부활의 사역을 실행하신 것입니다. 이번 글과 다음 글에서는 예수님 사역의 두 번째 부분인 제자 공동체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가르침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 중에는 옛 예언자들의 행위 예언처럼 행위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로 자세히 그 의미를 설명하지 않으셨지만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이해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것들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의미심장한 두 가지는, 12제자를 세우신 것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에서 성찬식을 제정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은 사역의 가장 초기에 몇몇 신실한 사람을 제자로 부르셨고(막 1:16-20; 요 1:35-51),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열둘을 뽑아 세우셨습니다. 하필이면 왜 열둘일까요? 그것은 물론, 예수님이 가져오시는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이스라엘 12지파의 출현으로 전개됨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 식사 자리에서 성찬식을 제정하셨습니다. 떡을 떼어 주시며 당신의 몸을 먹으라고 하시고, 포도주를 부어주시며 ‘새 언약’을 위해 흘리는 당신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2:20; 막 14:24; 마 26:28).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달리 보지 말고 ‘새로운 출애굽’ 사건으로 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첫 번째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그 제물의 피를 뿌리고 살을 먹음으로써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출 24:1-11). 예수님이 제정하신 성찬식은 이 첫 번째 언약 제정 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새로운 언약 의식이며,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자들이 새로운 언약 안에서 새 이스라엘이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12제자를 세우심을 통해 새로운 이스라엘을 출범시키는 프로젝트를 개시하셨으며, 옛 언약은 효력을 다했다고 선언하시고 이제 다시 새 언약을 제정하신 것입니다.[1]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이스라엘의 본질은 혈연의 관계망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되는 것입니다(막 3:33-35). 또, 새 언약의 본질은 옛 예언자들이 전망한 것처럼, 마음에 율법을 새기는 것(렘 31:31-34), 부드러운 마음과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율례들과 규례들을 행하게 하시는 것(겔 36:26-27), 성령과 그 말씀을 그들의 입에서 떠나지 않고 영원히 머물게 하시는 것(사 59:21)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각 사람에게 성령님이 내주하셔서(요 7:38) 그들을 속에서부터 갱신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시작한 새로운 이스라엘 프로젝트는 이미 이사야 60-62장에 예언된 비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복음을 전하시며 이사야 61:1-2의 성취를 선언하셨는데(눅 4:16-21), 아마도 예수님은 누가복음에 인용된 두 구절만이 아니라 이사야 60-62장 전체를 읽으셨을 것입니다. 그 내용은 예루살렘의 영광스러운 회복의 비전이며, 메시야가 그것을 이루고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비전은 또한 요한계시록 21:1-22:5에 등장합니다. 하늘로부터 장엄하게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열두 성문 위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쓰여 있고(21:12), 성곽을 받친 열두 개의 기초석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21:1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게 하시며, 그분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그분의 뜻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기 위해서는 에스겔의 예언처럼 거룩한 이스라엘이 나타나야 합니다(겔 36:22-28). 새로운 이스라엘은 정결하게 되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행해야 합니다(겔 36:25-27). 또한, 이 땅 위에 아버지의 나라가 오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것도 같은 간구이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새로운 백성이 나타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새로운 백성이 따라야 할 명령들을 주심으로써(예를 들어 산상수훈) 그 명령들의 실행을 통해 ‘영원한 시대에 속한 삶의 양식’, 곧 ‘영생’을 살아가는 새로운 이스라엘(즉, 하나님의 자녀들, 제자 공동체, 교회)이 빚어지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첫째로, 교회는 문화와 역사의 모든 영역에서 장차 나타날 영원한 시대의 삶의 양식을 미리 드러내야 합니다. 교회는 곧 멸망할 세상에 등장한 구원의 방주가 아니라 새로워질 땅 위에 일찍 나타난 새로운 예루살렘입니다. 이 새로운 예루살렘은 산위의 도시처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마 5:13-16; 비교, 사 2:2-4; 미 4:1-5) 메시아와 그의 통치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나타내야 할 소명을 지닙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명령들을 가르치고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교회와 성도의 최우선의 소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구원 이후에 부가된 의무나 과제가 아닙니다. 그 실천 자체가 교회와 성도를 새로운 이스라엘로 형성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산상수훈으로(마 7:21-27), 대위임령(마 28:18-20)으로, 고별설교로(요 15:1-10) 여러 번 자신의 명령들(복수형)을 실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명령들을 가르치고 배우고 실천하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셋째로, 새로운 이스라엘의 ‘새로움’은, 예언자들의 예언처럼, 이제 성령님이 각 사람 안에 내주하신다는 것입니다(요 7:37-39). 성령님의 내주하심이 없다면, 새 이스라엘은 옛 이스라엘보다 전혀 나은 것이 없습니다. 성령님이 함께하시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이 가져오신 하나님 나라의 가장 큰 혜택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와 신자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과 동행하는 법을 배우고 알고 가르쳐야 합니다.
[1] 지난 세기에 성서학자들은 기독교가 유대교를 단순히 대체한 것이 아니라 계승하고 있고, 1세기 유대교가 이해한 언약이 단순한 ‘율법주의’가 아니라 은혜의 언약이었음을 밝혔습니다. 이는 오래된 고정관념을 바로잡은 정당한 주장들입니다. 이런 발견에 따라 미세 조정을 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가 당시의 유대교를 속에서부터 본질적으로 갱신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옛 언약 지속론자가 아니었고 예언자들을 계승한 새 언약론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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