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한국교회
이 글은 2019년 기윤실 회원총회에서 기윤실 발기인이신 이만열 교수님(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께서 강의하신 ‘3.1운동과 한국교회’ 발제문을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기독교가 민족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기독교의 민족관이나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교육이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한말 이래 기독교인들의 민족의식·민족운동의 전통을 적극 참여의 배경으로 지적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대로 아시아·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는 기독교 국가의 침략을 당하였으나, 한국은 일본이라는 비기독교국가에 의해 침략을 당함으로써 기독교 이념에 입각한 독립운동이 가능했다. 한국의 기독교 민족운동은 한말부터 시작되었는데, 을사늑약이 이뤄진 1905∼1910년 사이의 기독교인들의 민족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을사늑약 파기운동과 관련하여 엡윗회(懿法會)의 활동, 전덕기의 을사오적 처단 미수, 대한민 앞의 상소운동(이준 등), 정동교회 교인 정재홍과 양우 교인 홍태순의 순국자결, 장인환과 전명운이 친일미국인 외교관 스티븐스 저격, 안중근(가톨릭)·우덕순(기독교)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이재명의 이완용 암살미수 등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한말의 기독교민족운동의 이런 전통을 독립협회→상동파 및 황성기독교 청년회→신민회→105인사건→신한청년당 및 송죽회로 이어지는 항일민족운동의 흐름으로 보고 이런 전통 위에서 3.1운동이 전개된다고 지적하는 이도 있다.
또 기독교계의 교단 조직화가 이 운동에 조직적으로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점은 앞에서 간단하게 지적했다. 또 일제가 강점한 후 기독교회의 예배를 방해하고 설교에 제재를 가하는 등 종교적인 자유마저 박탈하려 했다. 특히 금주·금연에 관한 설교나 ‘다윗과 골리앗’을 주제로 한 강론도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거기에다 강점한 지 얼마 안되어 벌인 ‘105인 사건’은 기독교 지도자들을 노골적으로 탄압하려 한 사건이었다. 1915년에는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고 포교법을 제정하여 기독교학교의 성경공부와 채플 등을 금지하고 선교를 방해하였다. 이것은 한국인에 대한 생존권을 위협한 데다 이제는 신앙의 자유마저 빼앗아 버리려는 것이었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도 궐기치 않을 수 없었다.
끝으로 우리는 당시 3.1운동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의 신앙적인 행동에서 그들의 신앙과 민족사랑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던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이미 모세·삼손·다윗·다니엘의 사적 등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우리 민족의 역사와 대비하고 있던 한국인들은, 3.1운동의 만세시위가 한창일 때, 기독교회가 작성한〈독립단 통고문〉을 뿌렸다. 내용은, ① 매일 3시에 기도하고, ② 주일은 금식하고, ③ 매일 성경을 읽는데, 월요일-사 10(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시리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 화요일-렘 12(유다가 멸망한 원인에 대한 설명,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버리셨기 때문’), 수요일-신 28(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에게 침략받아 고통받게 되리라는 예언), 목요일-약 5(고난당하는 기독교인들에게 기도와 인내할 것을 권면), 금요일-사 59(죄지은 백성이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다는 예언), 그리고 토요일-롬 8(성령이 주시는 생명,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등이었다. 여기서 민족운동을, 신앙고백 위에서, 신앙운동과 함께 진행시킨, 민족과 신앙을 일치시킨 것을 엿보게 된다.
삼일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 한국교회는 신앙의 선조들의 그런 신앙과 행동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숙고해야 한다. 삼일운동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지역과 계층, 종교와 이념, 남녀와 노소를 초월하여 전개한 항일독립운동이었다. 특히 천도교와 기독교 불교가 연대하여 이 거대한 운동을 폭발시켰다. 종교간의 이런 연대와 협력은 지금 한국 교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가. 삼일운동에서는 일제의 침략 강점을 물리치고자 했는데, 해방 70여년을 넘긴 우리는 외세의 지배를 완전히 벗어나 있는가. 기미독립선언은 분명히 한국의 자주국임과 한국민의 자주민임을 선언했다. 지금은 어떤 상태인가. 오늘의 상태를 보는 한국 교회의 혜안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삼일운동과 기미독립선언문에는 평화를 강조했다. 그 일절이다.
“이천만 함분축원의 백성을 위력으로써 구속함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소이가 아닐 뿐아니라 이로 인하여 동양안위의 주축인 사억만 중국인의 일본에 대한 위구와 시의를 갈수록 농후케 하여 그 결과 동양전국이 공도동망의 비운을 초치할 것이 명백하니 오늘 우리의 조선독립은 조선인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나와 동양지지자의 중책을 온전케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몽매에도 면치 못하는 불안공포로부터 탈출케 하는 것이며, 또 동양평화로써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게평화 인류행복에 필요한 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의 문제이리요.”
오늘 날 한국의 분단은 주변 나라들의 평화 및 안위와 깊은 관련이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한민족의 완전자주독립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동양평화 나아가 세계평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는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아 한국이 세계에 줄 수 있는 귀한 선물이 한반도의 평화통일임을 다시한번 다짐하고, 삼일운동 100주년의 의의를 이 민족의 분단적 삶을 평화적으로 극복해 가는 데에 구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고 맨손으로 조국의 완전자주통일독립을 구현하려고 노력했던 선진들을 되돌아보면서, 한국교회는 평화통일이라는 지향과 세계봉사라는 더 높은 가치를 다짐하기를 기대한다.
*이글은 열매소식지 제268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쓴이_ 이만열(기윤실 발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