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씨 같은 경우는 탈북민들이 가질 만한 기본적인 어려움을 다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고립되어 주변에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도움받을 길이 많았는데도 스스로 찾아 나서지를 못했다. 그리고 잠시 일을 한 적도 있었지만 지속적인 일자리를 구하지는 못했다. 탈북민들은 대개 건강 문제를 가지고 있다. 북한에 있을 때 제대로 먹지 못해서 몸이 약하거나 탈북 과정에서 몸이 상하는 경우가 많다. (본문 중)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기윤실 교회신뢰운동본부장)

 

얼마 전 어느 탈북자 모자가 아사(餓死), 즉 굶어 죽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대한민국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니. 더 기가 막혔던 것은, 그들은 살아보자고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으로 온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좀 알아보니, 그 엄마는 42세의 젊은 사람이었다. 아이는 아직 6살밖에 안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

탈북민들은 보통 하나원이라는 교육원에서 3개월간 정착 교육을 받는다. 퇴소할 때 400만 원의 정착 지원금을 받고, 이후 분기별로 나누어 300만 원을 더 받게 된다. 이것 외에도 가산금이나 장려금 등이 나오는데 액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1,500만 원과 2,500만 원 정도가 지급된다. 그리고 주거 지원금으로 1인 세대 기준 1,300만 원이 나온다. 꽤 많은 돈이 지원되는 것 같지만 한국에서 아무런 기반도 없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금액이 아니다. 보통 임대주택을 얻도록 정부가 안내해 주는데 마련해야 할 보증금은 주거지원금 수준 이상이다. 거기에 탈북을 도와준 브로커에게 보내야 하는 돈도 있고,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돈도 있다. 그러니 정착비라고 하는 것이 큰 금액으로 보이지만 살아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큰돈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죽은 한 씨에게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국에 들어와서 중국인과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직장 때문인지 경남 통영에서도 살았고 중국에서도 2년 정도 살았다. 아무래도 정착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지난 해 9월 아들과 함께 한국에 와서 살다가 올해 1월 남편과 이혼하였다. 아파트 월세와 전기, 가스, 수도 요금이 18개월 동안이나 밀려 있었다고 한다. 통장 잔고는 0원이었고, 냉장고에는 고춧가루만 들어 있었다고 한다.

 

ⓒpixabay.

 

한 씨 같은 경우는 탈북민들이 가질 만한 기본적인 어려움을 다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고립되어 주변에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도움받을 길이 많았는데도 스스로 찾아 나서지를 못했다. 그리고 잠시 일을 한 적도 있었지만 지속적인 일자리를 구하지는 못했다. 탈북민들은 대개 건강 문제를 가지고 있다. 북한에 있을 때 제대로 먹지 못해서 몸이 약하거나 탈북 과정에서 몸이 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제대로 된 직장생활이 어렵다. 또 한 씨는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가족이나 친척도 없어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아이도 역시 정착의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유치원이나 보육시설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직장 생활에 집중할 수 없으니 직장을 잡아도 오래 유지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사회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으니 어디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이렇게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씨의 경우가 좀 특별한 경우이기는 하다. 다양한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송파 세 모녀 사건(2014년) 이후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가 많이 증가하여 복지 혜택이 필요한 사람을 정부가 먼저 찾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사회복지 공무원을 2,892명 채용하는 등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또 전기, 수도, 가스 요금, 관리비나 임대료, 건강보험료, 연금보험료 등이 체납되면 정부가 정보를 파악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14개의 기관의 29가지 정보를 통합해 빅데이터 형식으로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 씨의 경우는 모든 요금들이 18개월이나 연체되었는데 감시망에 걸리지 않은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이다.

중요한 문제점은 복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시스템과 법규는 있는데 사람 대 사람이 만날 기회가 적다. 복지 혜택도 늘어났고 지원도 많아졌지만 그 혜택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이 있다. 시스템이나 법규가 규정한 범위 안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들이다. 특히 차상위 계층에 속한 사람들, 또는 자녀가 있지만 왕래가 없어 자녀의 도움을 못 받는 부모 같은 경우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복지사가 직접 만나보고, 그들의 사정을 헤아려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복지 시스템은 그 기초에 불신이 깔려 있다. 사회복지사들이 판단하여 자원을 운용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그래서 정말 힘든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사회복지사의 숫자도 아직 많이 부족하다. 복지대상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필자가 자살 예방 운동을 하면서 만나는 정신보건 요원들의 경우 정규직이 드물다. 각 구와 군에 설치된 정신보건복지센터는 민간단체에 위탁 운영을 하고 있다. 보통 정신병원 등에 위탁되는데 기간은 2년이다. 따라서 직원들도 2년 계약직이다. 위탁 기관이 바뀔 수 있으니 2년마다 위탁 기관과 계약을 해야 하는 신분이다. 그러다 보니 안정적으로 일할 여건이 못 되어 사람이 항상 부족하다. 그러므로 사회복지사들이 맘 놓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pixabay.

 

교회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지역 사회복지사들과 교제하는 것이다. 필자가 속한 실천신학대학원에서는 목회자 연장교육을 하고 있는데, 목회자들에게 지역의 주민센터를 찾아가서 사회복지사와 인사를 나누라는 과제를 내준다. 사회복지사에게 ‘이 지역 목사인데 도울 것이 있으면 연락 달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한 번으로는 안 되고 신뢰 관계가 형성이 될 때까지 찾아가야 한다. 그러면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한다. 사회복지 혜택이 부족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데 교회가 도와달라는 요청이 많다. 차상위 계층에게 도움을 달라는 것도 있고, 반찬 나눔을 하는데 배달을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에게 교복을 후원해 달라고 하기도 한다. 교회로서는 그렇게 큰돈이 아닐 수 있지만 사회복지사가 임의로 운용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다. 그리고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된다. 송파 세 모녀의 경우는 월세를 못 내게 될 것이 마음에 걸려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사회복지사가 그 정도 도움을 교회에 요청했다면 교회가 도울 수 있지 않았을까. 교회들이 열린 마음으로 사회복지사들을 지원했으면 한다. 그래서 그들이 시스템과 법규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수혜자들을 만날 수 있도록 돕고 연대하는 것이다.

둘째는, 교회가 지역 이웃들을 돕는다는 것을 드러냈으면 좋겠다. 경주 최부잣집에는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이 있었다고 한다. 사방 100리면 동서남북으로 40km이다. 이 넓은 지역에서 흉년이 나도 곳간의 곡식을 풀어 사람들이 굶어 죽지 않게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가훈이 지켜졌고, 이 가문은 여러 난리와 어려움 가운데서도 300년간 망하지 않고 흥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처럼 교회가 있는 곳에서 사방 100리는 너무 넓으니, 적어도 사방 10리 안에는 굶어 죽는 사람도, 삶이 어려워 자살하는 사람도 없어졌으면 좋겠다. 교회가 우리 동네 사람들을 책임지겠다고 사방팔방 알려서, 동네 이웃들이 교회 가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해야 한다.

탈북자 모자의 죽음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살아보겠다고 북을 탈출하여 남한으로 온 이들이 먹지를 못해 굶어 죽었다는 것은 너무나 비극적인 일이다. 이 일은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을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다. 복지 시스템이 이런 이들을 놓치지 말아야 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선한 이웃이 되는 것이다. 특히 선한 이웃이 되라고 부름을 받은 교회는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어느 강의에서 들은 이야기다. 옛날에는 동네마다 미친 사람이 하나 씩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죽지 않고 살았다. 동네에서 누군가가 이들을 거두어 먹였고, 이들 역시 당당하게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배고프다, 밥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게 바로 공동체다. 현대사회가 팍팍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교회가 앞장서서 동네와 마을을 만들고, 더 나아가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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