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로 온다는 것은 지상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에 달려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 완성의 주체는 언제나 하나님이요, 하나님 나라 자체입니다. 그 나라의 도래는 오로지 하나님 자신에게 달려 있고, 지상에서 그 나라의 완성 역시 하나님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본문 중)
현요한 (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교수, 조직신학)
지난번 글에서는 하나님 나라가 어떤 제한된 영토 개념보다도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킨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우리에게로 오는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 같지만, 잘 새겨보면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죽은 후에 영혼이 육체를 떠나 ‘요단강을 건너서’ 들어가는 어떤 특별한 공간을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이 가르쳐 주는 하나님 나라는 영화 <신과 함께>에 나오는 것처럼,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사후 세계의 무시무시한 여행 과정을 통해 들어가게 되는 천상 세계와는 매우 다릅니다. 성경은 놀랍게도 오히려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로 ‘온다’ 혹은 ‘이미 왔다’고 말합니다.
물론, 성경이 우리가 육체의 죽음 저편에서 들어가는 어떤 영적 세계에 대해서도 말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 중 하나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간청하였고, 예수님은 그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눅 23:42-43). 또, 예수께서 말씀하신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보면,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고, 부자는 음부에 들어갔다고 합니다(눅 16:22-23). 또한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2). 그런데 성경은 이런 것을 ‘하나님 나라’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물론 그러한 세계도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도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세계이니까요.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것만을 하나님 나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죽은 후에 비로소 들어가는 어떤 공간이 아니라, 우리에게로 왔고, 또 지금도 오고 있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강림을 통해서 우리에게로 왔고, 또 지금도 오고 있으며,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 세상에 완성될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육체의 죽음 저편 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세상, 이 땅으로 진군해 오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우리에게로 와서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이 나라에 들어가 살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결단 말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천국’이라는 말이 많이(39회) 나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죽음 저편에 있는 ‘하늘나라’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들과 같은 내용을 말해주는 평행 구절들을 보면, 다른 복음서들이 ‘하나님 나라’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마태복음은 ‘천국’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태는 다른 복음서들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을 ‘천국’이라고 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많지는 않지만, 마태도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4회). 그중의 한 구절에서는 이 둘을 동일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9:23에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라고 하였는데, 24절에서는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동의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천국과 동의어인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죽음 저편에 있는 하늘나라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3:2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하였고, 마태복음 4:17에서는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선포하셨으며, 마태복음 10:7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시면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파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국이 죽음 저편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어떤 공간이라면 그것이 “가까이 왔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의 천국도 역시 우리가 죽어서 가는 저 하늘의 어떤 공간이 아니라, 이 세상으로 오는 하나님의 나라, 즉 이 세상에 침투하여 실현되는 하나님의 통치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음은 바로 그 나라의 복음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물론, 하늘에 있는 나라, 하늘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통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는 이 땅으로 와서 이 땅에도 있으며 이 땅에서 실현되고 구체화되기를 원하는 나라입니다. 천국은 세상 저편에 있는 나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 나라는 저세상에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으로 와서, 이 세상에도 있는 나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한결같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라고 서술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간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로 ‘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으로 여행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래서 이것은 복음입니다!) 하나님 나라 자체가 우리에게 오는 나라요, 온 나라요, 또 계속해서 올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가 죽음 저편 저 하늘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정태적 공간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나라의 의미는 우선적으로 어떤 정태적인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동적인 통치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저 하늘 어딘가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공간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우리에게 도래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사후 세계의 어떤 공간에 불과하다면, 그것이 ‘온다’ 혹은 ‘왔다’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로 온다는 것은 지상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에 달려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 완성의 주체는 언제나 하나님이요, 하나님 나라 자체입니다. 그 나라의 도래는 오로지 하나님 자신에게 달려 있고, 지상에서 그 나라의 완성 역시 하나님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물론 먼저 하나님 나라로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증언하며 섬겨야 할 책무가 있지만, 지상의 하나님 나라는 인간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능력과 은혜의 산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과 희생으로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죄악과 불의와 어두움과 고통 속에 있는 세상에 희망이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암울하고, 고통스럽고, 슬퍼도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에게로 왔고, 또 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세상에서 그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그 실현을 위해 섬겨야 할 교회가 제 구실을 못하고 부패하여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능력이 많으셔서 반드시 자신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고난과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낙담하지 않습니다. 그 영성은 불굴의 희망의 영성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강림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세상으로 침투하기 시작하였고, 지금도 세상 속에서 진군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는 완전히 이루어질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는 말은 하나님의 관심이 이 세상과 이 땅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에서는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그 뜻이, 그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보여주는 이 세상의 종말론적 비전은 “새 하늘” 뿐만 아니라 “새 땅”이기도 합니다. 그때에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다”라고 합니다(계 21:2). 하나님의 관심은 이 땅에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늘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하늘에서는 그 뜻이 온전히 이루어졌으므로 그와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믿는 사람들의 영성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체념한 채, 저 하늘만 바라보는 현실도피적인 영성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믿고 바라보며 기도하는 영성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영성은 이 세상에 절망하고 혐오하는 염세적 영성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키기 원하는 변혁적 영성입니다. 하나님 나라 시민의 영성은 죽음 이후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영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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