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라는 굉장히 중요한 국가적 이벤트를 앞두고 후보들간의 언쟁이나 가십거리가 언론과 대중에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소비되는 상황에서, 얼마전 기윤실은 “20대 대선의 시대정신을 묻는다”라는 취지로 3차례의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무려 ‘시대정신’이라니 어쩌면 ‘아웃오브안중’의 따분한 주제일 수 있겠어요.😕 하지만 정당과 후보자들의 논란에 가리워진 국민과 시대의 요구, 절박한 국가적 과제를 길어 올리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정, 사회통합, 불평등 완화를 주제로 각 영역, 각 담론들에 대해 법학자, 사회학자, 사회복지 전문가의 관점과 제안이 담긴 발제를 듣고, 연구/활동/취재/교육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이모저모를 관찰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는 분들의 논찬으로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모든 패널 분들께서 성실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준비해주셨어요.👏
“대통령 하나 바꾼다고 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기윤실 대선 특별포럼에서 기억이 강하게 남은 말입니다. 우리 사회가 대단히 복잡해졌고, 직면한 문제들이 대부분 고질적이어서 이를 진압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처럼 이 말이 와닿는 대선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대 대선의 시대정신을 묻는 자리에서 대통령 선거의 무용함을 말하는 ‘아이러니’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갈등 해결 역량이 취약한 것, 공천 시스템의 고착화로 국회의원이 사회적 합의라는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보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며 지지층에만 충실한 현실 등에 대한 발제자의 지적에 충분히 공감이 되었습니다. 또한 사회통합에 관해 예를 들어주신 ‘하르츠 개혁’의 위로부터의 결단을 통한 개혁과 ‘몽플뢰르 시나리오’가 보였던 공동체가 함께 의사결정을 해나가는 숙의 민주주의와 같은 방식이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을지, 우리가 지금 삶에서 놓치고 있는 공공선은 무엇이고, 내년 대선에서 우리가 집중해서 봐야 할 공공선을 말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것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지와 같은 논의가 집중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최근 대장동 의혹과 같은 부동산 문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등 구체적인 사례들에서도 우리가 추구해야할 공공성이 무엇이며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접속사를 다시 곱씹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0대 대선의 투표일자는 다가오고,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좋든 싫든 우리가 짊어져야 할 숙명입니다. 모두의 가슴이 꽉 막히는 시절이지만, 끝까지 고민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각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0대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뭐 하나 기대할 것 없는” 선거로 여겨졌습니다. 2021년 가을 초입부터 주요 정당에서는 경선이 한창이었는데, 그 어디에도 정책이나 앞으로의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고민은 눈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선언적인 말들이 난무하고 어린이 반장 선거에서도 하지 않을 유치한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선거‘판’이 펼쳐질 뿐이었습니다.
사실 기윤실이 대선 특별포럼을 추진하는 중에도 제 속의 냉소적 시각에는 큰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3차 포럼 논찬자로, 그것도 어린 학부생 시절 열심히 공부하던 개론서와 교재를 집필하신 학계 원로 두 분의 발제문에 감히 의견을 더해야 하는 자리로 섭외 되었을 때는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후 학계 원로 두 분의 발제자료를 받아 읽고, 논찬 자료를 준비하는 동안 냉소주의가 걷히고 오히려 지금의 대선 정국에 대한 도전의식과 (그냥있으면 안될 것 같은) 위기감 같은 것들이 차올랐습니다. (아직)신진학자에 속하는 저조차도 “그냥 그런 것”이라고 상수처럼 치부 해오던 사회의 불평등의 작동기제, 사회적 약자가 고착화되는 원리에 대해 두 선배 학자는 아직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0월 19일, 3차 대선 특별포럼 현장은 비록 발제자와 논찬자를 포함해 적은 수의 인원이 모여 있었지만, 그 어떤 난상토론 장보다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이야기가 오고 갔다고 생각합니다. 빈곤과 불평등을 우리 앞에 놓인, 바뀌어야 하고 바뀔 수도 있는 ‘문제 혹은 변수’로 두고 현재진행형의 논의를 열정적으로 이어나가는 발제자들과, 현장의 목소리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고민을 그 거시적 시각에 조응하는 울림으로 전달하고자 열변을 토하는 논찬자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청년, 장애인, 여성…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내일을, 다음 세대를 상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현재의 불평등을 고착시키는 정책과 사회제도입니다. 그리고 그 정책의 의사결정은 많은 경우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을 악용하고 거름망 없이 반영하는 잘못된 정치의 산물입니다. 시공간의 감각을 잃어버리고 머릿속에 죽은 지식으로 떠다니던 이 명제를, 이번 기윤실 대선 특별포럼은 ‘시대정신’으로 다시 길어 올리게 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