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사이 학교는 교육의 장이 아닌 사법 분쟁의 장이 되어버렸다. 아주 사소한 학생 간의 갈등도 분쟁의 대상이 되고, 상대방에게 큰 잘못을 행하고도 끝내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를 하지 않고 법적 분쟁을 통해 징계를 약화시키려는 비교육적 상황들이 학교 교육을 무력화시키고 교육적 에너지를 앗아가고 있다. (본문 중)
정병오(오디세이학교 교사, 기윤실 공동대표)
검찰 출신 정순신 변호사가 제2대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하루 만에 임명이 취소되었다. 정 씨의 아들이 고교 시절 저지른 학교 폭력 문제와 이에 대한 정 씨의 대응이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일은 우리 정치와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드러내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교육과 관련된 문제만을 몇 가지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는 비뚤어진 가정교육의 문제다. 정씨 아들의 지속적 폭언은 피해자가 불안과 우울을 겪고 학업을 중단하고 심지어 자살을 시도하게 만들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기본적인 인성을 가진 부모라면, 피해자와 그 부모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을 것이며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한편으로 피해자를 위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또한 자녀를 위한 것임을 상식이 있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부모가 이렇게 수치를 당하면서도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볼 때 자녀의 비뚤어진 인성과 훼손된 도덕성이 약간이라도 회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 씨 부부는 “물리적으로 때린 것이 있으면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겠지만, 언어적 폭력이니 맥락이 중요한 것 같다”고 아들의 가해를 변호했다. 심지어 아들이 피해자에게 조금이라도 공감하려고 하면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막았고, 아들이 진술서를 작성할 때 조금이라도 책임지는 내용을 담지 못하도록 코치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태도가 단지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함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정 씨의 아들이 아빠 직업을 자랑하며 “검사라는 직업은 다 뇌물을 받고 하는 직업이다. 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라는 말을 자주 했음을 볼 때, 부모가 평소 가정에서도 돈과 권력을 위해 불의를 서슴지 않는 가치관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했음을 알 수 있다.
상식과 양심의 관점에서 볼 때 정 씨 부부는 자녀를 괴물로 키우고 있다. 아들이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이렇게 악을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을 교정하지 못한다면, 그가 살아가면서 권력과 지위를 가지는 만큼 주변 사람들을 더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물질 중심적이 되면서 이러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 또 이러한 가치관으로 자녀를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이러한 현상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바꾸려는 노력이 매우 시급해 보인다.
둘째는, 교육을 통한 계급 세습의 문제다. 정 씨 부부가 아들의 학교 폭력에 대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최소한의 사과도 못 하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학교 폭력 징계 기록이 학교 생활기록부에 기록되어 대학 입시에 불이익받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교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이하 폭대위)가 12일 교내 봉사 징계를 내렸을 때도, 학업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민사상 가처분을 통하여 학교 봉사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 교육청 폭대위에서 강제 전학 조치를 내렸을 때도, 법원에 재심 결정 취소 소송을 제기하여 징계 결정을 뒤집으려고 했다. 이렇게 대법원까지 이르는 재판이 진행되는 1년 1개월 동안 피해 학생은 가해자와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더 극심한 고통을 당했지만, 아들의 대학 입시에 눈이 먼 그들에게는 피해 학생이 당하는 고통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대법원 패소로 강제 전학을 가게 되었지만, 정 씨 부부는 100% 수능 반영이라는 정시 전형의 길을 찾았고, 결국 서울대 철학과에 합격을 했다. 아마 정 씨 부부는 아들에게 서울대생이라는 학벌 계급을 물려준 이후 법학전문대학원을 통해 아버지의 후광을 받는 법조인으로서의 권력을 물려줄 것이고, 여기에 부모의 재산까지 물려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안정화되어 가면서 부모의 부와 권력이 자녀에게 세습됨으로 인한 양극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여기에 교육이 중요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교육이 더 이상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계급 세습의 역할을 하는 이 상황은,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떨어뜨리고 젊은 세대에게 절망을 더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사회적 국가적 대책이 시급하다.
셋째는, 사법 분쟁의 장이 되어버린 학교의 문제다. 정 씨 아들은 부모의 영향으로 잘못된 가치관과 불량한 인성을 가지고 악한 행동을 했지만, 교사의 교육을 통한 교정의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폭대위 징계 상황에서 정 씨 부부가 개입하여 자녀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막고, 피해자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책략을 만들어 아들에게 알려 주는 과정을 통해, 가해자는 자신의 악을 정당화하며 더 악해져 갔다. 이 과정에서 학교의 교사들은 어찌하든지 정 씨 아들이 피해 학생의 고통을 공감하도록 교육적 지도를 하려고 했으나 부모의 잘못된 개입이 이를 막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현재 교육부 장관인 이주호 장관은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MB 정부 시절 학교 폭력 사안이 생기면 교사가 개입하지 못 하게 하고 폭대위라는 법적 장치를 통해 해결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엄벌주의 정책을 통해 학교 폭력을 근절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제도를 통해 학교 폭력이 범죄라는 인식이 생겼고 학교 폭력에 대한 온정주의는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 학교는 교육의 장이 아닌 사법 분쟁의 장이 되어버렸다. 아주 사소한 학생 간의 갈등도 분쟁의 대상이 되고, 상대방에게 큰 잘못을 행하고도 끝내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를 하지 않고 법적 분쟁을 통해 징계를 약화시키려는 비교육적 상황들이 학교 교육을 무력화시키고 교육적 에너지를 앗아가고 있다.
학교 폭력은 분명 범죄이고 학교가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거나 교육적 접근을 넘어서는 상황에 대해서는 분명히 사법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아이들 사이에 발생하는 크고 작은 갈등들을 평화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교사와 학교의 역량을 키워가는 일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내 갈등과 폭력에 대해 학교와 교사가 교육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여지와 재량을 넓혀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학교가 성적을 중심으로 한 경쟁 일변도의 교육에서 벗어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 주는 곳이 될 수 있도록, 입시 경쟁 완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 정순신 사태 이후 정부는 일말의 사과도 없이 학교 폭력 근절 대책을 내놓으라고 교육부를 향해 소리를 높이고 있다. 학교 폭력 해결을 오직 엄벌주의와 사법적 처리로만 해결하려 함으로써 학교의 갈등 해결 능력을 무력화시킨 현 장관이 과연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걱정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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