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치매 용어 개선을 향한 움직임이 나타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현재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뇌 기능 손상으로 인한 질병들을 통칭해서 부르기에 ‘치매’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  둘째, ‘치매’라는 단어 자체에 포함된 부정적인 의미 때문이다. 치매라는 용어는 ‘정신이 없어진 것’이라는 어원을 반영하여 의학 용어로는 dementia(디멘시아)가 되었다. 그런데 이 말을 근대화 시기에 일본에서 ‘치매’(癡呆: 어리석다는 의미)라는 한자로 쓰던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해당 한자어를 우리 발음으로 읽어 사용하게 됐다. (본문 중)

신하영(세명대 교양대학 교수)

 

지난 1월, 보건복지부는 ‘치매’1)라는 용어를 개정하기 위한 회의를 열었다. 정부 부처가 주관하는 첫 공식 회의인 ‘치매용어개정협의체’는 치매라는 용어가 질병에 대한 편견을 유발하고 환자 및 가족에게 불필요한 모멸감을 주기도 한다는 지적에 따라 치매 용어를 개정하고 치매에 대한 인식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하여 구성됐다.2) 이후 2차 협의회를 거치면서 현재 ‘인지저하증’과 ‘인지병’이 대체 용어로 거론되고 있다.

 

이제 치매라는 단어를 못 쓴다고? 그렇다면 우리 일상에서 흔하게 보이는 ‘치매 어르신 데이케어 센터’, 혹은 ‘치매 예방 건강 프로그램’은 어떻게 불러야 하나. 어쩌면 용어를 바꾸면서 전 국민이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치매라는 용어도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노망’, ‘망령’과 같은 더 부정적인 용어에서 꾸준한 인식 개선의 결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다. 2008년 당시 “인지 기능의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상태”를 ‘치매’라는 단어로 광범위하게 쓰도록 하는 “치매 인식 개선 및 예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더 심한 혐오와 몰이해가 난무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의 치매 용어 개선을 향한 움직임이 나타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현재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뇌 기능 손상으로 인한 질병들을 통칭해서 부르기에 ‘치매’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의학 용어를 사용한다면 특정 증상들의 집합인 하나의 ‘증후군’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러한 치매라는 임상 증후군을 유발하는 원인 질환은 세분화할 경우 70여 가지에 이른다.

 

둘째, ‘치매’라는 단어 자체에 포함된 부정적인 의미 때문이다. 치매라는 용어는 ‘정신이 없어진 것’이라는 어원을 반영하여 의학 용어로는 dementia(디멘시아)가 되었다. 그런데 이 말을 근대화 시기에 일본에서 ‘치매’(癡呆: 어리석다는 의미)라는 한자로 쓰던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해당 한자어를 우리 발음으로 읽어 사용하게 됐다. 이렇게 보면, “정신이 없어지고 어리석어진 것”이라는 의미가 현재 우리의 용어에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의 용어 개정 움직임의 핵심은 위와 같은 배경에서 최근에는 다양한 원인과 양상의 뇌질환으로 인해 나타나는 공통적인 징후인 인지 기능 저하에 초점을 맞추어 용어를 개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주변국에서는 이와 같은 용어 개정의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3) 인지기능 저하는 누군가의 사고, 질병, 노화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일 뿐 그 사람의 “정신이 없어지거나”, “어리석어진 것”은 아니라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그 명제를 실제 용어에 담고자 하는 노력이다. 최근 국내 한 사회 공헌 재단에서는 치매(Dementia)에 대한 사회적 공감 확산을 위한 연구를 촉진하고자 수억 원의 연구 과제 공모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4)

 

우리가 살아가면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뇌질환은 실로 다양하다. 일본뇌염, 뇌수막염 같은 경우는 언제든 운이 나쁘면 우리 일상에 찾아올 수 있는 질병이다. 가벼운 뇌진탕을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억상실증(기억상실 증후군)은 어떤가. 아침 드라마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이야기의 부족한 개연성과 캐릭터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만능 열쇠가 아니던가. 때로 기억상실증은 낭만적 로맨스를 위한 필수 요소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치매는 그렇지 않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등장하는 서사는 그야말로 눈물바다다. 고두심 배우가 가슴이 아프다며 ‘빨간약’을 시뻘겋게 바르는 장면으로 전 국민을 울렸던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치매는 온 가족을 절망과 회한에 빠뜨린다. “나한테 잘해 주지 마, 나 다 까먹을 거야”의 전설적 대사를 낳은 <내 머릿속 지우개>는 운명적 사랑에 빠진 연인에게 찾아올 수 있는 가장 큰 비극으로 치매를 그린다.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치매의 모습, 그리고 치매로 인한 가족과 주변인의 파탄 나는 생활과 눈물과 절망의 파노라마는 우리로 하여금 치매가 곧 개인 존엄의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공포를 심어 주었다. 치매 예방 보험 상품은 늘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말아야 한다, 멀쩡하게, 곱게 나이 들어야 한다” 등의 광고 문구와 함께 늙어가는 이들의 불안과 공포를 자극한다. 어쩌면 공식적 용어의 채택보다 더 필요한 건 매일 보는 아침 드라마에서 웃기도 울기도 하는 보통의 치매 환자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 분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존엄은 여전하다는 삶의 서사를 보여 주면 된다. 치매에 걸린다고 해도, “정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없어지지 않도록 꼭 지켜야 할 것은 그의 존엄이라는 메시지가 필요한 지금이다.

 

치매 환자인 혜자가 주인공인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마지막 대사는 모든 이들을 위한 생의 찬가일 것이다. 다만 이 글의 마지막에서만큼은 “별거 아닌 하루를 살아도 살 가치가 있는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치매가 걸린 당신을 위해 이 찬가를 꼭 불러보고 싶다.

 

내 삶은 때로는 불행했고 때로는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중략)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1) 이 글은 치매 용어 개정과 관련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용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는 의미로 ‘치매’로 표기하기로 한다.

2) 염정원, “치매 대체 용어 ‘인지저하증’·‘인지병’ 좁혀져”, 「채널A」, 2023. 04. 06.

3)이미 대만과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는 치매라는 용어를 버리고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대만은 2001년 실지증(失智症), 일본은 2004년 인지증(認知症), 홍콩과 중국은 2010년 및 2012년 뇌퇴화증(腦退化症)으로, 미국에서는 주요신경인지장애로 병명을 개정한 바 있다. 정은경, “‘치매’ 용어 개정 통해 인식개선 꾀한다”, 「미디어생활」, 2023. 1. 16.

4) “‘치매(Dementia)에 대한 사회적 공감 확산’을 위한 융복합 연구과제 공모” T&C Foundation 홈페이지 공지사항, 2023.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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