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들의 고된 걸음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권력과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배제되어 기본적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했던 사람들, 세상이 지워버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들 곁에 서기 시작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같은 아픔을 먼저 겪고 있었던 부모님이 가장 먼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손을 잡았다. 자신들의 존재 자체를 숨기고 가두려고 하는 사회와 맞서 싸우던 장애인들이 그들 곁에 섰다. (본문 중)
김지애(「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팀장)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역 좁은 골목에서 압사 사고로 158명이 사망한 참사가 일어났다.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열린 이태원 지역 핼러윈 축제이기에 축제 전부터 언론에서는 찾아오는 이들의 안전을 당부하며 관리, 감독의 필요성을 알리는 보도들을 내보냈다. 10월의 끝, 이태원 좁은 골목들에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릴 것을 모두가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사는 발생했다. 예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 관리는 부재했고, 참사가 발생한 후에도 소방차의 진입이 늦어질 만큼 넘치는 사람들을 관리해 줄 경찰은 어디에도 없었다. 강물이 범람하듯 밀려오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가게 문을 열어준 주변 상인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길에 선 채로 죽음을 당했을지…. 더 이상은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일이다.
참사 이후 정부는 곧바로 7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한다. 유가족을 향한 지원과 참사 이후 고통받는 생존자들을 책임지겠다고 말했던 정부는 158명의 참사 희생자의 장례를 마치자마자 유가족과 생존자를 외면했다. 정부를 믿고 참사의 원인을 밝혀 주기를 기다리던 유가족들에게 어떤 정보도 공유되지 않았고, 10월 29일의 참사가 점점 잊히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결국 159번째 희생자가 발생하고 난 뒤에야 유가족들은 언론의 기사를 따라 곳곳의 장례식장을 돌아다니며 서로를 찾았고, 참사 47일째가 되어서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로 모일 수 있었다.
유가족들은 참사 발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각자가 가지고 있던 의문들을 털어놓았다. 모두가 같은 수많은 의문들을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했다. ‘왜 희생자들의 스마트워치는 잘려져 있었나?’, ‘왜 가족들의 동의 없이 검시를 했는가?’, ‘왜 다른 유가족의 연락처를 공유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하였나?’, ‘왜 희생자를 연고도 없는 장례식장으로 이송하였나?’, ‘왜 참사 당일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은 한 명도 없었나?’, ‘왜 최초 신고자의 신고는 무시되었나?’ 등등. 결국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많은 이들이 예견한 이 참사가 왜 발생했는가?’, ‘왜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가?’라는 당연한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유가족들은 같은 아픔을 가진 서로를 의지하며 200일이 넘은 이 시간을 견디며 진실을 향한 걸음을 걸었다.
그런데 유가족들의 고된 걸음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권력과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배제되어 기본적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했던 사람들, 세상이 지워버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들 곁에 서기 시작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같은 아픔을 먼저 겪고 있었던 부모님이 가장 먼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손을 잡았다. 자신들의 존재 자체를 숨기고 가두려고 하는 사회와 맞서 싸우던 장애인들이 그들 곁에 섰다. 혐오와 차별 때문에 존재를 지움 당하는 위협에 처한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계속 증명해야 하며 늘 차별과 맞서 싸워야 하는 여성들이, 자본의 논리에 따른 재개발로 힘없이 삶의 자리를 빼앗긴 시민들과 소상인들이, 인간 편의를 핑계로 파괴당하는 환경을 지키는 사람들이 그 가족들 곁에 섰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와 이 고된 걸음을 함께 걷는 사람들은 모두 이 사회에서 지워지는 목소리를 되찾으려 애쓰며 늘 서로의 곁에 머무는 사람들이었다.
유가족들과 함께하며 나는 알게 되었다. 참사의 진실을 알려달라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외침은 단순히 이미 떠난 내 가족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것도, 충분한 위로와 보상을 요구하려는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그들은 더 이상 국가의 부재로 생명을 잃어버리지 않을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이 참사를 기억하고 또 기억해서 더는 누군가가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먼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들이 적어도 계속해서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당연한 요구였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재개발 지역 상인과 시민, 환경을 지키고자 행동하는 사람들의 외침도 다르지 않다. 땅이든 바다이든 어디에서든 국민의 안전을 지켜 줄 나라, 참사에 스스로를 위로할 힘도 남아있지 않은 유가족들이 길거리에 나와 호소하지 않아도 되는 국가를 만들라는 요구,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같은 세상을 경험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에게도 비장애인이 당연히 가지고 누리는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요구,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누군가로부터 혐오 당하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 차별에 맞서 싸우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 자본이 권력이 되어 누군가의 오랜 삶의 터전을 함부로 파괴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 소수의 편의를 위해 함부로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다. 그러니 결국 모두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두가 평안하게, 안전하게 늙어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다.
나는 안전하게 늙어 평안히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나와 함께 숨 쉬고 살고 있는 모든 존재가 그러하길 바란다. 모두가 서로 연결된 이 사회에서 혼자만 평안할 수는 없다. 오히려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존재의 평안을 위해 나아가는 일이 나의 평안을 추구하는 길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차별과 배제, 혐오를 받고 권력에 짓눌리던 고난받는 이들 곁에 머무셨다. 그들에게 당신의 평안을 선물하고자 하셨다. 부활하신 주님은 로마 제국 권력의 중심으로 가시지 않고 다시 그 갈릴리의 작은 동네로 소외된 이들 곁으로 돌아오셨다. 그리고 당신의 평안을 잘 받았느냐고, 이제 그 평안을 선물하는 일에 나서지 않겠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머무는 자리에서 그 평안을 선물 받았다. 서로 귀 기울이고 이해하고 서로를 품고 함께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발견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길에서 그들과 동행하고 싶다. 이 길의 끝에는 예수님이 진정한 평안을 예비하고 기다리신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존재하는 모두가 안전하게 평안하게 늙어가는 세상을 계속 꿈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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