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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아동권리협약에는 아동이 태어난 뒤 출생 등록을 받을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우리가 이 협약을 비준한 지 벌써 33년이 지났지만 관련 제도를 개선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 안에서 아동들의 인권이 얼마나 보호받아 왔는지, 특히 이 땅에 태어난 미등록 아동들의 인권은 어느 정도 보호받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본문 중)
은희곤(목사, 미등록아동지원센터 대표)
미국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주민들의 사회다. 필자는 미국에서 20년을 이주민으로 살고 3년 전 귀국했다. 그러기에 한국에 귀국해서 이주민이라는 단어와 문화가 그리 낯설지 않았다. 한국도 이미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들어섰다. 현재 농촌이나 생산 공장 그리고 소위 3D 업종들에서 이들 이주민들은 이미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는 아직도 이주민들에 대한 배타적인 정서와 거부감이 많다. 그 이유로는 불법 체류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작용한다.
불법 체류자는 말 그대로 불법으로 체류하는 사람들인데 성인들은 본인들의 선택이므로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본인들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불법 체류자가 된 그들의 자녀들도 있다.1)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있지만 없는 아이들”처럼 대접받고 있다. 이들은 불법 체류자인 부모도, 그들이 살고 있는 한국 사회도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이런 아이들이 대략 5,000명 정도일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현장의 소리는 다르다. 대략 4만 명 전후라고 말한다. ‘미등록 아동’은 말 그대로 ‘미등록’이기에 정확한 통계가 나올 수 없지만, 불법 체류자의 10%를 이와 같은 자녀들로 추정하여 나오는 추정치다.2) 그 수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아이들은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가장 기본적인, 신분 확인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가가 관련 법률을 만들고 행정 관리를 해야만 한다. 이것을 촉구하고 이 아이들을 구제할 법률안 제정을 위하여 필자는 2023년에 ‘사단법인 미등록아동지원센터’를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사업으로, 2024년 9월 27일, 국회에서 “외국인 (미등록)아동 출생 등록 등에 관한 법률안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2024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국내 미등록 아동 출생 등록’을 ‘외국인 미등록 아동 출생 등록’으로 넓혀 가자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들에게 국적을 주자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외국인 미등록 아동들에게 국적과 영주권을 주자는 것은 아니다. 이 땅에 태어난 아이들이 이 땅에 머무는 동안 합법적으로 살 수 있는 체류 자격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그리고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어 사회 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 운동’이다. 이는 여야 간의 정쟁 사안이 아니기에 여야가 함께 생산적 협치를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현재 여당인 주호영 의원(국회 부의장), 조배숙 의원(법사위), 야당인 박홍근 의원(전 원내대표), 이강일 의원 등등이 함께 하기로 했고 박상철 처장(국회입법조사처)도 적극 협력하기로 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전망이 밝다. 앞으로 법안이 거쳐야 하는 상임위(법사위), 소위(법안 심사), 본회의 등등 모든 단계와 과정마다 여야 간사, 국회의원 및 전문 위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초당적인 지지를 기대한다.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 사람들을 골목골목마다 만나기를 기도한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로는, 이미 미등록 아동으로 출생하여 살고 있는 18세 미만의 아동들, 그리고 18세 이상이 되어 사회에 진출해 있는 이들을 위한 법률안 제정도 준비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1991년 9월 17일, 제46차 유엔 총회에서 유엔 가입국이 되었고, 2개월 후인 1991년 11월 20일,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는 아동이 태어난 뒤 출생 등록을 받을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우리가 이 협약을 비준한 지 벌써 33년이 지났지만 관련 제도를 개선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 안에서 아동들의 인권이 얼마나 보호받아 왔는지, 특히 이 땅에 태어난 미등록 아동들의 인권은 어느 정도 보호받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영국과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선 국적에 상관없이 태어난 아동의 출생 신고를 허용하고 있다. 또한, 유엔은 2030년까지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의 17개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 16번째 목표인 “평화, 정의, 제도”의 세부 목표(16.9)로서 “2030년까지 출생 등록 포함, 모든 사람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우리도 이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이제 대한민국은 달라진 국가 위상에 걸맞게, 국제사회의 발걸음에 동참하면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외국인(미등록)아동출생등록법안”이 되기를 희망한다.
특히, 교회들이 이를 위해 먼저 나서야 한다. 사회는 물론이고 교회에서도 이러한 미등록 아동들의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먼저 일단 이러한 미등록 아동들,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 존재함을 알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존중함, 피조물의 소중함, 생명의 존귀함,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돌봄의 실천 등 하나님 나라 가치의 확산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숙고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신앙 고백적 가치들의 공감대가 교회와 지역 사회에 확산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설교, 성경 공부, 공적 예배와 기도, 세미나, 교회 로비에 관련 전시, 각종 홍보물과 책자를 통해 이 문제를 소개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인식의 전환을 위한 운동과 함께 구체적으로 변화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다. 교회들은 우리 센터와 협력하여 ‘미등록아동출생등록법안 지지 서명 운동’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취합하여 국회와 해당 상임위에 보내질 것이다. 미등록 아동들을 위한 입법을 위해 활동하는 우리 단체 ‘사단법인 미등록아동지원센터’를 비롯한 사회단체들을 후원하는 것도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중심이 되어야 할 일은 ‘기도 운동’이다. 우리들은 이 일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에 이어지는 행동을 해야 한다.
우리들의 과제는 이들 “있지만 없는 아이들”인 미등록 아동들이 우리 사회의 양지로 나올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고, 그들도 우리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이 되고 대한민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도 하나님 사랑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되도록 이끌며, 더 나아가 이들이 장차 자신의 동족과 모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될 기회도 제공해야 한다.
많은 나라가 다문화, 다민족 사회로 변화되어 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며, 이제는 이 상황을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와 교회도 단순히 배타적이 되기보다는, 이 상황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하며, 한국 사회 발전과 교회 선교의 원동력으로 변화시키는 긍정적인 대처와 미래 지향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1) 은유, 『있지만 없는 아이들: 미등록 이주 아동 이야기』(창비, 2021).
2) 법무부 통계로 2023년 기준 체류 외국인은 2,507,584명이며 불법 체류자는 423,675명이다.
※ 사단법인 미등록아동지원센터를 방문하여 더 자세한 자료들을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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