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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힘이 들 때보다 외롭다고 느낄 때 무너지기 더 쉽습니다. ‘혼자서 읽기 어렵다면, 우리 같이 읽어보자’는 취지로 작가 기록단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함께 읽는 자리를 전국 곳곳에서 만들어갔습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의 활동을 ‘기록’이 아닌 ‘기록 활동’이라고 명명하게 됐습니다. 구술자와 기록자가 대화하고, 그 이야기가 또 사회로 흘러 ‘사회적 대화’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기록 활동입니다. (본문 중)
박희정1)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곁에 서다
저는 ‘인권 기록 활동가’라는 낯선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입니다. 간략히는 ‘기록을 통해 인권 활동을 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일을 시작한 건 2013년 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가 대안 언론에서 10여 년간 활동하다가 조직을 나온 뒤 홀로 시간을 보낼 때였습니다. 저와 성은 다르지만 같은 이름을 쓰는 한 작가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경남 밀양에서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같이 기록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지요. 앞뒤 재지 않고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밀양 주민들이 얼마나 절박한 싸움을 하고 있는지는 익히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으니까요. 멀리서 발만 동동 구르는 것보다 현장에 가서 뭐라도 하는 게 제 마음 건강에는 더 낫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깨달은 터라, 밀양에 갈 기회가 주어진 게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을 경청하고 그것을 함께 이야기로 만드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밀양을 살다』(오월의봄, 2014)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책은 ‘한 사건’을 이해하는데 ‘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제게 알려 주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펼쳐지는 사건 속에는 늘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국가가 사용하는 건조한 행정의 언어는 그 정책의 대상인 ‘인간’을 곧잘 지워버립니다. 정책이 실제 사람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쉽게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반면에, 그 정책에 맞서는 이들의 존재는 쉽게 도드라지지요. 정부와 언론이 송전탑 건설에 저항하는 밀양 주민들을 ‘지역 이기주의’라는 프레임에 가둘 때, 대중은 마치 이 사건을 둘러싼 모든 진실을 다 알게 된 사람처럼 주민들을 손가락질했습니다.
그야말로 가진 거라고는 몸밖에 없을 고령의 여성 농민들이 그 몸 하나로 공권력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도, 저 사람들이 왜 저러는지를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은 전기 안 쓰나? 전기는 쓰면서 송전탑은 싫다니 이기적이다! 보상금 많이 타내려고 저러는 거 아닌가.’ 이미 분명히 나름의 답을 정한 사람들은 절대 질문하지 않습니다. 밀양의 주민들은 이와 다르게, 자신에게 닥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민들은 물었습니다. 어째서 세상은 땅을 돈이라는 가치로만 평가하는가. 억만금을 줘도 내어줄 수 없는 땅도 있다는 걸 왜 모르는가. 땅이 재산을 넘어 삶의 한 부분일 수도 있음을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 고개를 들어 이 복잡한 세상을 살피기 시작한 주민들은 깨닫고 맙니다. 내 머리 위를 가로지를 송전선로 한쪽 끝에는 값싼 전기로 이윤을 내는 대기업과 전기에 중독된 대도시의 삶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핵발전소와 그 발전소를 지어 이윤을 내는 산업이 존재한다는 걸. 주민들은 세상을 향해 질문하면서 이 세상의 정의롭지 못한 구조를 파악하고 그것에 맞서 싸울 지혜와 용기를 벼려 냈습니다. 이들의 삶에 말을 걸고 함께 ‘우리의 이야기’를 써나간 경험은 몹시 특별했고, 저에게 새로운 감각을 일깨웠습니다. 낯설고 어려워 진땀을 한참 흘렸지만, 이 ‘목소리들’을 따라가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공교롭게 그즈음 세월호 참사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기록이란 무엇인가
『밀양을 살다』를 통해 연결된 인권 활동가 네트워크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기록할 사람들을 모은다는 연락을 받고, 4·16 세월호 참사 작가 기록단의 일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게 2014년 6월입니다. 국회에서 단식 농성 중인 유가족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처음 길을 나섰던 때의 감정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국회 본청 앞 돌계단이 어찌 그리 크고 높게만 보이던지, 계단 가장 아래 칸에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겨우 용기 내어 계단을 한 걸음씩 올라 가족들에게 다가간 후 기록은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들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은 선의를 가지고 찾아온 사람도 쉽게 믿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지요. 국가로부터 사찰을 당하고, 언론과 정치인에게 상처 입고, 돕겠다며 찾아와 이상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들에게 시달린 경험이 부지기수였으니까요. 작가 기록단은 초여름부터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까지 가족들의 곁에서 묵묵히 함께 싸웠습니다. 서로 신뢰가 형성되고 조금씩 이야기가 모이면서 탄생한 책이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 2015)입니다. 그런데 참사 1주기에 이 책을 펴내고 작가 기록단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책을 샀다는 시민들은 많은데 읽었다는 이야기를 듣기 어려웠습니다. “슬퍼서 차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는 말을 들으며 기록의 의미란 무엇인가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기록이란 지금의 일을 잘 남겨두는 일에 국한된다고 볼 수 없습니다. 기록이란 무엇보다 동시대를 위한 일이어야 합니다. 인권 활동가들이 세월호 참사 피해자를 비롯해 심각한 인권 침해를 겪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인권이란 부재를 통해 그 존재를 드러낸다고 합니다. 침해당했을 때야 그것이 보장되어야 할 소중한 권리라는 걸 인식하게 된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니 인권 침해를 고발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우리가 더불어 사는 사회,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사회를 지향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가장 소중한 목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깊이 듣다 보면, 지금 발 딛고 이 사회에 대한 우리의 이해력이 확장됩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단지 우리 사회에 관한 지식을 확장하는 일에서 그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치유와 회복을 모색하는 일입니다.
재난으로 가장 소중한 이를 상실한 이들에게 치유와 회복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미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순 없습니다. 이 상실은 현생에서 회복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상실임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임을 인정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우리 사회가 그 무게를 온전히 느끼려고 애쓰는 데에서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생겨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책임을 마땅히 지겠다고 나선 공동체라면, 피해자의 말에서부터 치유와 회복의 길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재난 피해자를 기록하는 인권 활동가들이 바라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연결된 존재임을 알려주는 기록 활동
작가 기록단은 슬퍼서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는 시민들에게 질문을 건넸습니다. 왜 당신을 이 책을 읽지 못했습니까? 그 물음으로 알게 된 것은, 시민들의 ‘외로움’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무렵 정부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받게 될 배·보상 액수를 부풀려 홍보했고, 시민들에게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지겹다, 그만큼 받았으면 됐지 뭘 더 바라나. 이런 말들을 내가 모르는 이들이 아니라 내 친구와 가족과 직장 동료들이 하기 시작하자, 시민들은 그래도 내가 믿고 있던 세계가 흔들리는 감정을 느꼈던 겁니다. 두려웠을 겁니다.
사람은 힘이 들 때보다 외롭다고 느낄 때 무너지기 더 쉽습니다. ‘혼자서 읽기 어렵다면, 우리 같이 읽어보자’는 취지로 작가 기록단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함께 읽는 자리를 전국 곳곳에서 만들어갔습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의 활동을 ‘기록’이 아닌 ‘기록 활동’이라고 명명하게 됐습니다. 구술자와 기록자가 대화하고, 그 이야기가 또 사회로 흘러 ‘사회적 대화’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기록 활동입니다. 사회적 대화란 이 참사에 대한 사회의 지배적 서사를 무엇으로 만들 것인지를 둔 ‘기억 투쟁’이기도 합니다.
‘기록 활동’이라고만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인권 기록 활동’이라고 명명한 것은 인권의 관점과 가치에 기반을 둔 활동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기록의 내용과 표현만 인권적인 게 아니라, 기록의 과정 자체도 인권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활동의 주요 원칙 중 하나입니다. 구술자와 기록자가 서로 평등한 관계로 만날 수 있도록 수없이 고민하고 대화하며 균형을 찾으려 애씁니다.
또한 이 활동에서 빚어지는 모든 언어가 이 관계 맺음 속에서만 길어 올리는 것임을 이해하고, 이 경험과 언어를 다른 현장으로 확산하는 노력도 기울입니다. 이러한 활동을 재생산하고 확산하고자 2019년 인권기록센터 사이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인권기록센터 사이는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후, 이듬해 봄 전국 활동가를 대상으로 기록 학교를 열고 10‧29 이태원 참사 작가 기록단을 구성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 작가 기록단은 지난해 1주기에 청년 피해자와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창비)에 이어 올해 2주기에 부모 세대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담은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창비)를 펴냈습니다.
재난 기록 현장은 척박하고 기록 활동가를 재생산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여러 현장에서 ‘기록 활동가’라는 말의 쓰임이 늘어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공익 활동으로서의 기록 활동을 고민하는 이들이 컨퍼런스를 가진 자리에도 최근에 다녀왔습니다. 이런 활동이 그래도 조금씩 늘어나는가 싶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기록 활동가로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어떻게 하면 인터뷰를 잘 할 수 있는가?’입니다. 타인의 말을 잘 묻는 법을 묻는 것입니다. 10년의 경험을 통해 요즘 내린 답은 이것입니다. 말은 이해하는 만큼 들립니다. 그러니 서로 관계를 잘 형성해야 합니다. 또한 세상을 깊이 공부하고 늘 내가 모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품어야 합니다. 그렇게 서로에게 다가갈 때, 기록은 우리가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진실을 차근차근 알려 줄 것입니다.
1) 인권기록센터 사이 기록 활동가, 4·16 세월호 참사 작가 기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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