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2-3회 발행되는 <좋은나무>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무료),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
미국이 정교분리 세속 국가인지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이런 변화는 복음주의와 공화당의 결합에서 비롯되었다. 공립학교에서 기도를 허용하면 특정 종교인은 좋을지 몰라도 무종교인 혹은 다른 종교인의 권리를 침해한다. 보조금이나 세금 공제 조치에 종교 단체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면 이익을 보는 것은 납세자 일반이 아니라 특정 종교 단체다.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특정 종교인, 특정 종교단체는 대부분 복음주의 개신교다. (본문 중)
유정훈(변호사)
팀 앨버타 / 『나라, 권력, 영광』 / 이은진 옮김
비아토르 / 2024년 10월 15일 / 724쪽 / 38,000원
저자 팀 앨버타는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 기자로 일하면서 2019년 『미국 대학살: 공화당 내전의 최전선과 트럼프의 부상』이라는 책을 낸다. 트럼프의 취임사 중 “미국 대학살”(American Carnage)이라는 표현에서 제목을 가져와, 트럼프주의에 점령당한 공화당의 현실을 비판했다.
출간한 책이 한창 주목을 받던 2019년 7월 29일, 그는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교외 브라이튼에 있는 집으로 향한다. 그의 아버지는 복음주의 교회 목사였다. 뉴욕의 금융계에서 일하던 아버지, 언론계에 종사하던 어머니는 소위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된 후 잘나가던 직업을 버리고 개척교회 목사가 되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집으로 온 팀 앨버타는 충격적 경험을 한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교회 어른들,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구들이 트럼프를 비판하는 책을 낸 자신을 말 그대로 ‘사탄’ 취급하는 것이다.
그 체험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미시간주의 중상층 백인이 주로 거주하는 소도시에서 자라 주류 매체에 진입한 스타 언론인, 회심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교회에 일생을 바친 목사의 아들, 집과 교회의 구분이 없었던 어린 시절,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개신교 신자, 이 모든 것이 인간 팀 앨버타를 구성했다. 이 주제를 다루기에 완벽한 배경을 가진 저자가 복음주의 개신교의 정치 편향과 권력 중독을 탐구했다. 언론인으로서 남의 일을 분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고 자란 교회” 이야기를 썼다.
하지만 이 책은 개인의 체험을 넘어 미국의 보편적 문제를 다룬다. 교회 이야기지만 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정치 이야기다.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복음주의 개신교’를 피해 갈 수는 없다. 미국 유권자를 인종과 종교의 조합을 기준으로 분석하면, 백인과 복음주의 개신교 조합의 공화당 편향이 가장 극명하다.
1976년 대선에서 개신교인의 표는 민주·공화 양당으로 나뉘었고 독실한 신자인 카터를 지지한 복음주의 유권자도 많았다. 하지만 1980년 대선에서 레이건의 승리를 계기로 공화당과 복음주의 개신교는 밀착했다. 공화당은 선거 승리와 부유층에 유리한 경제 정책의 지속을 위해 사회·문화적 보수 이슈에 호소하여 중·하층 유권자의 지지를 동원하는 전략을 취하는데, 그 주된 대상 중의 하나가 복음주의 개신교다. 복음주의 개신교는 지지에 대한 대가로 자신들의 보수적 가치관에 어긋나는 정책을 막는 것은 물론 실질적 혜택까지 얻어냈다.
한국 주류 교회는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믿고 싶어 한다. 미국이 다른 서방 국가에 비해 기독교의 영향이 보편적인 것은 사실이나, 미국은 정교분리를 헌법에 명시하고 세속 국가를 지향했다.
연방대법원은 1962년 공립학교의 기도를 위헌으로 판결했고, 2000년에는 풋볼 경기 전에 학생들이 참여하는 기도를 위헌으로 선언했다. 하지만 2022년에는 공립학교 풋볼 코치가 경기 후 학생들을 모아 놓고 기도한 것을 합헌으로 판단했다. 과거에는 주 정부가 장학제도에서 신학생을 제외한 조치는 정교분리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최근에는 정부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에서 종교 단체를 제외하면 종교의 자유 침해로 위헌이라는 판결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이 정교분리 세속 국가인지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이런 변화는 복음주의와 공화당의 결합에서 비롯되었다. 공립학교에서 기도를 허용하면 특정 종교인은 좋을지 몰라도 무종교인 혹은 다른 종교인의 권리를 침해한다. 보조금이나 세금 공제 조치에 종교 단체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면 이익을 보는 것은 납세자 일반이 아니라 특정 종교 단체다.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특정 종교인, 특정 종교단체는 대부분 복음주의 개신교다.
최근 공화당과 복음주의 개신교의 관계는 표와 혜택의 거래를 넘어 신앙적 정당화라는 강력한 프레임으로 진화하고 있다. 복음주의 개신교의 정치 개입을 연구한 사례는 많지만, 이 책은 최근의 진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 독특한 가치가 있다.
트럼프의 약자 차별 발언이나 성 추문에도 불구하고,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그를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달성하기 위한 불완전한 도구’라 생각한다. 마치 간음죄 그리고 이를 덮기 위한 살인죄를 범했지만 왕위를 잃지 않은 다윗처럼.
트럼프의 정치적 행동과 문제점을 정당화하는 종교적 서사를 정확하게 간파한 것은 저자가 언론인이라는 외부자이면서 목사 아들이라는 내부자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이 책은 복음주의자들이 공화당 이어서 트럼프와 손을 잡으면서 어떻게 신앙의 원칙을 타협하게 되었는지, 이로 인해 교회 내에 어떤 갈등과 분열이 발생했는지 세심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정치와 종교의 밀착이 가져오는 딜레마가 어떻게 교회의 도덕적 붕괴로 이어지고 교회 공동체와 사회 일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지 낱낱이 분석한다.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은 미국의 문제만이 아니라 바로 한국의 현실이다. 한국 교회가 미국 복음주의의 지대한 영향력 아래 있다는 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10‧27 집회에서 어떤 말이 나왔는지, 12‧3 내란 사태 이후 첫 주일에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면 기도가 지도자의 실수를 덮어 버리고 지도자의 부족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며 윤석열을 사실상 옹호하는 발언을 한 설교자의 사례를 보라. 남의 일이 아니다.
책의 제목은 주기도문에 나오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에서 따왔다. 역자와 출판사가 어떤 의도로 살짝 다르게 『나라, 권력, 영광』으로 번역판 제목을 정했는지는 모르겠다. 그 묘한 이질감이 이 책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탐하며 극우 정치, 그리고 특정 정치인에게 스스로를 위탁한 복음주의 개신교, 남들은 다 아는데 본인들만 모르는 부끄러운 현실이 주는 불편함이 읽는 내내 떠나지 않지만, 다른 한편 나라, 권력, 영광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 <좋은나무> 글을 다른 매체에 게시하시려면 저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02-794-6200)으로 연락해 주세요.
* 게시하실 때는 다음과 같이 표기하셔야합니다.
(예시) 이 글은 기윤실 <좋은나무>의 기사를 허락을 받고 전재한 것입니다. https://cemk.org/26627/ (전재 글의 글의 주소 표시)
<좋은나무>글이 유익하셨나요?
발간되는 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