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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재선은 매킨리의 재림인가?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두고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은 윌리엄 매킨리(W. Mckinley, 1897-1901 재임)다. 지난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매킨리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었다”며, 북미 대륙 최고봉인 알래스카주 디날리산의 명칭을 매킨리산(Mt. Mckinley)으로 변경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다. 이에 언론과 많은 전문가들은 제25대 미국 대통령이었던 매킨리를 재조명하고 있다. (본문 중)

박민중(국제정치 칼럼니스트)

 

트럼프의 재선은 매킨리의 재림인가?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두고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은 윌리엄 매킨리(W. Mckinley, 1897-1901 재임)다. 지난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매킨리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었다”며, 북미 대륙 최고봉인 알래스카주 디날리산의 명칭을 매킨리산(Mt. Mckinley)으로 변경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다. 이에 언론과 많은 전문가들은 제25대 미국 대통령이었던 매킨리를 재조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 국내 정치는 물론 국제 질서를 혼돈으로 몰고 가고 있는 트럼프가 언급한 매킨리는 누구이며, 트럼프는 왜 그를 언급한 것일까?

 

<사진 1> 지난 2월 12일, CNN은 ‘관세 왕이자 트럼프의 우상이었던 윌리엄 매킨리에 대한 진실’이라는 기사를 보도한다. (출처: CNN)

 

매킨리와 관세

 

지난 2월 12일, 미국의 CNN은 매킨리를 두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하나는 ‘관세 왕’(tariff king)이고, 다른 하나는 ‘트럼프의 우상’(Trump’s idol)이다. 기사의 핵심은 매킨리의 대표 정책은 고관세 정책이며,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외치며 자유 무역에서 보호 무역으로 확실한 정책적 변경을 꾀하고 있는 트럼프에게 매킨리는 우상이라는 것이다.

 

1843년 1월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난 매킨리 대통령은 1860년대 남북전쟁에 북부군으로 자원입대해 보급병으로 복무했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뉴욕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7년 동안 지방 검사로 근무한 뒤, 공화당에 입당해 연방 의회에 진출하는 데 성공한다. 1890년, 매킨리 하원 의원은 평균 수입 관세를 38%에서 무려 49.5%로 상향하는 법안을 주도해 통과시켰다. 이때부터 그는 ‘보호주의의 나폴레옹’으로 불리며 유력 정치인이 된다. 결국 그는 1896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소속으로 승리하고, 1900년 재선까지 성공하며 새로운 20세기 미국의 첫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재선 이듬해인 1901년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하며 생을 마감한다.

 

<사진 2> 1897년 3월 4일, 대통령 당선자인 매킨리가 워싱턴에서 대통령 서약을 하고 있다. (출처: POLITICO)

 

1890년 관세를 무려 49.5%까지 올린 매킨리에 대한 CNN의 ‘관세 왕’이라는 평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매킨리가 정치하던 당시 미국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매킨리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 미국의 정치적 상황은 1894년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landslide)을 거두며 상·하원을 장악했다. 이 중간 선거로 민주당의 하원 의석 점유율은 61%에서 29%로 급락했다. 매킨리 대통령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 매우 유리한 상황에서 1896년 대선을 승리한 것이다. 이에 당시 매킨리 대통령은 자신의 대표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관세를 고수하거나 오히려 더 높일 수 있었다.

 

또한, 매킨리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 미국은 1873년 이후 지속적인 경기 침체를 겪고 있었다. 이 시기에 남부 지역의 대표적인 농산품인 밀과 면화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농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동시에 전기, 석유, 철강 등을 중심으로 한 소위 2차 산업혁명으로 과잉 생산이 가능해지며 경기 침체 현상은 오히려 고착되었다. 미국의 실업률이 당시의 경기 침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1892년 4%이던 실업률이 1893년 9.6%, 1894년 16.7%까지 치솟았고, 매킨리 행정부가 들어서고 1899년이 되어서야 7.7%로 떨어졌다.

 

이에 일반인들은 물론 언론들도 매킨리 행정부가 고관세 정책을 펼치며 오랜 경제 침체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매킨리 대통령이 경제 침체를 벗어난 것은 고관세 정책을 고수하지 않고 오히려 저관세 정책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관세 왕’으로 불리는 매킨리가 저관세 정책으로 미국 경제를 회복했다는 점이 다소 의아스럽다. 180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미국은 2차 산업혁명으로 생산되는 물품을 판매할 해외 시장이 필요했다. 실제 미국 내부적으로 경기 침체를 회복하고 노동자들의 이익을 확보하는 방안은 고관세 정책으로 국내 시장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 저관세 정책으로 원자재를 저렴하게 확보하고 이를 재생산해 해외 시장에 판매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선순환이 일어나야 노동자들의 완전 고용이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실제 더글러스 어윈(Irwin) 다트머스 대학교 경제학 교수는 19세기 말을 팽창의 시기로 정의하며, 당시 세금은 미국의 경제 성장에 큰 영향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보다 앞서 언급한 전기, 철도 등의 발전이 산업화를 촉진했으며, 이와 함께 자유로운 이민으로 인한 저렴한 노동력의 유입이 중요한 요소였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는 매킨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자유무역 정책으로 선회했다고 밝힌다. 결국, 매킨리는 ‘관세 왕’으로 평가하는 것은 반은 틀린 것이며, 트럼프가 관세 때문에 매킨리를 소환한다는 주장 또한 반만 맞는 것이다.

 

매킨리와 영토

 

트럼프가 재집권하며 굳이 잊혀있던 매킨리를 언급한 또 다른 이유, 궁극적인 이유는 트럼프가 생각하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그 MAGA는 매킨리 시절 미국이 확보한 영토 확장과 연결된다.

 

미국의 외교는 1896년 미국 연방 선거를 기점으로 전환점을 맞이한다. 1897년 취임한 윌리엄 매킨리와 이후 시어도어 루스벨트, 하워드 태프트 이 3명의 공화당 출신 대통령은 19세기까지 북미 대륙 안에서의 영토 확장과 지역 패권을 구축하던 미국 외교를 대서양과 태평양을 아우르는 외교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19세기를 마무리하고 20세기를 맞이하는 시점에 미국은 북미 대륙의 강자를 넘어 세계 패권국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점이 바로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3>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플로리다 탐파(Tampa)의 러프 라이더 캠프(Rough Riders’ camp) 모습이다. (출처: State Library and Archives of Florida)

 

1896년 매킨리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에서 하와이 병합, 해군력 증강, 니카라과 운하의 건설, 서인도제도에 해군 기지 설치 등을 공략으로 내세우며 당선된다. 이후 1898년 당시 패권 국가 중 하나인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1898년 12월 10일 파리조약을 체결한다. 이 조약에서 스페인은 미국으로부터 2,000만 달러를 받고 필리핀을 미국에 양도하기로 하였으며, 쿠바에 대한 영유권도 포기한다. 동시에 푸에르토리코와 괌 또한 미국에 양도하기에 이른다. 미국은 쿠바와 푸에르토리코에서 스페인을 몰아내며 북미 대륙에서 유럽의 영향력을 확실하게 제거했고, 하와이, 괌 그리고 필리핀을 병합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주 대륙을 넘어 태평양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트럼프와 MAGA

 

1776년 독립하며 세계 정치사에 등장한 미국의 18-19세기는 영토 확장의 세기다. 시카고대학의 석좌 교수인 브루스 커밍스(B. Cumings)는 초기 미국이 쉽게 얻은 다섯 개의 조각으로 지금의 미국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다섯 개의 조각은 초기 13개의 식민지로 출발한 미국, 프랑스로부터 얻은 루이지애나, 텍사스, 태평양 북서쪽, 그리고 러시아로부터 얻은 알래스카다.

 

<사진 4> 19세기 초, 미국이 프랑스 정부로부터 루이지애나를 매입할 당시의 지도다. 왼쪽은 이를 주도한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이다. (출처: KnowUSA)

 

특히 이 가운데 루이지애나와 알래스카 매입은 지금의 미국을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다. 먼저, 1803년 토마스 제퍼슨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루이지애나를 매입한다. 위 지도와 같이 당시 1,500만 달러에 확보한 루이지애나의 크기는 미국 본토의 약 1/3에 해당한다. 이러한 영토 확장은 당시 세계 패권국이었던 프랑스를 아메리카 대륙에서 효과적으로 제거한 것으로, 미국인들은 유럽 열강으로부터 미국의 자유를 확보한 것으로 인식했다. 이는 동시에 앵글로-색슨이 자유와 번영을 미 대륙과 전 세계에 전파하는 데 탁월한 역할을 한다는 미국 개신교의 선민의식과도 연결되었다. 다음으로, 1867년 앤드루 존슨은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한다. 720만 달러에 알래스카를 매입하며 미국은 북태평양 연안 북방 영토까지 확보하게 된다. 즉, 1803년의 루이지애나 매입이 미국 본토 확장을 통해 서부 지역으로의 본격적인 확장이었다면, 1867년의 알래스카 매입은 미국 본토를 넘어 태평양으로의 확장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그리고 1898년 매킨리 대통령이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확보한 쿠바, 푸에르토리코, 괌, 하와이 그리고 필리핀은 미국 영토 확장의 마침표가 되었다. 19세기 초·중반 루이지애나와 알래스카를 획득한 방법이 ‘매입’이었다면, 19세기 후반의 영토 획득은 ‘전쟁’이라는 무력을 통한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트럼프가 2016년 대선부터 줄곧 외치고 있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와 미국인의 입장에서 위대한 미국이란 19세기 초·중반 서부 개척과 19세기 후반 매킨리 시절의 태평양으로의 확장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면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을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취임하기 전부터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변경하고,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시키고, 1999년에 파나마로 소유권을 넘겨준 파나마 운하를 되찾겠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야욕(野慾)은 아메리카 대륙에 그치지 않고, 한반도의 약 10배 크기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인 그린란드를 넘보고 있다. 현실적으로 트럼프의 재선이 매킨리의 재림이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트럼프는 매킨리 시대의 영토 확장에 뿌리를 두고 MAGA를 외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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