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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외부와 고립된 채 다음 교황 자리를 두고 다투고 폭로하는 추기경들의 모습을 지켜본다는 점에서 밀실 스릴러이자 정치 암투극의 형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단순히 도파민 넘치는 막장 드라마로 그려 내지는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도 큰 권력을 가지는 공동체의 대표가 누가 되는지가 그 공동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체감하는 요즘이기에, 영화의 상황이 우리의 현재와 겹쳐 보일 수밖에 없다. (본문 중)
최주리(청년활동가)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자 하나님의 대리인이라고 불리는 교황이 갑작스레 선종(사망)한다. 종교와 나라를 막론하고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교황의 빈자리와 그 자리를 이어받을 다음 교황에 대해 이목이 몰린다. 슬픔과 충격 속에서 다음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 참석하기 위해 전 세계의 추기경들이 바티칸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영화 <콘클라베> | 감독 : 에드워드 버거 | 120분
시스티나 성당은 각국에서 모인 추기경들과 이를 보좌하고 챙기는 수녀들로 가득 차고, 검은색과 흰색, 짙은 빨간색 등으로 이루어진 사제복과 회색, 갈색, 금색의 웅장한 시스티나 성당이 대비되면서 엄숙한 분위기는 더욱 깊어진다. 추기경단의 단장으로서 콘클라베를 이끌게 된 로렌스 추기경은 긴장감과 부담감을 안고 있다. 로렌스 추기경은 얼마 전에 교황에게 사임의 의지를 밝혔으나 반려당했고 이내 교황이 선종하는 바람에 콘클라베 총괄이라는 큰 임무를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도가 잘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던 그는 신앙과 책임 사이에서 확신을 하지 못한 채로 콘클라베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교황이 퇴위하거나 사망한 후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인 콘클라베는 진행 상황조차 비밀에 부쳐진 채로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되어 진행된다. 사망한 교황의 장례와 애도 기간을 보낸 후, 투표권이 있는 80세 미만의 전 세계 추기경들이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으로 모인다. 이들은 콘클라베 진행과 관련된 최소한의 인원들과만 접촉할 수 있고, 각종 미디어를 보거나 외부와 연락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며, 통화나 도청을 막기 위한 보안 조치가 취해진다. 따로 후보 등록이나 연설과 같은 선거 운동을 하지는 않는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이어지는 투표는 과반수의 득표가 나오기 전까지 하루에 두 번씩 계속되며, 교황이 선출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성당 밖으로 나가거나 외부와 연락을 취할 수 없다. 추기경들은 투표함에 표를 넣을 때마다 다음과 같은 기도를 한다.
저의 주님이시며 심판자이신 그리스도여, 이 표가 하느님의 뜻을 따라 마땅한 이에게로 가게 하소서.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이 영화는 외부와 고립된 채 다음 교황 자리를 두고 다투고 폭로하는 추기경들의 모습을 지켜본다는 점에서 밀실 스릴러이자 정치 암투극의 형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단순히 도파민 넘치는 막장 드라마로 그려 내지는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도 큰 권력을 가지는 공동체의 대표가 누가 되는지가 그 공동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체감하는 요즘이기에, 영화의 상황이 우리의 현재와 겹쳐 보일 수밖에 없다. 콘클라베를 이끄는 로렌스 추기경의 어깨 또한 무겁다. 차기 교황은 누구보다도 가장 하나님과 닮은 사람이어야 함을 알기에 교황이 될 자격이 없는 후보들을 밝혀내고 가장 나은 후보를 추려야 할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심하는 교황을 내려주소서
콘클라베 직전, 아무도 모르는 낯선 이가 자신도 콘클라베에 참가할 자격이 있다며 전 교황의 임명장을 들고 등장한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전쟁 피해자들과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해 활동을 해왔고, 교황이 안전을 위해 비밀리에 임명한 의중 결정 추기경1)이라고 밝힌다. 의문에 싸인 새로운 추기경의 등장으로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는 가운데, 콘클라베를 시작하기에 앞서 로렌스 추기경이 설교를 한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여 있는 에베소 교회에게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선물은 다양성이라고 상기시킵니다. 교회의 힘은 바로 이러한 다양성, 즉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관점에서 나옵니다. 오랜 세월 동안 교회를 섬기면서 제가 가장 두려워하게 된 죄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확신입니다. 확신은 관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조차도 마지막 순간에는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아홉 번째 시각에 고통 속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아버지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쳤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의심과 함께 나아가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입니다. 만약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는 없을 것이고, 따라서 믿음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심하는 교황을 내려 주시기를, 그리고 용서를 구하고 계속 나아가는 교황을 내려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이 말은 동명의 원작 소설인 로버트 해리스의 『콘클라베』(알에이치코리아 역간, 2025)에서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그만큼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요 메시지인 셈이다. 로렌스 추기경의 설교가 말해주듯, 건강한 공동체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오갈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같은 수준의 같은 의견을 갖고 있는 곳은 변질되기 쉽다. 공동체 안에는 성숙하고 옳은 의견뿐만 아니라, 미성숙하거나, 다르거나, 틀렸거나, 오해이거나, 새롭거나, 보수적이거나, 관용적이거나, 전통적이거나, 비주류이거나, 엉뚱하거나, 개혁적인 의견 모두가 필요하다.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다르거나 틀린 의견도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중심축이 튼튼하고 유연한 공동체라면, 의심과 질문을 통해 서로 가르쳐 주고 배우면서 공동체 전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비난받을 것이 두려워서 질문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직접 의심하고 질문하고 고민하지 않고 누군가의 해석에 절대적으로 따르는 것도 위험하다. 한 종류의 작물만 기르면 병이 돌았을 때 그 작물 전체가 죽기 쉬운 것처럼, 모두가 같은 의견과 수준에 머물러 고여 있거나 남의 생각에 의존하다 보면, 언젠가는 꼭 마주하게 되는 인생의 복잡하고 어려운 질문과 새로운 도전에 적응하고 대처하기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묻고 의심하고 실수하고 배우고 사과하지 않는 완벽한 신앙은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이 애초에 그렇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죄인이자 자격 없는 자라면 하나님의 대리인인 교황의 자리에는 누가 오를 수 있을까?
교황의 자격을 묻는다면
콘클라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몇 번의 투표를 거쳐 몇 명의 유력한 후보가 추려진다. 지도력, 신앙의 깊이, 도덕적 권위 등을 우선으로 더 나은 후보를 가려낸다고 생각하지만, 각 나라를 대표하는 추기경들의 세계에서도 암투와 모함, 중상모략이 이어지면서 콘클라베가 단순히 ‘좋은 사람’을 뽑는 자리가 아님을 알게 된다. 교황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야말로 교황이 될 사람이겠지만, 후보들은 교황이 되기를 너무나 바라는 탓에 교황이 될 자격을 잃게 된다. 믿었던 후보들의 추악한 면이 밝혀지고 폭로되면서 불안감이 더해진다.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하나님과의 소통인 기도가 잘 되지 않아 힘들어했던 로렌스 추기경은 교황이 될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잘못된 선택으로 가톨릭교회가 퇴보하게 될까 봐 걱정하는 이들의 마음을 알고 있는 건지 하나님께 묻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분의 생각은 알기 어렵다. 단장으로서 후보들의 자질을 검증하고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해 애쓰는 로렌스 추기경의 모습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닮았다.
의심하고 용서를 구하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가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다른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이가 결국 새로운 교황이 된다. 예상치 못한 결말과 반전에 놀라고 새로운 교황의 ‘결점’은 그 충격을 더 깊게 만든다.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도덕적, 신앙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어야 한다는 기대를 받지만, 교황도 인간이기에 실수하고 후회하고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인간적인 약점들은 모두가 하나님 아래에 동등한 사람임을 일깨워 주는 동시에 이상적인 교황에 대한 인간과 하나님의 생각이 전혀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의미심장하게도 새로운 교황은 자신의 교황 명을 ‘인노첸시우스’(Innocentius)라고 정한다. 이는 ‘정직, 무결, 순수’를 뜻하는 라틴어이다.
2,000년 전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성경을 통째로 외우고 각종 율법들을 철저하게 지켰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적인 신앙과 성경의 진리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무지를 책망했다. 율법의 굴레에서 벗어나 믿음과 사랑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음을 보여 주었음에도 그들은 자신의 오만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새로운 교황의 결점이 세간에 알려지면 교황의 자격에 대한 많은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과연 이들은 로렌스 추기경의 설교처럼 의심하고 용서를 구하고 계속 나아갈 수 있을까? 영화는 끝나지만 영화는 여전히 우리 마음 한켠에 남아, 그들의 미래를 그려보는 우리들 또한 다가올 혼란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묻는다.
1) ‘인 펙토레’(in pectore)라고도 하며, 외부에 알리지 않고 교황만이 임명 사실을 알고 있는 추기경이다. 교황이 임명한 사실을 알리지 않고 선종할 경우 누가 의중 결정 추기경인지는 끝까지 비밀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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