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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성 관념이나 자아상을 보고 배울 기회를 잃은 아이들은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인터넷상의 극단적이고 혐오적인 의견들에 쉽게 노출된다.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또래들이 열광하는 자극적인 것에 휩쓸려 버릴 수밖에 없다. (본문 중)

 

최주리(청년활동가)

 

이른 아침,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한 가족의 집에 무장한 경찰들이 들이닥친다. 경찰들의 총은 자고 있던 13살의 소년 제이미를 겨누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두려움에 떨던 가족들은 경찰들이 제이미를 데려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자신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며 얼어붙은 제이미에게 경찰은 단호하게 말한다.

 

“제이미 밀러, 현재 시각 오전 6시 15분. 당신을 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드라마 <소년의 시간>_4화포스터_ⓒNETFLIX

 

 

제이미의 시간 속으로

 

그저 평범해 보이는 가족의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제이미는 무장한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경찰차에 오르고, 카메라는 떨고 있는 소년과 그를 호송하는 경찰, 동석 보호관을 차례로 천천히 비춘다. 눈치가 빠른 이라면 이 지점에서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챌지도 모른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경찰차에 오르는 장면 이후에 바로 경찰서나 다음 장면으로 전환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제이미가 차를 타고 경찰서에 내려서 각종 수색을 받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단 한 번의 끊김 없이 이어진다. <소년의 시간>은 한 시간여의 매 에피소드가 한 쇼트1)로 이루어진 롱테이크 기법2)으로 촬영되었다. 드라마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1:1로 동일한 이 방식은 우리를 현장 한가운데에 데려다 놓고 깊은 현장감과 몰입감 속에서 몰아치는 전개를 숨죽이고 따라가게 만든다.

 

제이미가 억울하게 잡혀 온 피해자인지, 정말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가운데, 경찰서에서의 조사가 시작된다. 제이미의 혐의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케이티를 죽였다는 것. 명백한 증거인 CCTV 영상이 있지만 제이미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드라마는 누가 진짜 가해자인지, 케이티가 어떻게 끔찍한 죽음을 맞았는지에 대한 반전과 서스펜스에는 집중하지 않는다. 드라마가 파고드는 질문은 다른 곳에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담당 경찰 루크는 케이티가 제이미의 인스타그램에 남긴 이모지 댓글을 보고 둘이 친구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조사에 나선다. 그러나 같은 학교를 다니던 루크의 아들은 전혀 다른 의미를 알려준다. 백 점 이모지 는 80대20 법칙을 뜻하며 이는 80%의 여자가 20%의 남자에게 끌리기 때문에 80%의 남자들은 여자들을 속여야 만날 수 있다는 매노스피어3)의 연애 이론이다. 빨간 알약 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세상의 진실을 봤다는 자의식을 뜻하며 매노스피어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다. 다이너마이트 는 빨간 알약을 터뜨리는 것으로, 그러한 매노스피어의 주장을 비웃는 표현이다. 즉, 케이티의 댓글은 제이미가 80대20 법칙으로도 여자를 만날 수 없을 인셀4)이라는 조롱이었다. 어른들은 이 이모지의 의미조차 파악할 수 없지만,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이모지만으로도 날카로운 공격이 오가고 있었다.

 

드라마 <소년의 시간> 스틸컷 ⓒNETFLIX

 

어른들의 무관심, 아이들의 외로움

 

어른들은 아이들의 소통 방식과 감정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소셜미디어에서 이어지는 조롱과 폭력을 눈치채지 못한다. 제이미가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소리치며 제지하고 영상으로 대부분의 수업을 대신한다. 제이미의 담임 선생님도 제이미가 그런 행동을 했을 줄 몰랐다며 그저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그뿐만 아니라 루크는 아들 아담에게 ‘아들’이라고 부른 것이 처음일 정도로 서먹하고, 아담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방관하고 있다. 제이미의 부모 역시 제이미가 밖에 나가지 않고 방 안에 있어서 안전할 거라고만 생각했지, 인터넷으로 어떤 세상을 만나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고 고백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제이미의 어두운 면이 드러났지만, 곳곳의 많은 아이들 또한 제이미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올바른 성 관념이나 자아상을 보고 배울 기회를 잃은 아이들은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인터넷상의 극단적이고 혐오적인 의견들에 쉽게 노출된다.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또래들이 열광하는 자극적인 것에 휩쓸려 버릴 수밖에 없다.

 

드라마 <소년의 시간> 스틸컷 ⓒNETFLIX

 

구치소에서의 몇 개월이 흐르고 제이미는 심리 상담사와 면담을 한다. 상담사는 제이미에게 공감 어린 질문을 던지지만, 제이미는 방어적이다. 케이티에게 받은 상처와 감정, 아빠와의 관계 등을 묻자, 처음에는 부정하던 제이미는 이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외로움과 분노를 토해낸다. 그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한다. 상담사를 좋아하면서도 화를 참지 못해 심한 말을 내뱉고는 자신을 떠나지 말라며 쩔쩔매는 제이미의 모습은 불안과 서툶의 총체다.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제이미는 감정을 직시하고 제대로 다루는 법을 알지 못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존재와 가까워지지 못할 것이라는 분노와 좌절, 또래 집단 내에서의 거부와 괴롭힘, 스스로에 대한 혐오는 그러한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이들과 사회에 대한 혐오와 폭력으로 발전했다.

 

제이미는 제이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이미의 혼란과 분노는 결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수많은 제이미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서울시립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에 따르면, 전체 청소년 상담의 절반가량이 성폭력 가해 상담이며, 가해자의 93.5%가 남성 청소년이라고 한다. 이들은 피해자에 대한 공감이 부족하고, 여성 혐오를 당연시하는 태도, 타인 조망 능력의 부족, 자기중심적인 사고 등의 특징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상담자들은 단순한 교정이 아닌 올바른 성적 가치관을 형성하기 위한 관계의 재구성과 인식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5)

 

20대 남성 인셀로 위장하여 1년간 매노스피어에 들어가 조사했던 로라 베이츠는 『인셀 테러』라는 책에서 진짜 문제는 유해한 남성이나 인셀을 만나주지 않는 여성이 아니라, 유해한 남성성이라고 말한다. 매노스피어의 남성성은 약점을 감추고 힘을 과시해야 하며, 나약함이나 감정을 인정하지 않아야 하고, 실패나 두려움, 괴로움은 틀어막고 도움의 손길이나 소통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남성들을 외롭고 취약하게 만든다. 이런 불안한 상태의 십 대 소년들이 매노스피어에서 사이비 과학과 엉터리 통계로 치장한, 비틀리고 여성혐오적인 관점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6)

 

드라마 <소년의 시간> 스틸컷 ⓒNETFLIX

 

제이미의 가족들은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낙인을 평생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과 제이미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살뜰히 챙기고 든든하게 곁을 지키는 딸 리사를 보며 아빠 에디는 엄마 맨다에게 묻는다. “우리가 어떻게 저런 애로 만들었지?” 맨다는 답한다. “제이미와 똑같은 방법으로.”

 

제이미의 범죄는 부모인 에디와 맨다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그들의 잘못으로 인한 것은 아니다. 제이미의 범죄로 인해 부끄러워해야 할 이는 가족들뿐만이 아니라 제이미를 둘러싼 사회 전체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의 SNS 사용을 금지하거나 극단적인 사이트를 폐쇄하는 것 이상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문제이다.

 

지난 3월에 넷플릭스에서 첫 공개된 <소년의 시간>은 4주 연속 글로벌 1위를 했으며, 이러한 전 세계적인 반향에 힘입어 영국에서는 전국 중등학교에서 무료로 볼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이는 외면당하고 있는 ‘소년의 시간’을 마주하겠다는 일련의 깨달음과 노력의 시작일 것이다.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깊은 외로움과 애정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것은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고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진정한 강함은 약함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상처를 솔직하게 마주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 누구의 사랑으로도 온전히 채워질 수 없다. 이제는 우리가 본보기가 되어 또 다른 제이미들의 ‘소년의 시간’에 귀 기울이고 변화의 선순환을 시작할 때이다.

 


1) 쇼트는 화면이 전환되는 편집점 없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장면의 단위이다. 한 쇼트는 일반적으로 7-10초가량 이어진다.

2) 현실적인 촬영의 어려움으로 인해 교묘한 편집으로 몇 개의 쇼트를 끊기지 않은 것처럼 이어 붙인 원 컨티뉴어스 숏으로 롱 테이크처럼 연출하기도 하는데, <소년의 시간>은 실제로 편집 없이 길게 촬영한 롱테이크이다.

3) 매노스피어(Man-o-sphere)는 여성혐오, 반페미니즘, 남성우월주의의 특징을 가진 남성 위주의 커뮤니티 네트워크이다.

4) 인셀(Incel)은 Involuntary Celibate(비자발적 순결주의자)의 약자로, 비자발적으로 연애나 성관계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5) 이영일, “‘소년의 시간은 현실이다’… 청소년 상담가들이 모이는 이유”, 「오마이뉴스」, 2025. 05. 23.

6) 로라 베이츠, 『인셀 테러』(위즈덤하우스, 2023), 88,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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