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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가 탈퇴를 선언한 오타와 협약은 대인지뢰의 생산과 사용 등을 모두 금지하는 협약으로 1997년에 체결되어 1999년 발효되었으며 160개국이 가입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이스라엘, 북한, 우리나라 등 분쟁 지역의 국가들이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타와 협약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재래식 무기 사용과 관련된 다른 협약에 가입하면서 탐지가 불가능한 대인지뢰를 더 이상 설치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2001년 제정하였다. (본문 중)
손화철(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벌써 4년째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에는 양국이 지뢰를 다시 사용하고 있다는 암담한 소식이 전해진다. 러시아가 점령지에서 퇴각하면서 수백만 개의 지뢰를 묻고 떠났고, 우크라이나도 자국 영토 보호를 위해 지뢰를 묻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 우크라이나는 지뢰의 사용을 금지한 오타와 협약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했고,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여러 나라도 협약 탈퇴를 결정했다고 한다.
대인지뢰는 악독한 무기다. 적군의 침투를 막는 데에는 저렴하고 효과적이지만, 군인과 민간인, 전시와 평화시를 가리지 않고 지속적인 살상으로 이어진다. 지뢰를 매설한 뒤 전쟁이 끝나면 제거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간이 지나면 홍수로 떠내려가서 원래 매설한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고, 많은 경우 어린이가 희생양이 된다. 전쟁의 급박한 상황에서 필요에 의해 지뢰를 설치하지만, 사후 처리는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지뢰의 매설은 자기 영토를 지키기 위해 그 영토를 죽음의 땅으로 만드는 모순적인 행위다.
우크라이나가 탈퇴를 선언한 오타와 협약은 대인지뢰의 생산과 사용 등을 모두 금지하는 협약으로 1997년에 체결되어 1999년 발효되었으며 160개국이 가입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이스라엘, 북한, 우리나라 등 분쟁 지역의 국가들이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타와 협약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재래식 무기 사용과 관련된 다른 협약에 가입하면서 탐지가 불가능한 대인지뢰를 더 이상 설치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2001년 제정하였다. (사실 휴전선 부근에는 엄청난 양의 지뢰가 이미 매설되어 있어 추가로 설치할 유인도 없다.)

지뢰처럼 단순하고도 잔인한 무기도 사용하지 않기로 하는 약속이 이렇게 어렵다. 다 같이 쓰지 않으면 되지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전쟁 와중에 그런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 리 없다. 분쟁 지역 국가들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것도, 분쟁이 시작된 국가가 협약에서 탈퇴하는 것도 일견 당연하다. 그러나 그럴 것이라면 협약은 애초에 왜 했단 말인가? 아마도 전쟁이 끝난 지역에서 지뢰로 인한 무고한 희생자가 너무 많이 나오자 취해진 사후 조치였을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자니 안 쓸 수 없고, 쓰고 보니 결과가 너무 참혹하여 안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모순적인 결정이 반복되는 셈이다.
지뢰의 사례는 무기 기술의 여러 어두운 면을 잘 보여준다. 우선 무기 기술은 절체절명의 전쟁 상황을 전제하고 개발, 생산, 사용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인권의 존중이나 경제적 유익은 반영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사용하는 원자력 발전이나 인터넷, 인공위성 같은 기술이 핵폭탄, 국방 통신, 미사일 발사 기술 같은 군사용 기술에서 비롯된 이유가 여기 있다. 경제적인 이익이 아닌 전쟁 대비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개발 비용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과 북한이 세계 각국에 무기를 수출하게 된 것도 분단 상황에서 군비 경쟁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무기가 시장에서 각광을 받는 것은 우리 자신의 분단 상황과, 세계에 전쟁을 준비하는 나라가 많아지고 있다는 두 개의 슬픈 현실이 중첩된 결과다.
혹자는 무기의 보유가 적의 공격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 말을 하는 대표적인 자가 북한 김정은이다. 핵폭탄을 보유하면 적의 도발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방어용 무기인 지뢰도 시간이 지나면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불특정 다수의 피해를 유발하는 것처럼, 일단 만들어진 무기는 사용되지 않더라도 잠재적인 위험으로 남는다. 무기를 쌓아두는 것이 궁극적인 안전과 평화를 제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라들이 전쟁을 준비하는 상황을 막지 못하는 마당에, 무기 개발 경쟁이나 생산의 대열에서 무작정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을 비롯하여 평화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은 무기의 개발, 생산, 사용을 당연한 문명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보다, 경계하고 애통해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먼저 개발에 있어서는 인명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공격보다는 방어를 우선하며, 명확하고 한정된 목적에 사용되는 무기를 우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그 기술이 전쟁에 사용될 가능성을 논하고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일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결합하여 자동 살상 무기를 개발하는 움직임에는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무기의 생산과 판매가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이 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우리 기업이 대량 살상 무기나 집속탄, 지뢰 같은 비인도적 무기를 직접 생산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무기의 주요 부품을 생산하는 것에도 참여하지 않도록 강력하게 권고할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가 더 이상 전쟁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기를, 또 그런 상황에 있는 나라가 줄어들기를 기도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서 지뢰가 다시 등장한 것뿐 아니라 대한민국과 북한에서 만든 포탄이 서로를 향해 날고 있는 것은 가슴 아픈 현실이다. 분단되어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우리의 상황 때문에 만든 무기가 엉뚱한 곳에 가서 살상을 일으키고 있다. 무기를 개발하고 생산하느라 그렇게 많은 돈을 쓴 것도 답답한 일인데, 그런 희생의 결과가 결국 먼 나라에서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비극이다.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 나라에서는 무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고, 그래서 만들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 나라는 구하는 그리스도인은 무기를 생산과 사용이 속히 그치기를 위해 애써 기도해야 할 것이다.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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